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이 끝나고, 2학년이 되었다. 내가 원했던 애견미용학과에 전과를 하고, 후배들을 맞이했다. 그런데 애견미용을 했던 동기들이 다른 학과로 전과를 했다. 그래서 2학년 애견미용은 단 네 명뿐이었다. 애견미용에서 단 한 사람도 나와 동갑인 사람이 없었다. 내가 제일 막내였다.
그래도 후배들과 실습을 할 때면, 막내가 아니라는 사실에 안도를 하고는 했다. 다 같이 실습할 때는 사람도 많고, 나에게 집중될 일이 없으니 마음은 편했다. 일주일에 한 번은 애견미용 전담 교수님과 4시간 동안 수업을 해야 했다. 앞서 말했듯이 4명이서 수업을 들어야 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한 자리에 옹기종기 모여서 수업을 듣는다는 뜻이다. 마치 과외와도 같았다.
아, 그래. 위험 요소에서 피한다고 해서 또 안 생기리란 법은 없지. 도피처는 없었다. 내가 싫다고 피한 환경에서 벗어나도, 도망치고 싶은 곳은 또다시 생겨났다. 꼭 뫼비우스의 띄같았다. 그때의 내가 우연히 본 영화가 있었다. '나우 이즈 굿'이라는 영화였다. 백혈병과 고군분투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그날 나는 이 영화를 보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주인공 테사와 나는 서로 다른 죽음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그 무수한 시간 속에서 느끼는 감정과 생각, 느낌, 분위기 속에서도 테사는 나와 달랐다는 점이다. 자신의 동굴에 갇히더라도 삶에 있어서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수 백번을 망가져도 그녀는 살기 위해, 나아가기 위해 미래로 나아갔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삶이라면, 나도 그저 받아들이기로 했다.
테사가 한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 지금 살아 있는 이 순간을 느낀다 ' 때때로 죽음이 찾아온다고 해도 어쩌면 그것이 원동력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시기에 내가 쓴 시가 있다.
봄
그대의 계절에 봄이 오리라
찬란하게
눈부시게
어여쁘게
그대의 계절에도 꽃이 피리라
아파하지 말아라
슬퍼하지 말아라
어쩌다,
눈을 뜬 그 순간
사르르 하게
떨어지는 꽃 잎을 볼지어니
따뜻한 시가 나를 설렘으로 데려다준 걸까? 나는 이 시기에 처음으로 짝사랑을 했다. 우울증은 있어도 설렘이란 감정은 있나 보다. 그게 참 특이했다. 한 없이 우울하다가도, 모든 할 수 있을 것 같고, 세상이 내 것만 같은 그 순간이 있었다.
계절은 봄을 지나고 있었다. 4월이었고, 내가 다니는 역 안에는 큰 편의점이 있었다. 그곳에서 급하게 음료수를 샀는데 검정 뿔테 안경을 쓴 남자가 있었다. 사랑에 빠진 다는 게 이런 건가? 드라마 같은 경험에 이게 무슨 감정인지 헷갈렸다.
그런데 정확한 건 학교에서도 계속 생각나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결국 그날 저녁, 쪽지에 내 번호와 인사말을 써서 음료수와 드리며 도망치듯 나왔다. 왜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번호를 주고 나서 떨렸던 마음 때문에 그네에 앉아 엉엉 울었었다.
그리고 그날 온종일 핸드폰만 붙잡고 있었다. 잠도 안 오고, 연락만 기다리고 있다가 정말 연락이 왔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인데, 번호를 받은 사람이라며. 밀고 당기기를 모르는 나는 바로 답장했다. 서로 연락을 하다가 상대 쪽에서 전화를 원했다.
그러다 한참을 통화하며 서로의 취미를 공유했다. 상대도 동물을 좋아했고 나와 같이 일기를 썼고, 같은 기독교였다. 그 뒤로 나는 학교를 갈 때면 아침마다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일어났어? 응. 졸려? 응. 나 학교 가는 중이니까, 가서 카톡 할게. 응.
단답으로 끝났다. 그래도 좋았다. 내가 원하던 이상형과 연락을 할 수 있다는 점이. 어쩌면 내적인 면모보다는 외적인 모습을 보고 더 반했는 지도 모른다. 알고 지낸 지 일주일도 안 되어서 동네에서 술을 함께 마셨다.
그날 그 사람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고 펑펑 울었었다. 안쓰러운 마음 때문이었을까, 동정이었을까. 그래도 그 사람도 나에게 호감이 있다고 했다. 일기장에 너무 감정적인 말들이 많아서 몇 줄만 그대로 적겠다.
'네가 했던 이야기들 너무 마음이 아프다. 자꾸 눈물 나고 힘들어. 하루 종일 생각나고.'
그런데 상대방은 결혼할 상대가 아니면 연애 생각이 아예 없다고 했다.
'넌 어떨지 모르겠는데 너도 아쉽고, 슬플 거라고 얘기했지만 모르겠다. 시간이 약이고 사람은 사람으로 잊는다는 친구말 생각해 보면서 버텨보고 추억으로 생각해 보도록 해볼게.'
어떻게 이런 말을 쓸 수가 있을까? 그것도 몇 번 만나지도 않은 사람에게. 지금도 금사빠 기질이 있지만 이때는 더 심했던 것 같다. 4월은 그렇게 아파하면서 시간을 흘려보냈다. 우울증은 설렘에 묻혀서 느낄 수 없었다.동기 언니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주었는데, 더 좋은 사람을 만날 거라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5월. 내 머릿속에는 온통 애견미용 생각뿐이었다. 내가 평생 이 일을 하면서 먹고살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그냥 미용하면서 살고 싶다가도 평생 강아지 미용만 할 것을 생각하니 짜증 났었다. 이 와중에 공황 장애가 다시 찾아와서 지하철 중간에 내렸었다. 나는 아침을 안 먹는 버릇이 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공황 장애가 와서 구토를 할까 봐 안 먹는 것이다.
그래서 안 먹었던 것인데, 그날 아침을 먹은 게 화근이었을까. 아무튼 진정시키고 학교로 다시 간 기억이 난다. 그러다 주말에는 뚜레쥬르 알바에서 통밀빵을 기계로 자르다 손을 다쳤었다. 피가 철철 났지만, 다행히 병원 갈 정도는 아니라 안심했다.
그래도 살면서 피가 그렇게 난 적은 처음이라 무서웠었다. 알바는 잘하고 있었는데, 아니다 다를까, 미용학과에서 나 빼고 단톡방이 있단 사실을 알았다. 신경 안 쓰기로 했으면서 신경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나 보다. 그 사람들을 신경 쓰기보다는, 내가 별로인가?라는 질문을 나 스스로에게 던졌다.
참, 자존감이 많이 낮았던 것 같다. 이때 공부를 안 한 걸 정말 많이 후회했다. 공부 열심히 해서 대학교 다닐 걸, 이라고. 막상 생각은 이렇게 해놓고, 과거로 되돌아간다면 공부를 안 할 걸 안다. 성격이 그리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때 나는 인생이 너무 어렵다고 느꼈다. 뭘 그렇게도 힘들어하고 옭아매이고 관계에 대해 생각하고 주눅 들고, 이 리치이고, 저리 치이고. 그냥 이런 게 많이 지쳤다. 나의 발목에 쇠사슬을 차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그 쇠사슬을 질질 끌며 무겁게,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때 당시에 적었던 또 다른 시를 공유하고자 한다.
힘없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무심코 하늘을 올려다보면
너는 어쩜 그리도 밝은 지
끝없는 이 길에 정답은 있을까
하루하루 나아가는
이 시간이
이 날들이
이 계절이
그리고 6월 9일에 적었던 일기를 공유하고자 한다.
' 사람들이 나를 멀리... 어려워하고 어색해하는 건 내가 맨날 무의식적으로 인상 쓰고 우울해 보여서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본다. 밝은 사람에게는 자연적으로 다가가기 마련인데. 처음에는 다들 나를 외적으로 귀엽게 생겨서 많이들 다가오다가 점점 멀어진다. 희한한 게 사람과의 관계는 일시적이고, 시간이 지나면 끝이다.라고 생각하다가도 이렇게 내 문제점을 찾고 있는 나를 보면 모순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
나는 이 시절에 인간과의 관계에 대해 많이 생각했다. 지금도 다를 바가 없지만, 특히나 더 많이 생각했던 것 같다. 흔히 하는 말로 떠나는 사람 안 붙잡고, 오는 사람 안 밀어낸다고 하던데. 난 반대다. 떠나는 사람 붙잡을 때도 있고, 오는 사람 밀어낼 때도 많다.
무엇보다 가족과의 관계가 제일 어려운 나였다. 가족과의 관계가 어려웠기 때문에 다른 이들과의 관계도 어려웠으리라고 본다. 가족에 관해 짧게 이야기하자면, 아버지랑은 정말 안 맞는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아닌 것만 같았고, 친해질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이 생각은 아마 중학생부터 했던 것 같다. 이유는 간단했다. 아버지가 너무 예민해서 가족을 피곤하게 만든다는 이유에서였다.
우울증이어서 좋은 이유도 있다. 생각을 깊게 하고, 나를 되돌아보며 성찰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다만 너무 깊게 빠지면 안 된다는 점이다. 우울증은 구렁텅이와 깊은 늪과도 같아서 헤어 나오면 헤어 나올수록 빠져나올 수 없단 점이다.
그래서 나는 살아있는 좀비처럼 있었다. 숨만 쉬는 좀비. 그래도 괜찮았다. 우울증 이어도 다른 감정들이 찾아와서 나를 위로해 줬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