학생들은 휴게실에 짐을 풀고 각자의 위치를 배정받았다.
먼저 남학생들은 지하 식당 담당이었다. 수녀들과 직원들, 환자들 수에 학생들 수까지 더하면 꽤 많은 양의 음식이 필요했다. 대형 주전자와 그릇들을 움직일 만한 인력이 필요했으며, 끼니마다 차리고 치우는 양도 방대했다. 아무래도 힘쓰는 일이 많기에 다른 학교 남학생들도 대부분 지하 식당으로 배정받았다. 그다지 대수로운 일은 아니었다.
문제는 여학생들. 고작 다섯 명밖에 안 되는 여학생들이라 가뜩이나 많은 병원 일들을 잘게 나누어 맡아야 했다. 식사 시간에 환자 보조하기, 회진 시간에 잔심부름 및 치료 보조하기, 틈틈이 병원 내부 청소하기, 침대 시트와 이불 빨래하기 등등. 벅찬 것 같으면서도 때때로 수다 떨 시간은 충분했기에 지금껏 누구도 일정에 불만을 갖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 방문한 학생들은 다른 학교에 비해 머릿수가 적어서 약간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일정의 시작과 동시에 여학생들은 성민을 졸졸 따라다니며 질문공세를 퍼부었다. 욕실 청소를 시키면 세제의 위치를 묻고, 이불 빨래를 시키면 잘 빠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는 식이었다. 거기에 식사 시간이 언제인지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이 정해져 있는지. 여기가 천주교 병원인데 미사 시간이 따로 있는지 그렇다면 담당 신부는 어디에서 생활하는지 등등 사소한 질문부터 골고루 물어대어 성민을 귀찮게 했다. 이곳 생활에 대해 참으로 궁금한 것들이 많은 수다쟁이 여학생들이었다.
그럴때마다 아녜스 수녀는 멀찍이 서서 흐뭇하게 성민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학생들의 질문공세에 시달리는 성민이 귀엽기도 하고 재밌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혹시 수녀님이 시켰나?
그래서 이런 의심까지 해보았다.
아무튼 성민은 그녀들이 몹시 피곤했다. 무심하게 대답하면 눈치챌 만도 한데 그녀들은 포기할 줄 몰랐다. 3박 4일 동안에 반드시 성민을 친구로 만들 작정인 건지. 그래도 그 수다쟁이들 중 사적인 질문을 하는 소녀는 없었기에 그럭저럭 참아줄 뿐이었다.
성민은 여학생 둘을 따로 불러냈다.
작은 욕실로 들여보내 이불과 시트 애벌빨래를 시켰다. 병원 특성상 분비물이 묻은 빨랫감이 많아 세탁 전 애벌빨래는 필수코스였다. 그리고 그것은 성민이 가장 꺼리는 최악의 종목이기도 했다.
여학생들은 욕실 문이 닫힐 때까지 해맑은 얼굴로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앞에 잔뜩 쌓인 이불과 시트들을 보면서도 싫은 내색 하나 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좁은 욕실 안에서 냄새나는 시트와 환자복을 빠는 일은 정말이지 고문이 따로 없다. 병원에서 일하는 직원들의 업무였지만 가끔 성민이 할 때도 있었다. 벌써 일년을 이곳에서 지냈지만 그 업무만큼은 참담하게 느껴졌다. 그래서 성민은 그녀들을 지옥에 집어넣은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약간 미안하기도 했으나 어쩔 수 없다고도 생각했다.
성민은 한 시간쯤 지나서야 다시 욕실로 갔다. 손에는 추가로 수거해온 이불이 들려 있었다. 오늘따라 유독 많은 이불이 수거되었다. 아무래도 어제 저녁 식사로 나왔던 나물 반찬에 문제가 있던 모양이었다. 성민은 수거해온 이불을 들고 욕실 앞에 서서 잠시 망설였다. 갑자기 그 안에 들어있을 여학생들의 표정이 상상되었다. 이것마저 넘겨준다면 그녀들은 아마 울어버릴 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당해봐야 알지. 그래야 앞으로 함부로 봉사활동 운운 못하지. 봉사는 아무나 하나?
그것은 일종의 자만심이었다.
성민은 이곳에서 자신이 의미있는 일을 하고 있음에 다시금 감탄했다. 뻐기고 싶었다. 그녀들이 자신을 대단하다고 치켜주길 바랐다. 이런 생각을 하며 성민은 욕실 문을 활짝 열고 이불 보따리를 내밀었다.
그러나 성민의 예상은 정확히 빗나갔다.
그녀들은 욕실 안에서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혹시 똥냄새에 제대로 미쳐 버렸나?
손바닥만한 작은 창문에 의지한 채 지독한 냄새를 맡으면서도 뭐가 그리 좋은지 두 소녀는 깔깔대었다. 그때 쪼그리고 앉아 있던 그녀들 중 한 명이 성민을 올려다보며 말을 건넸다.
이불이 반으로 접혀서 펼쳤거든요? 근데 똥이 하트 모양이야. 너무 웃겨. 꺄르르.
얼굴에 주근깨가 박힌 발랄한 그 소녀였다.
이에 옆에 있던 코에 점 난 소녀도 함께 웃었다.
성민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았다. 아무래도 단단히 미쳐버린 것 같았다. 아니면 고약한 배설 향기에 정신이 잠깐 나갔거나. 성민은 뭔지 모를 실망감에 조용히 욕실 문을 닫아주었다. 그녀들의 재기발랄한 웃음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정말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