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리의 역사와 애도의 시작
어떤 개념은 항상 '장소'와 '시간'을 기점으로 풍부해지거나 쇠퇴한다.
특정한 장소에서 특정한 시간에 만들어진 개념은 특정한 사람들에 의해서 향유되고 시간이 지나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면 기존의 개념과는 다른 의미로 사용된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념들은 항상 시간과 장소 위에서 특정한 상황에서만 이야기가 가능하다. 민주의라는 개념은 고대라는 시간에 그리스라는 장소에서 만들어졌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에게 다가온 '민주주의'는 지금 여기서의 상황에서 민주주의가 된다. 마찬가지로 모든 개념은 이런식이다. 이러한 관점으로 보면 개념의 시작과 변천과정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 된다.
멜랑꼴리라고 하는 개념도 역시 고대라는 시기에 그리스라는 장소에서 만들어졌다. 당시의 개념이 지금과는 사뭇다르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변천해온 멜랑꼴리의 개념 중에서 특정한 시기, 특정한 장소의 개념을 가져다 쓰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멜랑꼴리의 기원과 변천과정을 알아보고, 내가 어떤 상황에서 만들어진 멜랑꼴리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지를 파악해보자. 또한 프로이트가 말한 정신분석학적으로 '애도'와 멜랑꼴리의 관계를 규정해보고, 이를 통해서 나타는 현상과 그것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고민해보자.
우리가 흔히 쓰는 멜랑꼴리melancolie라는 단어는 프랑스어지만 그 기원은 고대 그리스시대까지 올라간다.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로 익히 알려진 히포크라테스는 인간을 4가지의 종류로 나눈다. 이른바 4체액설이다. 인간이 태어나서 경험하게 되는 4가지의 환경이 실은 인간이 기원한 곳이라고 믿은 것이다. '열기와 습기, 건기와 냉기'는 각각 '불과 바람, 물과 흙' 사이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러한 4가지는 각각 다혈질 (多血質, sanguine temperament), 점액질(粘液質, phlegmatic temperament) ,담즙질 (膽汁質, choleric temperament), 우울질(憂鬱質, melancholic temperament)로 불린다. 동양에서는 사상의학이라고 부르는 학문과 비슷하다.
우울질인 멜랑꼴리는 9세기 이전까지 서양에서는 병리설에 임각해서 하나의 병으로 인식되었다. 4가지의 체액이 균형을 이루면 건강하지만 어느 한쪽이 과다하게 나오면 병적 증후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슬퍼하는 감정이 보통 우울이라면 '오래 지속되는 슬픔의 감정'인 멜랑꼴리는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들고 삶의 의지를 꺽이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우울질이 병이라고 생각했고, 멜랑꼴리는 균형을 잃어 버린 결과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이것은 피해야 하는 감정이나 상태가 되었다. 특히나 그리스철학자들에게는 이 병을 앓는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문제들'이라는 책에서 철학자들이 멜랑꼴리의 상태에 잘 빠지는데 그 이유는 '죽음의 문제', '삶의 이유', '공동체와 자유'와 같은 고민들을 할 수록 멜랑꼴리의 상태가 된다고 믿었다.
그 말인 즉, 삶의 문제를 고민하면 할 수록
멜랑꼴리 상태가 된다고 믿었던 것이다.
고대 서양에서 멜랑꼴리는 우울감과 절망감이 인간의 기본적인 균형이 깨진 병적인 현상으로 봤다면, 중세에는 천재들이 걸리는 병이라는 생각이 사라졌다. 중세시대의 지배적인 종교였던 기독교의 관점에서는 '우울함이나 삶의 대한 고민'은 신을 제대로 못만난 증거가 되며 그것은 하나의 저주였던 것이다. 9세기까지 히포크라테스와 엠페도클레스의 제자들이 주장한 4체액설이 우세했다면, 중세에는 종교적인 이유로 멜랑꼴리는 병을 넘어서 저주로 불리게 된 것이다. 우울질이 저주라면 이것을 신으로 부터 왔고, 이러한 저주의 근원은 결국 모든 사람이 경험하고 있는 '원죄'가 되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은 우울증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 되었다. 원죄를 가진 인간이라면 누구나 죽음을 경험할 수 밖에 없고, 죽음을 이겨낸 그리스도를 믿는 것 외에는 이러한 '멜랑꼴리'의 형벌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죄의 형벌로
멜랑꼴리의 일부분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된다
의미의 전환은 중세를 넘어서 르네상스 시대의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99)에 의해서 다시 한번 일어난다. 신플라톤 주의자였던 피치노는 이데아의 세계를 모방한 현실에서 진정한 이데아의 존재를 알게 해주는 것은 미적 감각이라고 생각했다. 중세시대까지 멜랑꼴리는 신의 저주였지만, 르네상스를 지나면서 멜랑꼴리는 예술가들에게 주어진 이데아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영감이 된다. 멜랑꼴리한 시인과 예술가들은 신의 존재를 이 세상에 알려주면서도 신이 만든 이 세계의 아름다움을 보게 만드는 특별한 존재였다. 멜랑꼴리를 찬양하는 사람들은 르네상스 시절의 멜랑꼴리의 개념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1500년대에는 알프레드 뒤러가 멜랑꼴리아라는 그림을 그린다. 뒤러는 원래 자화상을 그린 화가로 유명한데, 뒤러의 경우에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자신이 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우울질이 깊어졌고, 자신이 그러한 상황에 처한 것을 스스로 인식했다. 뒤러의 그림에서 보이는 천사의 날개를 달고 있는 사람은 철학자이자 예술가이며 뒤러 자신이기도 하다. 시대와 운명 앞에서 현실을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가진 우울함과 슬픔, 두려움과 환희 사이를 오가는 존재로서의 괴리를 그린 것이다. 멜랑꼴리가 심한 사람들이 오히려 인간계를 넘어서 천사와 사람 사이에서 특정한 존재라고 본 것이다. 뒤러에 와서 멜랑꼴리의 개념은 찬사를 받는 개념으로 높아졌고 계몽주의시대가 오기 전까지 이러한 후광효과는 이어졌다.
낭만주의는 영어로 Romanticism이다. 말 그대로 고대 로마 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낭만주의는 17세기 초에 독일에서 시작했고 중기와 후기를 지나면서 지금 우리가 편하게 이야기하는 '이상으로 가득찬 미래를 꿈꾸는' 개념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17세기의 낭만주의는 그렇지 않았다. 현실과 이상을 하나로 모아서 새로운 길을 제시하는 사람들이 낭만주의자였고,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과 사람, 역사와 문명이 만나는 지점을 계속 찾으려고 했다. 특히 헤겔의 '변증법'은 '정-반-합'이라는 방식으로 정신과 현실을 연결하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해서 미래를 제시하는 방법이었다. 그래서 초기 낭만주의자들은 진취적이었고, 도전적이었으며 무엇이든 연결하려고 하는 사람들이었다.
이러한 낭만주의의 개념에서 멜랑꼴리는 그 자체로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이 만나는 지점이었다. 특히 자연이 주는 생동감과 인사이트를 인간의 문명에 가지고 오는 역할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멜랑꼴리한 사람들이었다. 돈키호테가 그랬고 자연과학자들이 그랬으며, 건축가와 미술가들이 자신들이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을 낭만주의 안에서 표현했다. 이들의 특징은 하나같이 영감 가득한 눈빛을 가진 멜랑꼴리한 낭만주의자들이었다. 이러한 낭만주의의 문명 비판으로도 연결되고 민족주의로도 연결된다. 혁명의 씨앗이 되기도 하면서 문예부흥의 기본이 되기도 한다. 이때 당시의 낭만주의자들은 위험한 사람이면서도 천재적인 면모가 있는 사람들이었다.
피히테와 스피노자를 양립하고 결합하려고 할려고 시도했던 낭만주의자들을 살펴볼 수 있다. 낭만주의자들에게는 관념론과 실재론이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도전의 대상이 된다. 피히테의 관념론-비결정론-이원론은 스피노자의 실재론-결정론-일원론과 충돌했다. 이 양립불가능성을 완전히 알고 있으면서도 낭만주의자들은 여전히 그들을 결합하고 싶어했다. 그들이 보기에 피히테와 스피노자는 각각 진리의 절반만을 포착했기 때문에 그들을 결혼시켜야만 했다. 데카르트의 인식론을 '주관주의'로 치부해버리면 쉽게 관념론을 부정해 버릴 수 있지만, 이들이 고민한 '어떻게 우리는 의식의 너머에 자연 혹은 역사가 있다는 것을 아는가?' 를 주관주의적 접근으로는 해결되지 않는다. 낭만주의 형이상학에서는 이것을 제대로 보았다. 낭만주의 형이상학을 유기체적 자연개념의 맥락 안에 위치시미견, 이러한 형이상학이 완전히 이해가능한 것이 되고, 일관적이 것이 될 수 있다_프레데릭 바이저 '낭만주의의 명령, 세계를 낭만화하라
고대에서 4체액설을 통한 병리적인 방식으로 우울질인 멜랑꼴리를 보았다면 근대에 와서는 정신분학학의 관점에서 멜랑꼴리가 우울증이라는 병으로 취급된다. 계몽주의 이후에 과학적 사고가 반영되어 4체액설이 과학적이고 의학적인 병리설로 발전하게 된다. 19세기 이후부터는 우울질이 우울증이 되고, 천재적인 영감이나 신적인 영감을 나타내기 보다는 신경전달물질의 과민으로 발생하는 질병이 되었다. 특히 너무나도 유명한 프로이트에게로 와서는 '애도와 멜랑꼴리'라는 개념으로 소개가 되면서 최근까지 멜랑꼴리에 대한 개념이 이어지고 있다.
프로이트는 정신분석학의 근본문제들이라는 책에서 '애도와 멜랑꼴리'에 대한 내용을 방대하게 소개한다. 한국어로 번역될 때는 '슬픔과 우울증'으로 쓰기는 하지만 앞에서 우리가 역사적으로 파악해본 것처럼 이 글에서는 '애도와 멜랑꼴리'로 봐야 한다. 프로이트가 가진 기본 전제는 '성적욕망과 같은 삶에 대한 욕망인 리비도'가 인간의 열정과 동기를 끌어낸다는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대해서 집중하게 되고 자신의 관심과 이해를 모두 쏟아 부어서 사랑하게 되어 있다. 이것을 일명 '리비도 집중현상'이라고 한다. 보통 리비도는 '성충동'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생명충동'이면서 자신의 안에서 바깥으로 발전하는 자연스러운 인간존재의 본질이다. 리비도는 살아있는 생명체에 같은 생명체로서 욕망하는 것이 당연하다.
리비도 집중현상이 생명에 대해서 자연스러운 반면,
생명이 아닌 것에 집중하는 것은 프로이트가 보기에는 병리적인 현상이었다.
예를 들면, 사람이나 동물을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리비도이다. 특히 인간존재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욕망이다. 그런데 '국가'라는 개념을 사랑하거나, '가족'이라는 집단 자체를 사랑하거나 '생명이 없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은 잘못된 리비도 집중현상이 일어나게 된다. 죽어있는 것을 사랑하는 병을 '네크로필리아'라고 한다. 리비도는 회수할 수 있고 반응할 수 있고 보상을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이 좌절될 때 병적 증후가 나타나게 되는데, 당연히 살아있는 것을 사랑하지 않으면 회수가 불가능하게 된다.
애도와 멜랑꼴리
이렇게 리비도 집중현상이 자연스러운데, 살아있는 대상은 언젠간 죽거나 사라진다. 그렇게 되면 리비도의 관점에서 애도와 멜랑꼴리가 발생한다. 리비도를 집중했던 대상이 사라지면서 그동안 집중했던 리비도를 회수해야 한다. 일순간에 사라진 대상에게 쏟아 부었던 리비도를 회수하는 정상적인 과정이 애도라고 할 수 있다. 애도는 건강한 상황이다.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면서 리비도를 회수하는 과정이 있어야 슬푸고 상실감이 크지만 다시 리비도를 다른 대상에 집중해서 살아갈 수 있게 된다. 시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리비도가 서서히 회수되면서 내면으로 돌아온다. 그것은 기억의 영역에서 시작되는데 감정과 이미지들이 회수된 리비도에 의해서 회복이 된다. 그리움은 남겨지고 미움과 실수는 용서하고 흘러보내는 승화의 작용이 발생하는 것이다.
리비도가 정상적으로 회수되는 과정이 애도라면, 정상적으로 회수되지 않고 정체되어 있는 상황을 멜랑꼴리라고 한다.
리비도를 집중했던 대상에는 원망과 선망이 동시에 존재하는데 적절한 애도과정을 거치면 원망은 사라지고 선망이 남으면서 자신의 마음도 평안을 찾고 일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멜랑꼴리는 프로이트에게서는 리비도가 회수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따라서 멜랑꼴리의 상황에 있는 사람은 자신이 왜 이렇게 감정적인 통제가 안되고 일상을 살 수 없는지 알지 못한다.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그동안 리비도를 집중했던 사람에 대한 원망도 아니고 선망도 아닌 애매모호한 관계로 남게 된다. 상처로 남는 경우도 있고 대부분은 이러한 멜랑꼴리를 무시하게 된다. 그래서 이것은 트라우마로 발전하게 되면서 해소되지 못하고 항상 그 부분에서 괴로워하고 힘들어 하게 된다. 그럼 어떻게 해야할까?
논리적 해명과 도덕적 책임
프로이트는 멜랑꼴리에서 애도로 전환되기 위해서는 2가지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첫번째는 리비도를 집중했던 대상이 왜 사라졌는지에 대한 논리적이고 이성적인 해명이다. 두번째는 그 대상이 사라진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에 대한 '도덕적 책임'이다. 억울한 죽음이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이별은 대부분 멜랑꼴리가 된다. 세월호 참사, 이태원 참사와 같은 일들은 전국민들을 멜랑꼴리로 빠드리게 만든다. (이 부분은 다음 글에서 자세하게 다루어 본다.) 멜랑꼴리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적절한 해명과 도덕적 책임소재를 분명히 하지 않는 이상 멜랑꼴리는 언젠가 폭발한다. 개인적으로는 멜랑꼴리에 빠진 사람들은 처음에는 무기력해지고 삶의 의지를 잃어 버리게 된다. 그러다가 도덕적 책임을 스스로에게 지우고,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그러다가 언젠가 제대로된 해명이 이루어지지만 응당 받아야할 책임을 지는 사람이 책임전가하고 있는 것을 만날 때 이것은 개인적으로는 살인과 폭력으로, 조직적으로는 혁명으로 전환된다. 이것을 자세하게 논의했던 철학자는 자크라캉이다.
자크라캉은 프로이트를 새롭게 해석해서 그동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을 과학으로 매도해버린 프로이트의 딸 안나프로이트와 대척점에 서게 된다. 라캉은 '모든 욕망은 타인의 욕망이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기면서 우리가 언제를 쓰는 순간 이미 다른 사람의 욕망을 가지고 살게 되고, 자신의 욕망의 핵심인 '주이상스'를 매번 피해가면서 망상, 조현병, 히스테리, 강박이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라캉에게 삐둘어진 욕망의 증상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자신이 피해가고 있는 주이상스' 즉,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욕망을 마주하는 것 뿐이다. 그래서 라캉은 자신이 하려는 것은 정신분학학이라는 과학적인 이론이 아니라 '정신분석 임상'이라는 각 사례마다 다른 상담의 과정이라고 주장했다.
안티고네의 이야기
안티고네는 오이디푸스 왕의 딸이다. 아버지이자 왕인 오이디푸스가 스스로 눈을 찔러 실명한 채로 떠돌아 다니게 되고, 두 오빠 폴리네이케스와 에테오클레스가 왕권을 놓고 다투다 모두 죽는다. 그리하여 안티고네의 삼촌인 크레온이 왕이 된다. 크레온은 애국자인 에테오클레스만 성대히 장례를 치러주고 반역자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는 들에 그냥 버려두어 야생동물들에게 먹히게 하라는 포고를 내린다. 안티고네는 혈육의 정에 이끌려 크레온의 명령을 어기고 들에 버려진 폴리네이케스의 시체를 몰래 묻어준다. 이 사실을 안 크레온은 안티고네를 소굴에 가둔다. 안티고네를 연모하던 크레온 왕의 아들 하이몬도 안테고네를 따라 죽기로 결심하는데 크레온은 아들이 죽게 된 것에 놀라서 안티고네가 갇혀 있는 소굴로 달려간다. 하이몬은 아버지를 보자 격분하여 칼로 찌르려고 하고 크레온은 도망친다. 하이몬은 자살하고 이 사실을 안 크레온왕의 아내 에우리디케도 침대에서 자살한다.
라캉은 살아 있는 동안 세미나를 통해서 강연을 했는데, 특히 세미나 7에서는 그 유명한 '안티고네'의 이야기로 멜랑꼴리에 빠진 사람이 어떤 행동을 보이는지를 보여준다. 안티고네 이야기에서 살펴볼 수 있는 것처럼, 안티고네는 아버지와 두 오빠가 모두 죽은 상황에서 삼촌인 크레온이 왕이되는 과정을 경험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두 오빠 중에서 폴리네이케스는 애국자라 아니라면서 시체를 그대로 내버려 두게 만든다. 그 이유가 제대로 해명되지 않고 오빠들이 죽은 책임에 대해서도 제대로 리비도가 회수되지 않은 안티고네는 멜랑꼴리에 빠진다. 그래서 결국은 안티고네는 자신의 오빠를 묻어주고 크레온은 무덤속에 안티고네를 생매장시킨다.
대상이 상실된 상황에서 애도가 금지된 상황에 처한 사람은
'죽음을 무릅쓰고' 애도를 하게 된다.
크레온이 법과 질서를 만드는 국가라고 본다면 안티고네는 멜랑꼴리를 경험하는 개인이다. 그 개인은 안티고네처럼 자신의 주이상스에 집중하는 순간 그것을 피하지 않고 몸숨을 바쳐서 금지한 것들을 금지하는 행동을 하게 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도 명확하게 입증이 되고, 이러한 멜랑꼴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왜 혁명에 가담하는지를 절대로 이해하지 못한다. 멜랑꼴리와 주이상스가 만났을 때 아무도 막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른다. 프랑스혁명이 그랬고, 미국독립혁명이 그랬고 5.18민주화운동이 그랬고 4.19혁명이 그랬다. 논리적 해명과 도덕적 책임이 없는 멜랑꼴리는 결국 어느방식으로 돌아온다. 보통은 프랑스혁명에서처럼 '기요틴'이라는 피의 혁명을 불러 일으킨다.
고대에서부터 현대까지 멜랑꼴리의 역사를 살펴보았다. 멜랑꼴리는 천재들의 영감으로도 불리웠다가 병으로도 불리다가 인간의 근본과 연결되는 개념으로도 사용된다. 그런 말이 있다. 이별을 하면 '충분히 아파해야 한다'라는 말 말이다. 다시 말하면, 충분한 애도의 과정이 있어야만 리비도를 집중한 사람들에게 쏟았던 욕망을 회수할 수 있고 다시 일상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이든 집단적이든, 국가적이든 멜랑꼴리한 이들이 많이 발생한다. 프로이트와 라캉의 이론들을 통해서 어느정도의 멜랑꼴리가 해소될 수는 있지만 그 과정을 설계하고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사회적 갈등이라는 것의 근본에는 이러한 멜랑꼴리가 자리잡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것을 제대로 전환하지 못하면 스스로를 괴롭게 하다가 언젠가는 누구가에게 책임을 덮어씌울 수도 있다. 애도의 과정이 필요하다.
참고자료
이 논문의 의도는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철학자 마르실리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99)의 철학에서 미 개념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이다. 플라톤과 플로티누스가 하나의 통일적인 근본사상으로 소생되어 있는 피치노의 사상은 미는 선의 광휘라는 플라톤주의적 성찰이 중심이 되고 있으며, 르네상스 예술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다. 인문주의와 <플라톤 아카데미>를 배경으로, 피치노는 ‘플라톤 신학’을 통해 플라톤 철학과 그리스도교 신학의 본질적인 일치를 증명하였다.
『플라톤 신학』의 부제는 영혼불멸성으로서, 영혼을 중심적 위치로 하는 우주론적 존재위계를 체계화하였다. 우주의 매개자로서의 인간영혼의 목표는 점진적인 내적 상승 즉 관조를 통한 신과의 합일이며, 이때 인간은 영혼불멸을 얻는다. 따라서 영혼불멸성은 인간의 존엄과 신성의 근거이다. 피치노의 우주론과 관련하여, 미는 능동적으로 사랑을 베푸시는 신이 맨 먼저 천사들을 비추고 나서 인간의 영혼을 조명하고 마지막으로 물질세계를 밝혀주는 신의 자태의 광휘이다. 이러한 미의 본질적 특성이 현상하기 위한 선결조건으로서 미의 또 다른 원리는 수적질서이다.
따라서 미는 ‘신성이 빛나는 비례’이며, 사랑을 불러일으킴으로써 인간영혼의 상승의 동인이다. 신적 선의 광휘로서의 미를 향유하려는 욕구인 사랑은 우주적 조화와 통일의 원리로서, 신적․예지적인 것과 감각적인 것을 매개한다. 사랑의 광기를 통하여 인간영혼은 신과 합일하고 지고한 행복과 영혼불멸을 얻는다. 바로 이것이 피치노의 ‘플라톤적 사랑’의 의미이다. 이로써 피치노 사상의 궁극 목표인, 플라톤주의 전통으로부터 유래하는 인간영혼의 신에게로의 내적 상승이라는 관념을 전제로 하고, 그의 철학의 지축인 영혼불멸성 및 미와 사랑의 관계와 관련하여, 피치노에게 미는 인간영혼의 내적 상승의 동인이다.
즉 피치노의 ‘플라톤적 신학’에서 미 개념의 실제적 의미는, 바로 인간이 신적 선함이 반사된 아름다운 사물을 봄으로써 불러 일으켜져서 자기 자신을 성찰하게 되고 내적으로 아름다운 선한 존재로 변형되어 자신의 신성을 발견하게 된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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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H4R0nxnhZe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