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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민네이션 Nov 08. 2022

낭만을 즐기는 사람이 아니면

연애와 결혼에 관한 낭만적인 생각_#7

0. 들어가기


사실 7번째 글을 쓰기까지 참 많은 시간을 흘려 보냈다. 시간이 어느정도 지난 후에 지나간 사람들을 기리고 추억하고, 또 다가올 사람들에 대한 기대감을 어느정도 잠재운 후에 비로소 다시 이 주제로 돌아오게 되었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다면 과연 나는 어떤 사람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일까? 괜찮은 사람, 아름다운 사람이 넘쳐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과연 누구를 기다리는가? 이런 질문을 스스로 수 백번도 넘게 되내이면서 기다려온 것도 사실이다. 이번 글은 좀 더 사실적이고 구차하게 주관적이라는 것을 미리 밝혀둔다. 누군가의 삶 속에서 다른 생명을 가진 이가 들어온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를, 그 문을 열어 주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글이라고 해두자.


https://brunch.co.kr/@minnation/2364


1. 평범한 속에서 빛나는


수 많은 요청이 있다. 부모님은 결혼하라고 강요하고 주변에서는 나이가 먹으면서 매력이 떨어지니 어서 빨리 체력이 있고 젊음이 있을 때 결혼하라고 한다. 물론 그 말들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 결혼 이후에 시시한 인생을 사는 이들이 더욱 많아지는 이 때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가만히 들여다 보면 아주 평범하고 시시한 인생 속에서도 빛나는 관계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본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그들 가운데 여유가 있고, 무엇인가 정의할 수 없은 시간의 흐름이 강물처럼 흘러가는 관계가 보이는 때가 있다. 그럴때는 비판적인 시각을 거두어 들이고 한참을 생각한다. 어떻게 하면 저렇게 되는걸까? 그 평범하고 지루한 일상속에서 빛나는 눈빛과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시간의 여유를 서로에게 선물하고 해석의 여지를 최대한 많이 열어두는 상태로, 일상 속에서 밀려오는 사건들에게서 조금은 떨어져 있는 그들의 관계를 볼 때면 부럽다는 표현도 모자를 만큼, 인간의 본성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곤 한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리고 '와~어떻게 하면 저런 관계가 될 수 있지?'라는 질문을 던지게 된다. 어떻게  저 두 사람의 관계 속에서는 서로 바람이 불고 흔들리더라도 다시 그 자리로 돌아와서 서로를 바라볼 수 있게 되는 것일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어쩌면 이 글을 그 불어오는 바람에 대한 이야기인지 모르겠다. 아직은 대명사화 지시어로 가득차 있지만 이 글이 끝나갈 때쯤이면 그 관계의 핵심을 볼 수 있겠지?


https://www.youtube.com/watch?v=ZPrSpIYyqgc

'넌 내가 노래해야할 음악이야'라는 곳을 들을 때면 항상 생각난다


1. 낭만주의와 그녀의 눈빛


물론 지금 실력이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보다 훨씬 실력이 없던 시절에 나는 나보다 100배는 깊이 있고 1000배는 낭만적인 사람을 흠모했다. 그녀의 생각은 지금도 헤아릴 수 없고, 그녀가 써 놓은 글자들이 의미하는 바를 아직도 해석하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가지고 있던 희마한 관점은 '낭만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하는 것이었다. 낭만주의는 현대사회에서는 '이상적인 것을 추구하면서 현실을 부정하는 것'으로 치부되지만 낭만주의가 시작되는 17세기 독일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다.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로마시대로 돌아가고 싶었다. 그들이 기억하는 로마시대란 '현실과 이상을 하나로 연결하는 사회'였다.


그래서 낭만주의라는 것을 현실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이상을 끊임없이 갈구하는 사회의 전형이었다. 요즘들어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현실을 부정하면서 여행과 미술관을 전전긍긍하거나 현실에 천착해서 주식과 명품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그런데 17세기 독일에는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이상을 꿈꾸고 그 이상을 실천하기 위해서 다시 현실로 내려오는 사고가 낭만주의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대표적인 철학자는 헤겔이었다. 그는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이 가진 고매한 이상이 현실을 만나서 새로운 이상을 만들어내고 그 이상을 이루기 위해서 현실과 다시 만나면서 새로운 현실의 변화를 만들어낸다는 '변증법'을 만들어냈다. 결국 미래는 우리의 이상과 현실이 결합된 새로운 시대였던 것이다.



현실과 이상을 조화시킬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진 낭만주의자들은 중기와 후기를 거치면서 현실적 감각을 잃어버렸고, 결국 이상만 쫓는 백면서생으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래서 미술과 선축, 철학에서 낭만주의라고 하면 지나치게 추상을 강조하는 것처럼 호도되었다. 물론 그럴 수 있다. 그러나 낭만주의자들이 추구했던 현실과 이상의 결합이 없는 이상 우리의 현실은 완전히 매마르거나 완전히 몽환속에서 존재하는 것일 수 밖에 없다. 연애에서도 이러한 낭만주의를 불러오면 내가 흠모했던 그녀는 낭만주의의 전형이었다. 아름다운 미래를 추구하면서도 현실의 감각과 논리를 놓치지 않는.


그래서 그녀의 시선과 의식을 만족시킬 사람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지금에야 어느정도 글을 좀 쓴다고 하고, 생각 좀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이런 글을 쓰지만 몇년 전의 나에게는 그녀의 정신의 깊이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하나의 현실에 수 만가지의 이상과 가능성이 달라붙는 그녀의 눈빛의 깊이를 따라갈 수가 없었다. 물론 그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제와서 생각해보니 내 안에 조각난 파편들을 조합해 봤을 때 충분히 그럴 수 있겠단 생각을 해본다. 그런한 그녀를 표한하는 길은 '낭만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 사회에는 존재하지 않는 현실과 이상을 하나의 몸에서 살아내는 그런.


https://www.youtube.com/watch?v=DRV5f3vNg6o

마치 팬텀싱어의 'la vita'와 같은 그녀의 눈빛


2. 낭만이 아니면 안된다


병에 걸린 것 같다. 누군가가 그랬던 것처럼 '자유를 한번 맛본 사람은 자유의 투사가 된다' 말처럼 말이다. 한번 낭만적인 사람을 만나 보니 그 낭만적인 것이 결국 삶의 진리라는 것을 깨닫고 이윽고 계속해서 그것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 물론 그녀를 다시 만나고 싶은 마음으로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일상을 다른 방식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놀라움과 감사를 표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무료한 일상 속에서 꿈을 꾸고, 급박한 현실 속에서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너무 신기하고 고마울 뿐이다.



사람들을 만나보면 자신이 이야기하는 것들이 주는 파장과 여운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그것은 그가 말하는 것과 현상이 하나로 만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기도 한다. 다양한 경로로 해석되고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모르고 1:1 매칭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현실에서는 자주 만나지만 무엇인가 미래를 함께 할 것이라는 기대감을 가진 이에게서 듣는 현실과 이상의 일치는 매우 허무함을 준다. 평생을 살아도 여전히 현실은 이상의 발목을 잡고, 이상은 더 이상 이상이 아니게 되는 관계. 사실, 이런 이야기를 하기 까지 나는 너무 많은 현실의 문제들을 만났다. 둥둥 떠 있는 자아를 끌어내려 땅에 발붙였고, 현실을 유지하기 위해서 얼마나 빠르게 움직여야 하는지도 습득했다.


낭만이 없는데 어디로 갈 수 있나요?


그런데 이런 현실이 빠르게 지나갈 때 쯤이면 그녀의 눈빛이 생각나기는 한다. 삶의 여유 가운데, 분주함의 중심에서, 무료함의 애매함에서 어디서나 반짝거리던 그 눈빛 말이다. 그래서 결론적으로는 '삶을 낭만적으로 살 수 없는 사람과 살 수 없다'라는 결론을 내리기에 이르렀다. 그러고 나니 결과는 당연히 참담했다. 어떤 사람을 만나도 시들해져 버릴 수 밖에 없었다. 누군가에 대해서 실망하게 되는 때는 그 사람이 가진 여유와 한계 안에서는 낭만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었다. 나중에서야 알았지만 실은 이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는 것.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은 바로 '낭만'이었다.


https://www.youtube.com/watch?v=ED_GqSnZCcg

미라클라스의 'feeling'처럼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이 밀려오는 때가 있다


3. 삶에 주어진 초대장


그녀의 연락처는 '초대장'이라고 저장해 두었다. 그녀의 연락은 나에게 낭만의 세계로, 현실 세계 속에서 매몰되지 않도록 새로운 여행으로 초대하는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해보면 다시 멈춰서는 지점이 생긴다. 그녀에게 나 역시 '초대장'이었을까? 인생의 전형 혹은 한국남자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지는 않았을까? 삐에르 부르디외가 말하는 '아비투스'의 습관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지는 않았나 싶다. 아비투스는 사회가 학습하게 만든 제도와 관습을 개인이 받아들이면서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보여지는 습관을 이야기한다. 인사하는 방식이나, 사람들을 응대하는 방식에는 이미 아비투스가 적용되어 있다.



그녀는 오히려 이러한 삶의 아비투스 속에서 나를 불러 내었다. '당신의 세계에서 나오세요!'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보내는 초대장은 매우 낯설지만 진정 내가 나되는 시간을 만들어주는 것과 같았다. 다시 반추하면서 나는 그녀에게 초대장을 보내고 있을걸까?라는 생가을 하게 되었다. 아직은 아닌것 같았다. 충분히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삶에 전념을 다하고서도 여유가 남는다면 그것이 바로 낭만일 텐데 나는 아직도 삶에 허덕거리면서 나 자신 지키기에도 바빴으니까. 다시 그녀를 만날 가능성은 없다. 그러나 그녀를 통해서 배웠던 한기는 바로 '낭만'이었다. 낭만을 아는 사람이 아니면 결국 초대장을 보낼 수 없으리라. 그래서 더 절망적이다. 마치 무르익은 밤에 달이 한가득 빛을 바래는 것처럼.


https://www.youtube.com/watch?v=ykXSuZd-KpI



4. 험난한 항해 속에서 만나는


그런 생각을 해본다. 팍팍한 우리네 삶 속에서 여유와 낭만이 없다면. 여전히 끝도 없는 경쟁 속에서 살아가는 이들의 표정에서 읽혀지는 허무함. 나는 그들과 달라서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가 아니라 진정한 인간이란 그렇게 살면 안된다고 말하고 싶다. 삶에 지쳐서 도피하듯이 배우자에게 다가가는 것은 시한폭탁과 같다. 언젠가 그 사람에게 싫증을 느낄테고 그가 채워주지 못하는 부분 때문에 다른 사람을 찾아 나설 것이다. 40세가 넘어가면 결국 상대방의 외모나 신뢰감보다도 그 사람이 가진 '독특한 가치'에 눈뜨기 마련이다. 그러니 자신의 세계 안에서 여유와 낭만을 가지지 못한 사람들은 점점 무시를 당하게 된다. 당연하다.



여기서 예술과 시, 연극과 오페라, 회와와 음악이 등장한다. 독특한 가치를 가진 이들이 빛나는 시기가 된다. 나만이 가지고 있는 독특한 가치. 그것 때문에 사실은 그 사람과 만나야하고, 그 사람도 나의 그 가치를 바라봐주어야 한다. 그래서 서로의 독특한 가치 때문에 '오직 당신'일 수 밖에 없고, 거기서 신뢰와 사랑과 애로스와 필로스가 펼쳐져 나오게 된다. 이러한 생각에 이르게 되면 결국 남은 것은 하나이다. 나만이 가진 가치를 지속적으로 추구하고 표현하고 실천하는 것. 그것이 시작이고 결국 마지막 마침표가 된다는 것을. 향기로운 사람들을 만날 때는 항상 자신의 독특한 가치를 가지고 있는 자아를 만나게 된다. 그런 사람과의 만남은 마치 오디세우스의 항해와 같다.


Odissea

C'e' nella forza di un'idea
생각의 힘 안에는
Una luce nobile trasparente
투명하고 귀한 빛과
Unica innoccente, libera
순수와 자유 그리고
Un respiro di follia
어리석음이 있죠

Ma se non la fermi e' fragile
생각은 부서지기 쉬우니 잡아둬야해요
E indifferente poi
생각은 무심해서
va via come te
당신처럼 사라져버리죠
Via, dentro una scia
안개 속으로 사라져버릴 거예요
Che se ne va, sfiorandomi
나를 스치며 사라져버리죠

Ritorna mia Gridando ancora
돌아와줘요 여전히 부르짖고 있어요
Che non c'e' cura Per questo amore
이 사랑에는 해결 방법도 없어 울부짖고 있죠

Per quest'odissea
험난한 사랑의 여정이
Che ci trascina con te
우리를 끌어당겨요

Onda di marea
해일처럼
Che nasce e muore con te
당신이 밀려들어왔다가 사라져요
Naufraghi di un sentimento
난 그 사랑의 희생자죠
Immenso
넘치는 감정의 희생자죠

E Fuoco tra la cenere
잿더미 속의 불꽃처럼 남은 감정
Un lampo una vertigine
Che non riusciamo a spegnere
끌 수도 없는 불빛에 어지럽기만 하네요
E quest'odissea
이 험난한 사랑의 여정은
Che ci avvicina e allontana da qui
가까워지고도 멀어지죠

Onda di marea
밀물과 썰물처럼
Che annega tutto cosi
그냥 그렇게 사라지네요
Naufraghi di un sentimento
험난한 사랑의 여정 속에 휘말린 우리는
Immenso
넘치는 감성의 희생자에요  


https://www.youtube.com/watch?v=jpHXW3zyqu0

밀물과 썰물처럼 왔다가 갔다하는 인생이여


0. 나오기_10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누구나 그런 때가 온다. 지금의 이해와 지식으로 10년전으로 돌아간다면. 나역시도 지금의 감성과 현실성을 가지고 10년전 그녀와 다시 만난다면 나는 그 초대장에 응할 수 있을까? 아마도 아닐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녀의 깊이는 지금의 나로써도 감당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깊이를 만나본 경험은 결국 인생의 지속적인 행복은 관계에서 오며, 그 관계는 서로 독특한 가치를 살아내는 가운데 유지된다는 것을 깨닫게 한다. 낭만적인 사람이 아니면 못 만날 것 같다. 현실과 이상을 서로 이어주면서도 그 갈등을 해소하려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못 만난다. 어쩌면. 이 삶을 사는 사는 동안 못 만날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는 나는 살아 있는 동안 추억할 것이다. 초대장을 선물해준 그 사람의 눈빛을 기억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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