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에서 일하게 된 계기와 나의 인생
가끔 인터뷰 요청이 들어와서 인터뷰를 하려고 하면 지나간 과거를 해석하는 시간이 필요하요. 오늘은 ngo에서 일하는 이유와 미래에 관한 짧은 인터뷰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번에는 고생학생 친구가 미래에 '국제개발협력'의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서 아래와 같이 자세하게 썼는데, 오늘은 ngo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한계와 바램 그리고 소소한 준비를 이야기하게 되었다.
https://brunch.co.kr/@minnation/1633
http://www.peoplepower21.org/Magazine/1344042
어릴적부터 항상 정치를 해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초등학교 때 김대중 대통령이 집근처에서 연설을 했는데 청중을 휘어잡는 웅변실력에 매료되었고 그 때부터 무엇인가 사람들에게 영향력 있는 말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본격적으로 정치에 관심을 가진 건, 중학교 때 지금 영등포 국회의원인 '김민석 의원'이 청문회에 나와서 였어요. 그 당시만 해도 정치는 항상 나이가 지긋한 어른들의 신선놀음처럼 보여졌는데 30대 김민석 의원은 질풍노도와 같이 청문회를 다 뒤집어 놓았어요. 그래서 생각했죠! 맞아 정치는 '정의'와 '젊음'이 만나는 곳이 아닐까?라고요.
그런데 나이가 들고 대학생이 되면서는 현자타임이 오더라고요. 특히 내가 정말 그렇게 살 수 있을까에서부터 그렇게 살아서 남는 게 무엇이 있는가?라는 생각을 하게 된 거에요. 정치는 당선이 안되면 끝이고, 항상 있는 사람들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의 놀이터처럼 보였거든요. 그래서 '내가 진짜 잘하고, 즐겁게 일할 수 있는게 무엇일까'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어요. 물론 졸업이 남들보다 늦었던 저는 철없는 복학생 오빠의 포스를 보이면서 꿈없는 30대를 바라보고 있었고요. 여기서는 신앙적인 동기가 가장 크지만, 아무튼 '남을 돕는 일을 제일 잘할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나서 바로 구인사이트에서 지금 일하는 곳을 발견하게 되었고 10년전에 이곳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지금와서 생각해보는 것이지만 잘한 선택이었다는 생각이 들고요. 앞으로 오히려 정치의 꿈을 현실적으로 준비할 수 있는 곳이었던 것 같아요. 물론 정치를 하기 위해서 ngo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요. 소외되고 가난하고 내일이 희망적이지 않은 분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으로 지난 10년을 버텨온 것 같아요.
예전에 운동권들이야 '사회구성체'논의를 많이 했지만 저는 사실 그 세대는 아니거든요. 그렇지만 '세상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에 대한 토론과 공부는 많이 하게 된 것 같아요. 제가 아무리 생각해보아도 세상은 한 번에 바뀌지 않을 것 같고, 바뀌는 부분은 정치영역이나 제도, 문화보다는 오히려 '한 사람'의 변화가 모여서 변화가 가능해질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뛰어난 엘리트들의 세상이 아니라 조금씩 진보하는 시민들의 세상이 지속가능한 미래를 만들어 낼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물론 요즘들어서는 어느정도의 트리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보고요. 그게 제도가 될 지 문화가 될 지는 잘 모르겠어요.
한계는 많이 느끼는 것 같아요.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비영리 혹은 ngo의 영역이 정부가 하지 못하는 영역에서 시민들의 힘으로 사회적인 문제를 극복해보려는 작업이기 때문에 '잔여적인 복지'의 개념처럼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언제나 일을 할 때는 '능력*의도*기회'라는 생각이 드는데요. 능력의 부족이 의도의 변질을 가지고 와서, 기회가 와도 막상 변화를 못 만들어내는 게 아닌가?라는 고민이 드네요.
개인적인 막막함도 있겠고, 사회적으로 ngo가 가지고 있는 한계도 있을 것 같고요. 그리고 국가적으로 한국이 지나온 역사적인 무게와 시민사회의 비대칭적 성장, 민주주의와 연계성 등등 막막함을 만들어내는 부분이 많이 발생할 수 밖에 없는 구조라는 생각을 해보아요.
밑빠진 독에 물 붓기 같은 느낌도 들어요.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이 많은데 자본주의 세상에서 그리고 신자유주의 세상에서 경쟁력 자체가 만들어지지 않은 이웃들은 더 힘들어질 수 밖에 없잖아요. 그럼 누가 도울 수 있을까요? 이런 생각을 하면 막막하기는 해요. 정말 제도를 뜯어고치고, 세계적인 흐름들을 바꾸어야 하는 큰그림을 그려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보통 ngo의 활동은 지역사회 복지의 측면에서 social action, social development, social policy라는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말을 하는데요. 다양한 이유와 문제들로 3가지 영역이 유기적으로 돌아간다는 느낌은 잘 들지 않는 것 같아요.
슬라보예 지젝이'용기의 정지학'이라는 책에서 '유사한 희망이 오히려 변화를 막는다'라는 말을 하는데요, ngo의 활동이 오히려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만들어낼 수 있는 시민들의 앞길을 오히려 '유사한 시민활동'으로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라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장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많은 것 같아요. 특히 공동체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핵심인 기관에서 공동체의 비전 자체가 공동체에서 나온다는 것은 한계인 동시에 자발적이고 지속가능한 변화가 만들어지기만 한다면 계속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기는 것 같아요.
그리고 전문성이라는 것도 약간 허울이 있는 것이 현실과 동떨어진 전문성은 사실 필요가 없잖아요? 학자나 논문을 쓰는 게 아니라면 현장에 맞고, 사용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실용적인 지식과 정보가, 능력이 필요한 것 같아요. 그런의미에서 전략과 전술을 짤 수 있는 곳이 현장이란 생각이 들어요.
탁상공론의 시대가 끝났고, 누군가 엘리트가 지배하는 세상이 끝나게 하려면 처음부터 다르게 시작해야 하잖아요? 그러니깐 아예 현장에서 답도 찾고, 리더십도 찾고, 시민들과 함께 무엇인가를 만들어가는 작업들이 지금은 우둔해보이고 미련해보이지만 언젠가는 분명히 답을 찾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아요.
그런 의미에서 '사회혁신'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냥 열심히 하는게 아니라 혁신을 가져오는 작업들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어느 부분에서는 혁명적인 부분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2017년 박근혜를 몰아내는 곳에는 시민들과 시민사회가 있었는데, 이것은 정말 오랜만에 나온 혁명이라고 생각해요. 그러한 혁명이 가능하기까지 다양한 혁신과 도전, 능력을 배양하는 시민과 시민사회, NGO가 활약하지 않았나?라는 생각도 들어요.
그리고 지금 일하는 곳 외에 사회혁신해봄 협동조합이나 재단법인 와글이나, 청년참여연대 등과 같은 다양한 곳에서 활동을 하면서 친구들을 사귀고 미래를 그려보고, 그에 맞는 기술과 툴킷들을 만들어 보고 있는데요. 절망이 패패감이 되기 전에 오히려 원동력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같아요.
더욱이 이 한계를 극복해 보고자 대학원에서 제도를 전공했고, 지금은 다른 대학원에서 정책을 공부하고 있고요, 좀 더 효과적인 교육을 위해서 방통대에서 교육학을 학부편입으로 해서 배우고 있어요. 매번 무엇인가를 새롭게 배운다는 것이 막막함과 비전문성을 넘어설 수 있는 아이디어와 인사이트를 제공하는 것 같아요.
https://brunch.co.kr/@minnation/1709
https://brunch.co.kr/@minnation/1702
아무래도 종교적인 이유와 성장배경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이 부르셨고, 우리는 그 부르심에 응답하였다'라는 제가 일하는 단체의 비전처럼 하나님이 부르셨다면 완전한 부르심이었을 것이고 지금은 비록 되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시간에 될 것이라는 안정감과 열정, 희망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제가 능력과 의도의 순수함을 이루었을 때 기회가 열리면 무엇인가 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반대로 기회가 열렸는데 제가 능력이 없거나 의도가 불순하면 그건 제 책임이 될 것 같아요. 그러니 다시 열심히 일어서서 똑똑하게 걸어가는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종교적인 부분에서는 '하나님나라'의 회복과 완성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 매우 깊은 연결고리가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철학과 신학은 떼어 놓을 수 없고, 신학도 깊이 들어가면 엄청난 깊이로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다양한 고민들을 깊이있게 할 수 있는데요. 비영리 부분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만약 하나님이 교회만 만든 것이 아니라 이 지구를 모두 만드셨다면 어디나 하나님의 주권이 펼쳐지지 않은 곳이 없을 거고요. 그럼 이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로 변화를 만들어내고 회복을 이루어 가실 거라고 생각해요.
하나님의 선교, 영역주권론, 문화선교, 사회선교, 통전적 선교와 같은 내용들이 탄탄한 신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고요, 제가 일하는 곳에서는 이러한 신학에 근거해서 지역개발 방식을 성경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을 하면서도 사명감을 느낄 수 있고, 공동체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도 볼 수 있고요. 그렇다면 위에서 말한 그런 막막함도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되지 않을까해요.
사실 ngo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누군가는 판을 새로 짜고, 미래의 비전을 다시 그리고 함께 성장하는 어떤 희망적인 비전이 필요한 건 아닌가?라는 생각을 자주 하게 되어요. 그런 의미에서 지금은 정책을 공부하고 있는데요, 국제개발 뿐 아니라 국내외의 다양한 정책들의 형성과 실행, 대안과 확장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ngo에서 시민들과 함께 공부하고 고민하면서 일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시민정치 쪽으로 나아가보고 싶어요. 특히 스웨덴의 비그포르스라는 사람처럼 100년 후에 한국의 미래를 시민들과 함께 그려보고 싶고요.
https://brunch.co.kr/@minnation/1678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을 볼 때 보람이 있고요. 누군가 오늘은 내일에 대한 희망이 생긴다고 하면 가슴이 울컥하면서 든든한 하루를 마감해요. 특히 주중에 지역아동센터 친구들과 멘토링을 하고 있는데요, 실제로 만나보면 너무 즐겁고 재밌고 삶의 의미가 있는데, 막상 안만나게 되면 저도 보람을 못 느끼고 삶 자체도 쫌 붕 뜨더라고요. 실천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인가 대안을 낼 때 지금까지 공부했던 것들이 뒷받침이 되는 느낌이 정말 좋은 것 같아요. 그럴 때 누군가는 그런 공부는 왜하냐?라고 했겠지만, 저에게는 어느 순간에는 불이 반짝하고 스위치를 켜는 순간이 온다는 생각이 들어요. 보람은 '효능감'과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모든 것이 사랑에 달려 있듯이, 사랑하면서 일하는 것은 보람이나 효능감을 떠나서 행복감을 주는 것 같고요. 제가 실패한 하루는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혹은 아무 감정없이 일했을 때라고 생각해요. 사랑을 추구하고 사랑 때문에 이 일을 하고 있으며, 그 사랑 때문에 헌신이나 기다림이 지속된다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물론 힘들죠. 그렇지만 그런 행복은 무척이나 값지고 깊이가 있더라고요. 행복은 사랑을 추구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추구할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