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들의 생각법_테레자 보이어라인
그러니깐 메타인지에 관련된 생각을 하게된 이유는 바로 이 책 때문이다. 한국에서는 '천재들의 생각법'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독일어로는 '아인슈타인처럼 생각하기'이다. 아인슈타인은 역사상 가장 천재로 알려져 있지만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세간에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아인슈타인과 같은 천재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10가지의 접근을 제안해서 신선하다. 더욱이 학업이 늦은 아이들이나 아이큐가 높지 않은 아이들이 어떻게 하면 쉽게 학교공부를 따라는 것을 넘어서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까를 공부하다 보니 이 책 만한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약하자면 테레자 보이어라인의 '천재들의 생각법'은 시대를 초월한 위대한 인물들이 어떻게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사고했는지를 분석하여, 우리에게 더 깊은 통찰력을 선사하는 책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10가지 천재들의 생각법은 다음과 같다. 안그래도 메타인지에 대한 책을 쓰고 있던 차에 이번에 정리해보자는 생각에 정리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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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은 1879년 독일 울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언어 발달이 다소 늦은 편이었다. 그는 관습적인 학교 교육에 적응하지 못했으나 나침반의 움직임을 보며 자연의 신비에 깊은 경외심을 느꼈다. 스위스 연방 공과대학교를 졸업한 후 취리히 특허청에서 심사관으로 근무하며 현대 물리학의 근간을 흔드는 논문들을 발표했다. 그는 단순히 복잡한 수식을 계산하는 수학자가 아니라 우주의 원리를 직관적으로 통찰하는 철학자에 가까웠다. 1905년 '기적의 해'에 발표한 광전효과와 상대성 이론은 인류가 시공간을 바라보는 방식을 영구히 바꾸어 놓았다. 그는 나치의 탄압을 피해 미국 프린스턴 고등연구소로 자리를 옮긴 후에도 통일장 이론 연구에 매진했다. 평생토록 어린아이와 같은 호기심을 유지했던 그는 과학적 성취를 넘어 평화주의자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의 생애는 고정관념에 갇히지 않은 자유로운 영혼이 어떻게 진리에 도달하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다.
아인슈타인이 주장한 생각법의 핵심은 언어나 수학적 기호 이전에
존재하는 '이미지'와 '직관'이다.
그는 스스로를 논리적인 사색가라기보다 시각적인 몽상가로 정의했으며, 이를 '사고실험'이라 명명했다. 그는 머릿속에서 빛의 속도로 달리는 기차에 올라타거나 중력이 없는 엘리베이터에 갇힌 상황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러한 시각적 형상화는 복잡한 수식보다 먼저 문제의 본질을 꿰뚫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가 되었다. 그는 언어라는 틀이 사고의 자유를 제한한다고 믿었으며, 추상적인 개념을 물리적인 그림으로 변환하여 이해했다. 이러한 방식은 기존의 물리 법칙이 설명하지 못하는 모순된 상황을 해결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시각화된 모델이 완성된 후에야 비로소 그는 그것을 수학이라는 언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그의 이론은 결국 인간의 인지 능력이 언어의 경계를 넘어설 때 비로소 거대한 도약이 일어남을 증명한다.
'언어 없는 생각법'의 가장 큰 특징은 논리적 인과관계에 얽매이지 않고 대상의 본질을 직관적으로 포착한다는 점이다. 그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나 상충하는 데이터가 나타났을 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거나 배제하지 않았다. 대신 그 모순된 상태를 '애매모호함' 속에 그대로 두며 마음속의 이미지가 성숙해지기를 기다렸다. 이러한 유예의 과정은 뇌가 새로운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도록 충분한 여유 공간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또한 이 생각법은 감각적인 비유를 활용하여 매우 거시적인 시스템을 미시적인 현상으로 치환하여 사고한다. 공간이 휘어지는 개념을 무거운 공이 놓인 고무판에 비유하는 식의 사고는 그만의 독창적인 접근법이다. 논리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을 상상력을 통해 먼저 점유하고, 이후에 논리로 뒷받침하는 순차적 과정을 거친다. 이는 창의적 사고가 단순한 지식의 조합이 아니라 전체를 조망하는 통찰에서 시작됨을 시사한다.
우리가 아인슈타인의 생각법을 일상에 적용한다면, 복잡한 비즈니스 문제를 해결할 때 엑셀 수치보다 먼저 상황의 지도를 그려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기업의 경쟁 구도를 실제 전쟁터의 지형이나 생태계의 먹이사슬 이미지로 시각화하여 상상해 보는 것이다. 만약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면 그것을 막힌 파이프라인이나 흐릿한 렌즈의 이미지로 떠올려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아인슈타인이 빛을 타고 날아가는 자신을 상상했듯, 우리도 프로젝트의 최종 결과물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모습을 영화처럼 상상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논리적 빈틈은 억지로 메우려 하지 말고 이미지의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결되도록 둔다. 회의할 때도 말로만 논쟁하기보다 그림이나 모형을 활용해 직관적인 공유를 시도하는 것이 이 생각법의 실천이다. 언어의 장벽을 허물고 감각의 언어로 생각할 때 비로소 우리는 아인슈타인이 보았던 우주의 질서를 엿볼 수 있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1844년 독일 뢰켄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고전 문학에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다. 24세라는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바젤 대학교의 고전 문헌학 교수로 초빙되었으나 건강 악화로 인해 교수직을 내려놓았다. 이후 그는 알프스산맥의 고립된 장소들을 전전하며 고독한 방랑자로서 자신의 철학 체계를 구축하기 시작했다. 그는 당대 유럽 사회를 지배하던 기독교 도덕과 합리주의가 인간의 생명력을 억압한다고 비판했다. 망치를 든 철학자로 불린 그는 기존의 우상들을 파괴하고 인간 본연의 의지를 회복하고자 했다. 그의 삶은 만성적인 질병과 외로움으로 가득했으나, 그는 고통이야말로 정신을 예리하게 만드는 최고의 숫돌이라 믿었다. 1889년 정신적 붕괴를 겪기 전까지 그는 인류에게 '위버멘쉬(초인)'라는 새로운 인간상을 제시했다. 그의 치열한 삶은 안일한 위로를 거부하고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하려는 인간 정신의 승리를 상징한다.
니체 사상의 중심에는 모든 생명체가 스스로를 극복하고 더 강해지려는 본능인 '권력 의지'가 자리 잡고 있다. 그는 진리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자신의 생존과 지배를 위해 만들어낸 해석의 결과라고 주장했다. "신은 죽었다"는 그의 선언은 절대적인 가치 체계가 붕괴한 시대에 인간이 스스로 가치의 입법자가 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는 우리가 '진리'라고 믿는 많은 것들이 사실은 약자들이 강자를 시기하여 만든 도덕적 족쇄일 뿐이라고 간파했다. 이를 '노예 도덕'이라 칭하며, 이를 타파하고 자신의 삶을 긍정하는 '주인 도덕'으로 나아갈 것을 촉구했다. 영원회귀 사상을 통해 그는 현재의 삶이 무한히 반복된다 하더라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태도를 강조했다. 그의 이론은 기존의 모든 믿음을 해체하여 그 밑바닥에 숨겨진 인간의 적나라한 욕망과 의지를 드러내는 과정이다. 이는 곧 허무주의를 통과하여 진정한 자기 긍정에 이르는 역설적인 진실 추구의 길이다.
니체의 생각법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관습과 상식에 대해 '왜?'라고 묻는 파괴적인 의심에서 시작된다. 그는 진실의 반대말을 거짓이 아니라 '안일함'과 '평온함'으로 정의하며, 확실한 믿음이야말로 진실의 가장 큰 적이라고 경고했다. 이 사고법은 자신의 내면을 향한 냉혹한 성찰을 요구하며, 내가 믿고 있는 정의나 선이 사실은 비겁함의 위장이 아닌지 질문하게 한다. 그는 '망치로 철학하기'를 통해 겉으로는 견고해 보이는 사상의 벽을 두드려 그 안이 비어 있음을 확인했다. 이 생각법의 특징은 고통과 혼란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 속으로 뛰어들어 자신의 한계를 시험하는 데 있다. 또한 단일한 관점을 거부하고 다양한 시각에서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주의'를 지향한다. 이는 나만의 독자적인 가치를 창조하기 위해 기존의 모든 권위를 부정하는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사고 방식이다. 결국 니체의 생각법은 타인이 만들어 놓은 길을 걷지 않고 스스로 길을 내는 고독한 창조자의 도구다.
일상 속에서 니체식 생각법을 실천한다면, 우선 내가 추구하는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정말 내 것인지 의심해 보아야 한다.
사회가 정한 좋은 직장, 안정된 삶이라는 가치가 사실은 나의 잠재력을 억압하는 '노예 도덕'은 아닌지 망치로 두드려 보는 것이다. 타인의 시선이나 도덕적 비난이 두려워 하고 싶은 일을 포기하고 있다면, 그것은 진실한 삶이 아닌 안일한 도피일 뿐이다. 누군가에게 화가 났을 때 그 분노의 원인이 상대의 잘못인지, 아니면 나의 열등감에서 비롯된 '원한(Ressentiment)'인지 냉정하게 분석해 본다. 일상의 사소한 선택에서도 "이 순간이 영원히 반복된다 해도 나는 이 선택을 하겠는가?"라고 자문하며 영원회귀의 관점을 적용한다. 이러한 사고는 우리를 관습의 노예에서 자기 삶의 주인으로 격상시키며, 무의미한 고통조차 승화시킬 힘을 준다. 고통스러운 진실을 마주하는 것은 힘들지만,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비로소 '나 자신'이 되는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니체의 생각법은 안전한 항구에 머물기보다 거친 파도를 향해 돛을 올리는 용기 있는 영혼들을 위한 지침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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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버라 매클린톡은 1902년 미국 코네티컷에서 태어난 유전학계의 선구자로, 평생을 옥수수 연구에 헌신한 과학자다. 그녀는 여성이 학계에서 인정받기 어려웠던 시절에도 굴하지 않고 코넬 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매클린톡은 실험실의 차가운 데이터보다 살아있는 생명체 자체에 집중하는 독특한 연구 태도를 보였다. 그녀는 옥수수 밭에서 수만 시간 동안 식물을 관찰하며 각 개체의 미세한 차이를 육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경지에 도달했다. 동료 과학자들이 그녀의 이론을 이해하지 못해 20년 가까이 무시당하는 시련을 겪었지만, 그녀는 결코 자신의 통찰을 포기하지 않았다. 그녀는 옥수수와 대화를 나누듯 깊은 정서적 교감을 나누었으며, 이를 통해 생명의 본질을 이해하고자 했다. 결국 1983년, 81세의 나이로 단독 여성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며 자신의 연구가 옳았음을 전 세계에 증명했다. 그녀의 삶은 인내와 끈기, 그리고 생명에 대한 깊은 애정이 일구어낸 고결한 투쟁의 기록이다.
매클린톡이 발견한 '전이 가능한 유전자(Jumping Genes)'는 유전 정보가 고정되어 있다는 당시 학계의 정설을 완전히 뒤집는 혁명적인 발견이었다. 그녀는 유전자가 염색체상의 고정된 위치에 머물지 않고 환경에 따라 자리를 옮기며 형질을 변화시킨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는 생명체가 주변 환경의 스트레스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유전 정보를 능동적으로 재구성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녀의 이론에 따르면 유전체는 단순한 설계도가 아니라 상황에 반응하고 상호작용하는 역동적인 '유기체적 시스템'이다. 옥수수 낱알의 다양한 색깔 변화는 단순한 오류가 아니라 생명체가 생존을 위해 선택한 정교한 조절 기제의 결과물이다. 이러한 발견은 현대 분자 생물학과 유전학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으며 유전자의 적응력을 이해하는 열쇠가 되었다. 그녀는 생명을 부분의 합이 아닌 전체의 조화로 보았고, 유전자를 그 조화 속에서 춤추는 행위자로 묘사했다. 이 이론은 생명을 기계론적 관점에서 유기체적 관점으로 전환하는 인식의 대전환을 가져왔다.
매클린톡의 '유기체적 생각법'은 분석 대상을 타자로 두지 않고
자신과 동일시하는 깊은 '몰입'에서 시작된다.
그녀는 현미경 속의 염색체를 관찰할 때 "마치 자신이 그 속으로 들어가 염색체의 일부가 된 것 같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주객통합의 사고는 대상을 객관화하여 조각내는 기존 과학의 방법론과는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이 생각법의 두 번째 특징은 모든 요소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관계적 관점'이다. 하나의 유전자가 변하는 이유는 독립적인 우연이 아니라 전체 게놈과 환경이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사건이다. 따라서 그녀는 작은 변화 하나를 이해하기 위해 전체 시스템의 흐름을 살피는 거시적 통찰을 유지했다. 또한 직관을 중시하되 이를 뒷받침할 꼼꼼한 세부 관찰을 결코 소홀히 하지 않는 정밀함을 보였다. 이는 감성과 이성이 조화를 이룬 사고법이며, 생명의 복잡성을 존중하는 겸손한 태도를 바탕으로 한다.
유기체적 생각법을 현대 사회의 조직 관리에 적용한다면 팀원을 단순히 기능적인 부품으로 보지 않는 태도와 같다. 조직 내의 한 직원이 겪는 문제는 개인의 결함이 아니라 조직 전체의 분위기와 환경이 상호작용한 결과로 해석하는 것이다. 매클린톡이 옥수수의 색깔 변화에서 전체 유전체의 적응을 읽어냈듯, 우리는 사소한 현상에서 시스템 전체의 신호를 포착해야 한다. 예를 들어 기후 위기 문제를 다룰 때도 특정 오염원만 제거하려 하기보다 지구라는 거대 유기체의 자정 작용과 연결성을 고려해야 한다. 인간 관계에서도 상대방을 고정된 성격으로 규정하지 않고, 나와의 상호작용 속에서 변화하는 역동적인 존재로 대우하는 것이 이 사고법의 실천이다. 복잡한 문제를 해결할 때 부분으로 나누어 분석하기보다 전체의 맥락 속에서 각 부분의 역할을 살피는 지혜가 필요하다. 매클린톡의 생각법은 파편화된 정보가 넘쳐나는 현대인에게 '연결의 미학'과 '전체론적 통찰'의 중요성을 일깨워준다.
지그문트 프로이트는 1856년 현재의 체코 지역인 모라비아에서 태어나 오스트리아 빈에서 평생을 보낸 정신분석학의 창시자다. 신경과 의사로 경력을 시작한 그는 히스테리 환자들을 치료하며 마음의 병이 신체적 결함이 아닌 심리적 갈등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자유연상' 기법을 통해 의식 아래 감춰진 '무의식'이라는 거대한 대륙을 탐험하기 시작했다. 그가 발표한 성욕과 공격성에 관한 이론들은 당시 보수적인 사회에 엄청난 충격과 비난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는 인간 영혼의 어두운 구석을 대면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며 인류가 스스로를 바라보는 시각을 완전히 혁신했다. 그는 코페르니쿠스, 다윈과 더불어 인간의 자만심에 상처를 입힌 세 명의 사상가 중 한 명으로 꼽힌다. 말년에는 나치를 피해 런던으로 망명하여 암 투병 중에도 연구를 지속하다 1939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생애는 인간의 이성 뒤에 숨겨진 비합리적인 진실을 폭로하기 위한 치열한 탐구의 여정이었다.
프로이트가 정립한 핵심 이론은 인간의 정신이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라는 세 가지 요소의 역동적인 상호작용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다. 이드는 원초적인 본능과 욕망을, 초자아는 사회적 규범과 도덕적 양심을, 자아는 이 둘 사이를 중재하며 현실에 적응하는 역할을 한다. 그는 우리가 인지하는 의식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며, 수면 아래의 거대한 무의식이 우리의 행동 대부분을 결정한다고 보았다. 특히 어린 시절의 경험과 부모와의 관계가 성인기의 성격 형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강조했다. 꿈은 억눌린 무의식의 소망이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통로이며, 말실수나 건망증조차 무의식적 동기가 발현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리비도라고 불리는 성적 에너지가 인간 삶의 핵심적인 동력원이라고 주장하며 인간 행위의 숨겨진 목적을 파헤쳤다. 이러한 이론은 인간이 합리적인 존재라는 믿음을 깨뜨리고, 우리 내면에 도사린 원초적이고 비합리적인 정체를 드러냈다.
프로이트의 '정체를 폭로하는 생각법'은 인간의 표면적인 행동이나 말 뒤에
숨겨진 진정한 의도를 의심하고 파헤치는 방식이다.
그는 사람들이 자신을 포장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어기제'를 무너뜨려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게 만든다. 이 사고법은 "왜 내가 이렇게 행동했을까?"라는 질문을 멈추지 않고, 자신의 욕망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용기를 요구한다. 단순히 논리적으로 타당한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 논리 뒤에 숨은 감정적 동기나 억압된 상처를 찾아내는 데 집중한다. 이는 일종의 심리적 탐정 활동과 같아서 사소한 단서로부터 거대한 내면의 구조를 유추해낸다. 이 생각법의 특징은 인간의 비열함이나 이기심, 비합리성을 부정하지 않고 이를 분석의 대상으로 삼는 냉철함에 있다. 또한 현재의 문제는 반드시 과거의 어떤 원인과 연결되어 있다는 '심리적 결정론'을 바탕으로 한다. 결국 프로이트식 사고는 우리가 스스로에게 하는 거짓말을 멈추고 벌거벗은 진실을 직시하게 만드는 힘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누군가에 대해 과도한 분노를 느낄 때 프로이트적 생각법을 통해 자신의 투사(Projection)를 확인할 수 있다. 상대의 어떤 행동이 싫은 이유가 사실은 내가 가진 단점이 상대에게 투영되어 나타난 것이 아닌지 분석해 보는 것이다. 또한 습관적으로 하는 말실수나 반복되는 꿈을 기록하여 그것이 상징하는 나의 무의식적 갈등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쇼핑 중동이나 과식과 같은 행동 뒤에 숨겨진 정서적 결핍이나 보상 심리를 파악하는 것도 이 생각법의 좋은 예다. 직장 상사와의 갈등이 혹시 어린 시절 엄격했던 아버지와의 관계를 무의식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폭로의 과정은 처음에는 불쾌하고 수치스러울 수 있지만, 자신의 정체를 정확히 알게 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아 조절이 가능해진다. 무의식의 노예로 살지 않고 자신의 주인이 되기 위해 프로이트의 생각법은 필수적인 도구가 된다. 우리는 이를 통해 타인을 비난하기보다 자신의 내면을 치유하고 더 성숙한 인격으로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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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나르도 다빈치는 1452년 이탈리아 빈치 마을에서 태어나 르네상스 시대를 상징하는 '보편적 인간(Uomo Universale)'의 전형이 되었다. 그는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나 자연이라는 거대한 스승으로부터 모든 것을 배웠다. 그는 화가로서 '모나리자'와 '최후의 만찬' 같은 걸작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엔지니어, 해부학자, 음악가로도 정점에 도달했다. 다빈치는 왼손잡이였으며 거울에 비춰야만 읽을 수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수만 장의 노트를 남겼다. 그는 인체를 직접 해부하며 근육과 신경의 구조를 정밀하게 묘사했고, 이는 그의 그림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기초가 되었다. 또한 물의 흐름을 관찰하여 수로 공학에 적용하고, 새의 날개 구조를 연구해 비행 기계의 도면을 그렸다. 그는 지식의 경계를 나누지 않았으며 세상의 모든 사물이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다빈치의 삶은 호기심이야말로 인간을 신의 영역에 근접하게 만드는 가장 고귀한 재능임을 입증한다.
다빈치 사고의 핵심은 '모든 것이 다른 모든 것과 연결되어 있다'는 통찰이며
이를 실천하는 구체적인 방법이 '다각적 생각법'이다.
그는 하나의 현상을 이해하기 위해 최소한 세 가지 이상의 다른 관점에서 대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믿었다. 예를 들어 꽃 한 송이를 볼 때 식물학자의 눈으로 구조를 파악하고, 화가의 눈으로 빛과 색을 읽으며, 수학자의 눈으로 비율을 계산했다. 이러한 입체적 접근은 대상에 대한 단편적인 이해를 넘어 근원적인 본질을 파악하게 해준다. 그는 '유추(Analogy)'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는데, 인체의 혈관 시스템을 지구의 강줄기와 비교하며 우주의 보편적인 질서를 찾아내려 했다. 지식은 고립되어 있을 때 힘을 잃으며 다른 분야와 융합될 때 비로소 창조적인 불꽃을 일으킨다는 것이 그의 이론이다. 그는 관찰(Saper Vedere)을 사고의 시작으로 삼았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흐름까지도 시각화하려 노력했다. 그의 이론은 결국 방대한 분야를 횡단하는 통합적 사유가 천재성의 원동력임을 보여준다.
다각적 생각법의 첫 번째 특징은 '끝없는 호기심(Curiosità)'으로, 세상의 모든 사소한 현상에 질문을 던지는 태도다. "왜 하늘은 푸른가?", "딱따구리의 혀는 어떻게 생겼는가?"와 같은 질문들은 그의 사고를 끊임없이 확장시켰다. 두 번째 특징은 '경험에 기초한 검증(Dimostrazione)'으로, 책 속의 지식보다 자신의 감각으로 직접 확인한 사실을 우선시했다. 그는 관습적인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직접 해부하고 관찰하며 가설을 세우고 수정했다. 세 번째 특징은 '모호함에 대한 인내(Sfumato)'인데, 정답이 바로 나오지 않는 불확실한 상황을 즐기며 다각도로 탐색하는 끈기를 의미한다. 또한 그는 논리적인 좌뇌와 창의적인 우뇌를 동시에 사용하는 전뇌 사고를 지향했다. 숫자와 그림, 기계적 도면과 시적인 문장이 한 페이지에 어우러진 그의 노트는 이러한 다각적 특성을 잘 보여준다. 이 생각법은 우리를 전문 분야의 우물 안에서 끄집어내어 광활한 지식의 바다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다빈치처럼 생각한다면 마케팅 문제를 해결할 때 단순히 경영학적 지식만 동원하지 않을 것이다. 심리학자의 시선으로 소비자의 무의식을 분석하고, 예술가의 시선으로 패키지의 미학을 고민하며, 건축가의 시선으로 매장의 공간 구성을 설계할 수 있다. 만약 새로운 요리 레시피를 개발한다면 맛의 조화뿐만 아니라 식재료의 분자 구조, 색채 대비, 그리고 음식이 제공되는 환경의 음악적 요소까지 고려하는 식이다. 다빈치가 했던 것처럼 서로 무관해 보이는 두 사물을 연결해 보는 연습도 훌륭한 훈련법이다. "스마트폰과 화분은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창출하는 것이다. 또한 회의 중에 화이트보드에 글자만 적지 말고 아이디어를 그림으로 그려 시각화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관찰 일기를 쓰며 주변의 사소한 변화를 기록하는 태도는 다각적 사고를 위한 기초 체력이 된다. 다빈치의 생각법은 우리 각자가 지닌 잠재력을 융합하여 독창적인 인생의 예술가로 거듭나게 돕는다.
소크라테스는 기원전 470년경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나 인류 철학의 흐름을 뒤바꾼 위대한 사상가다. 그는 화려한 강의실이나 책 속에서 진리를 찾지 않고 아테네의 광장인 아고라에서 시민들과 대화하며 일생을 보냈다. 그는 스스로를 '지혜를 낳는 것을 돕는 산파'라고 부르며 타인이 스스로 깨달음을 얻도록 유도했다. 소크라테스는 단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으나 그의 제자 플라톤에 의해 그의 사상은 불멸의 가치를 얻게 되었다. 그는 당시 지식을 팔아 돈을 벌던 소피스트들과 대립하며, 진정한 앎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것에서 시작된다고 강조했다. 델포이 신전의 "너 자신을 알라"는 신탁을 평생의 좌우명으로 삼아 인간의 도덕적 탁월함(아레테)을 탐구했다. 결국 그는 청년들을 타락시키고 신을 모독했다는 죄목으로 사형 판결을 받았으나, 자신의 철학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담담히 독배를 마셨다. 그의 삶은 진리를 향한 끈질긴 추구와 정의를 위한 죽음이 하나가 된 숭고한 드라마였다.
소크라테스 사고의 핵심은 '산파술'이라 불리는 문답법과 자신의 무지를 자각하는 '무지의 지' 이론이다. 그는 누군가 정의나 용기에 대해 안다고 주장하면, 끊임없는 질문을 던져 그 지식이 얼마나 허술한 모순 위에 서 있는지 스스로 깨닫게 했다. 이러한 과정은 상대방의 머릿속에 가득 찬 낡은 고정관념을 비워내고 진정한 진리가 들어설 공간을 마련하는 작업이다. 그는 지식이란 외부에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내면에 이미 존재하는 것을 이끌어내는 것이라고 믿었다.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논리적 허점을 파고들어 한계 상황(아포리아)에 이르게 함으로써 사고의 대전환을 유도한다. 이 이론은 정답을 제시하기보다 질문을 던지는 것이 훨씬 더 강력한 교육적 도구임을 시사한다. 그에게 철학은 죽은 이론의 습득이 아니라 대화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는 살아있는 실천이었다. 무지를 인정하는 순간 비로소 진정한 탐구가 시작된다는 역설은 소크라테스 사상의 근간을 이룬다.
'직접적 생각법'의 가장 큰 특징은 당연하게 여기는 모든 개념을 해체하여 근본부터 다시 쌓아 올린다는 점이다. 이는 책에서 읽은 지식이나 권위자의 말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자신의 이성으로 직접 검증하는 태도다. 소크라테스는 명사적인 정의(Definition)에 집착하기보다 그 개념이 실제 삶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대화를 통해 생생하게 파고들었다. 이 생각법은 상대방을 이기기 위한 논쟁이 아니라 공동으로 진리를 탐색하는 '디알레고스(대화)'를 지향한다. 또한 사고의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단계별로 동의를 구하며 나아가는 철저하게 논리적인 전개 방식을 취한다. 질문자는 항상 겸손한 자세로 배우기를 청하지만 그 질문의 예리함은 상대방의 영혼을 자극하여 깊은 성찰을 유발한다. 자신의 편견을 직시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순수한 통찰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이 이 생각법의 매력이다. 결국 소크라테스식 사고는 영혼의 불순물을 제거하는 정화의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가 소크라테스식 생각법을 일상에 적용한다면, 누군가와 갈등이 생겼을 때 내 주장을 펴기보다 상대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생각하는 협력이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라고 물으며 상대방의 사고 구조를 스스로 들여다보게 돕는 것이다. 조직의 리더로서 팀원에게 지시를 내리기보다 "이 방법이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근거는 무엇인가?"라고 질문하여 팀원의 논리적 성장을 유도한다. 나 자신에게도 "내가 왜 이 성공을 원하는가?", "성공이 곧 행복인가?"라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을 던져 내면의 진실을 캐낼 수 있다. 토론 중에는 상대의 주장에 반박하기보다 그 주장의 전제가 무엇인지 파고드는 질문을 통해 논점의 본질을 명확히 한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상대방을 무시하는 태도가 아니라 함께 배우려는 진정성 있는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생각법을 실천할 때 우리는 비로소 타인의 생각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확고한 철학적 뼈대를 세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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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 아렌트는 1906년 독일에서 태어난 유대인 철학자로, 20세기 전체주의의 참상을 직접 겪으며 인간의 실존과 정치적 사유를 탐구했다.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같은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 밑에서 수학했으나 나치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를 거쳐 미국으로 망명했다. 그녀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사건은 1961년 예루살렘에서 열린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참관한 것이었다. 아이히만은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한 책임자였으나, 실제로 본 그는 평범하고 근면하며 가정에 충실한 관료에 불과했다. 아렌트는 그에게서 어떠한 사악한 악의도 찾을 수 없었으며, 대신 놀라운 수준의 '무사유(thoughtlessness)'를 발견했다. 이 충격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그녀는 '악의 평범성'이라는 개념을 정립하여 전 세계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그녀는 평생 동안 정치적 자유와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생각하는 행위가 얼마나 중요한지 역설했다. 아렌트의 생애는 어두운 시대에 한 줄기 비판적 이성의 불꽃을 꺼뜨리지 않으려 노력한 지성인의 초상이다.
아렌트 철학의 핵심은 인간의 활동을 노동(Labor), 작업(Work), 행위(Action)로 구분하고 그중 '행위'를 가장 고귀한 가치로 둔 점이다. 그녀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단순한 지적 유희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고 도덕적 판단을 내리는 '능동적 사유'를 의미한다. 그녀는 인간이 타인과 소통하며 공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공적 영역'이 사라질 때 전체주의가 싹튼다고 경고했다. 특히 아이히만처럼 상부의 명령을 기계적으로 수행하며 자신의 행동이 가져올 결과를 생각하지 않는 태도를 '사유의 부재'로 규정했다. 생각은 나 자신과 나누는 조용한 대화이며, 이 대화를 멈춘 인간은 선악을 구별할 나침반을 잃게 된다. 그녀는 칸트의 판단력 비판을 계승하여 타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는 '확장된 사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러한 이론은 정치가 권력 다툼이 아니라 시민들이 함께 생각하고 말하며 자유를 실천하는 장이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그녀에게 사유는 곧 민주주의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였다.
'능동적 생각법'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외부의 권위나 대중의 의견에 휩쓸리지 않는 '자립성'이다.
이는 "모두가 그렇게 하니까 나도 한다"는 식의 변명을 거부하고, 자신의 양심에 비추어 옳고 그름을 직접 판별하는 태도다. 아렌트는 생각이 중단되는 순간 인간은 괴물이 될 수 있다고 믿었기에 끊임없는 내면의 성찰을 요구했다. 이 생각법은 자신의 행동이 타인과 공동체에 미칠 영향을 미리 상상해보는 '상상력'과 깊이 연계되어 있다. 또한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답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 '비판적 거리두기'를 특징으로 한다. 그녀는 사유란 어떤 결과를 내놓는 것이 아니라 행위 그 자체가 목적인 활동이라고 보았다. 즉,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서의 생각을 통해 인간은 비로소 도덕적 책임을 지는 주체가 된다. 타인의 고통을 나의 관점이 아닌 그들의 관점에서 헤아려보는 공감적 사유 역시 이 생각법의 필수 요소다.
현대 사회에서 아렌트식 생각법을 실천한다면, 직장에서 비윤리적인 지시를 받았을 때 '직무상 어쩔 수 없다'는 핑계를 대지 않는 것과 같다. 이 일이 가져올 파급 효과를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부당함에 대해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능동적 사유의 발현이다. 소셜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자극적인 뉴스나 혐오 표현을 접할 때 무비판적으로 동조하기보다 그 이면의 진실을 스스로 따져보는 태도도 필요하다. "나는 누구를 대표하고 있는가?", "나의 침묵이 누군가에게 악이 되지는 않는가?"라고 스스로에게 질문하는 과정이 아렌트식 생각법이다. 선거 때 후보자의 공약을 살펴볼 때도 나의 이익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 전체의 정의를 고려하며 확장된 사고를 실천해야 한다. 일상에서 타인의 입장이 되어보는 연습을 통해 편견의 벽을 허물고 공존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것도 중요하다. 아렌트의 생각법은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잠시 멈춰 서서 인간다운 삶이 무엇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강력한 제동장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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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다윈은 1809년 영국 슈루즈버리에서 태어나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의학이나 신학 공부에는 큰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결정적인 계기는 1831년 해군 탐사선 비글호에 박물학자로 승선하여 5년간 세계를 일주한 것이었다. 갈라파고스 제도에서 만난 핀치새들의 미세한 부리 차이는 그에게 생명의 비밀에 대한 거대한 영감을 주었다. 영국으로 돌아온 다윈은 수십 년간 방대한 자료를 수집하고 꼼꼼하게 분석하며 자신의 이론을 가다듬었다. 그는 자신의 발견이 기독교적 세계관을 뿌리째 흔들 것임을 알았기에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연구에 임했다. 1859년 마침내 '종의 기원'을 출간하며 인류 사상사에서 가장 위대한 과학적 혁명을 일으켰다. 그는 생명의 역사를 고정된 창조의 결과가 아닌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으로 보았다. 다윈의 생애는 끈질긴 관찰과 용기 있는 추론이 어떻게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지 보여준다.
다윈이 제안한 핵심 이론은 생물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남은 개체만이 유전자를 남긴다는 '자연선택' 원리다. 그는 생태계를 정적인 조화의 상태가 아니라 생존을 위한 치열한 경쟁과 변이가 일어나는 역동적인 장으로 보았다. 모든 생명체는 하나의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으며,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작은 변화들이 축적되어 거대한 진화의 나무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이 이론은 생명의 역사가 목적론적인 설계에 의한 것이 아니라 우연한 변이와 환경적 필연성의 상호작용임을 밝혀냈다. 다윈은 '적자생존'의 개념을 통해 환경과의 조화가 생존의 핵심임을 강조했다. 그는 생물학적 현상뿐만 아니라 가축 사육, 지질학적 변화 등을 아우르며 자신의 이론을 증명했다. 진화는 멈추지 않는 현재 진행형의 과정이며, 모든 존재는 변화하는 맥락 속에서만 정의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통찰이다. 이 이론은 생명에 대한 신비주의를 걷어내고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시각을 선사했다.
'역동적 생각법'의 가장 큰 특징은 현상을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바라본다는 점이다.
다윈은 완성된 생물체의 형태에 감탄하기보다 그 형태가 갖춰지기까지 겪었을 수만 세대의 시행착오와 변화에 집중했다. 이는 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모든 사물이 끊임없이 움직이고 상호작용하는 흐름 속에 있음을 인지하는 방식이다. 이 생각법은 사소한 변이나 예외적인 현상을 무시하지 않고 그 안에서 새로운 규칙을 찾아내는 세심함을 요구한다. 또한 개별 주체와 그를 둘러싼 '환경' 사이의 관계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며, 환경의 변화가 주체의 변화를 이끄는 역동성을 포착한다. 다윈은 자신의 이론에 반대하는 증거들을 일부러 수집하고 기록하는 '반증 사고'의 달인이기도 했다. 이는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고 객관적인 진실에 다가가기 위한 처절한 지적 정직함을 보여준다. 결국 역동적 사고는 고정관념이라는 화석에서 벗어나 살아 움직이는 현실의 변화를 읽어내는 기술이다.
비즈니스 환경에서 다윈식 생각법을 적용한다면, 현재의 성공 모델이 영원할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는 것이 우선이다. 시장이라는 생태계는 끊임없이 변하며, 과거에 강했던 기업이라도 환경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는 진리를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작은 시장의 변화나 소비자의 트렌드 이동을 진화적 변이의 신호로 읽어내고 신속하게 대응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개인의 자기 계발에서도 특정 기술을 마스터하는 결과보다 변화하는 시대에 맞춰 지속적으로 자신을 재정의하는 '학습 능력'에 집중한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격언처럼, 유연한 사고방식을 갖추는 것이 진화적 사고의 핵심이다. 문제를 해결할 때도 단기적인 처방보다 그 문제가 발생한 역사적 과정과 주변 환경의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한다. 다윈의 생각법은 우리에게 변화를 두려워하는 대신 변화를 성장의 기회로 삼는 역동적인 태도를 가르쳐준다. 우리는 이를 통해 불확실한 미래를 향해 끊임없이 진화해 나갈 수 있다.
지두 크리슈나무르티는 1895년 인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신지학 협회'에 의해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인 '세계 교사'로 지목되었다. 그는 서구식 교육을 받으며 엘리트로 성장했으나, 자신을 추종하는 거대한 조직이 진리를 향한 길을 가로막는다고 판단했다. 1929년, 그는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동방의 별' 조직을 해산하며 "진리는 길 없는 땅(Truth is a pathless land)"이라는 유명한 선언을 했다. 그는 어떠한 종교, 국적, 사상에도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인간의 자유를 추구하며 평생 전 세계를 돌며 강연했다. 그는 스승이나 권위에 의존하는 모든 형태의 추종을 거부했으며, 각자가 스스로 빛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언어는 매우 단순했으나 그 속에 담긴 통찰은 서구의 철학자와 심리학자들에게도 깊은 영감을 주었다. 1986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인간의 의식이 근본적으로 변혁되어야만 인류의 갈등이 해결될 수 있다고 역설했다. 그의 삶은 제도화된 성스러움을 거부하고 날것 그대로의 진실을 향해 나아간 위대한 여정이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핵심 이론은 인간의 사고가 과거의 기억과 지식에 의해 조건 지어져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그는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자아는 사실 사회적 교육, 전통, 두려움이 쌓아 올린 이미지의 집합체일 뿐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조건 지어진 사고로는 결코 새롭고 진실한 것을 볼 수 없으며, 단지 과거의 투영만을 반복하게 된다. 그는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특별한 수행법이나 체계가 필요하다는 믿음을 부정했다. 어떤 길(Method)을 따르는 순간 그 길의 목적지에 갇히게 되므로, 진리는 어떠한 지도로도 찾을 수 없는 '길 없는 땅'이라는 것이다. 그가 제안한 '부정의 사유'는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비워냄으로써 고정된 틀을 파괴하는 과정이다.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분리되지 않는 '선택 없는 알아차림'을 통해 마음은 비로소 고요해지고 진실을 비출 수 있게 된다. 이 이론은 인간의 고통이 자기 중심적인 사고의 파편화에서 비롯됨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부정하는 생각법'의 특징은 긍정적인 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하나씩 지워나가는 '소거법적 탐구'에 있다. 그는 "무엇이 진실인가?"라고 묻기보다 "무엇이 거짓인가?"를 먼저 묻고 이를 철저히 부정했다. 우리가 가진 고정관념, 편견, 욕망, 두려움을 하나씩 응시하고 그것이 허구임을 깨달을 때 마음은 자연스럽게 맑아진다. 이 생각법은 결론에 도달하려는 조급함을 버리고 현재 일어나는 현상을 '판단 없이' 바라보는 힘을 중시한다. 사고가 개입하여 이름을 붙이고 해석하는 순간 순수한 관찰은 사라지고 과거의 기억이 그 자리를 대신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생각법은 자아라는 중심점을 해체하여 세상과의 분리감을 없애는 심리적 혁명을 지향한다. 비어 있는 마음은 죽은 상태가 아니라 가장 예민하고 살아있는 상태이며, 여기에서 비로소 창조적인 통찰이 솟아난다. 결국 크리슈나무르티식 사고는 머리로 하는 이해가 아니라 온몸으로 느끼는 직접적인 깨달음의 과정이다.
일상에서 크리슈나무르티의 생각법을 실천한다면, 누군가와 대화할 때 그에 대한 나의 과거 선입견을 먼저 부정해 보는 것이다. "저 사람은 원래 그래"라는 고정된 이미지를 내려놓고 지금 이 순간 내 앞에 있는 그를 처음 보는 것처럼 관찰한다. 또한 분노나 불안이 올라올 때 그것을 억누르거나 분석하려 하지 말고 그 감정이 일어나는 전체 과정을 조용히 지켜본다. 내가 믿고 있는 종교적 신념이나 애국심, 정치적 성향이 나를 안전하게 지켜준다는 착각을 부정하고, 그 밑바닥에 숨겨진 두려움을 직시한다. 공부를 할 때도 지식을 쌓는 것에 집착하기보다 자신의 무지를 정직하게 마주하며 배우는 행위 자체에 몰입한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이름, 직업, 성격을 하나씩 지워나가며 남는 본질적인 존재감을 느껴보는 것도 좋은 연습이다. 이러한 부정의 과정을 통해 우리는 타인이 주입한 가치관에서 벗어나 자기 삶의 유일한 권위자가 될 수 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생각법은 우리를 모든 속박에서 해방시켜 진정한 평화와 자유로 안내하는 나침반 없는 항해와 같다.
조르다노 브루노는 1548년 이탈리아 놀라에서 태어난 도미니크 수도회 출신의 철학자이자 천문학자다. 그는 당대 가톨릭 교회가 철저히 고수하던 지구 중심적 우주관(천동설)에 의문을 품고 태양 중심설(지동설)을 넘어선 파격적인 주장을 펼쳤다. 그는 우주가 무한하며 태양계와 같은 시스템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고 믿었으며, 이는 당시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신성모독이었다. 브루노는 자신의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유럽 전역을 방랑하며 끊임없이 논쟁을 벌였고, 지적 타협을 거부했다. 그는 지식이란 권위에 복종하는 것이 아니라 이성을 통해 우주의 거대한 질서를 파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결국 종교재판소에 체포되어 8년간의 투옥과 고문 끝에도 자신의 신념을 굽히지 않았다. 1600년 로마의 캄포 데 피오리 광장에서 산 채로 화형당하는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으나, 그의 정신은 근대 과학의 여명을 밝히는 횃불이 되었다. 그의 생애는 좁은 우물에서 벗어나 무한한 맥락을 향해 나아간 인간 의지의 승리를 보여준다.
브루노가 주장한 핵심 이론은 우주에는 중심이 없으며 모든 별이 제각기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다는 '무한 우주론'이다. 그는 신이 무한하다면 신의 창조물인 우주 또한 무한해야 한다는 논리적 필연성을 강조했다. 또한 '일자(The One)'라는 개념을 통해 우주 만물이 하나의 근원적 생명 에너지로 연결되어 있다는 범신론적 견해를 피력했다. 그에게 지구는 고립된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무한한 우주적 맥락 속에서 상호작용하는 작은 유기체에 불과했다. 이러한 관점은 인간 중심주의를 타파하고 존재를 거시적인 시스템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그는 기억술(Mnemonics)의 대가이기도 했는데, 복잡한 지식을 이미지화하여 거대한 맥락 속에 배치함으로써 인간의 기억력을 극대화하는 방법을 연구했다. 브루노의 이론은 보이지 않는 힘과 맥락이 보이는 현상을 지배한다는 현대 물리학의 통찰과도 맞닿아 있다. 그는 지식을 파편화된 사실의 나열이 아닌 거대한 상호 연결의 그물망으로 이해했다.
'맥락의 생각법'의 가장 큰 특징은 어떤 대상이나 사건을 떼어놓고 보지 않고 그것을 둘러싼 '더 넓은 배경'과 함께 파악하는 것이다. 브루노는 하나의 사물이 존재하는 이유는 그것과 관계 맺고 있는 수많은 외부 요인들 때문이라고 믿었다. 따라서 이 생각법은 미시적인 세부 사항에 매몰되기보다 전체적인 구조와 흐름을 먼저 조망하는 거시적 시야를 요구한다. "만약 관점을 저 멀리 떨어진 별로 옮긴다면 이 상황은 어떻게 보일까?"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현재의 고정된 인식을 흔들어 놓는다. 또한 이 생각법은 서로 무관해 보이는 현상들 사이의 숨겨진 유대감을 찾아내는 '통합적 통찰'을 지향한다. 이는 좁은 편견의 감옥에서 벗어나 사고의 경계를 무한히 확장하는 일종의 지적 도약이다. 브루노에게 생각한다는 것은 우주의 거대한 교향곡 속에서 나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발견하는 숭고한 행위였다. 결국 맥락적 사고는 개별성의 한계를 넘어 보편성의 진리로 나아가는 다리와 같다.
우리가 브루노의 맥락적 생각법을 실천한다면 개인적인 불행을 겪을 때 그것을 단순한 비극으로 치부하지 않을 수 있다. 나의 고통을 인류 역사라는 긴 시간의 흐름이나 사회 구조적 맥락 속에 놓아봄으로써 문제를 객관화하고 위안을 얻는 것이다. 비즈니스에서는 단기적인 이익에 일희일비하기보다 글로벌 경제의 흐름과 인류 문명의 기술적 진보라는 거대한 맥락 속에서 사업의 방향을 설정한다. 환경 문제에 직면했을 때도 우리 동네의 쓰레기 문제를 넘어 지구 전체 생태계의 순환이라는 맥락에서 해결책을 모색한다. 토론할 때는 상대방의 말 한마디에 즉각 반응하기보다 그 사람이 살아온 생애적 배경과 문화적 맥락을 고려하며 깊이 있는 이해를 시도한다.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이 문제의 가장 큰 배경은 무엇인가?"라고 질문하며 사고의 지평을 우주적 규모로 넓혀보는 연습을 한다. 브루노의 생각법은 우리를 협소한 자아의 틀에서 해방시켜 무한한 가능성의 세계로 안내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보이지 않는 연결고리를 읽어내는 진정한 지혜의 소유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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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기간 싸워온 것 같다. 천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길러진다는 것을. 물론 태어나면서 아이큐가 좋을 수는 있다. 그러나 그들도 생각하는 방법에 따라서 점점 기존의 일반적인 생각방법을 배우면서 둔재가 되어가기도 한다. 생각이라는 것이 원래 하나의 길과 같아서 가던 길로 가면 더 빠르게 생각하고 새로운 길로 가면 시간이 올래걸리지만 곧 뇌가 적응하게 된다. 생각 속에서 다양한 생각의 길을 만들어 놓은면 어떤 순간에도 가장 빠른 길을 뇌가 알아서 찾아낼 것이다. 나는 천재는 아니지만 천재들이 생각하는 방법을 앞으로도 계속 수집할 생각이다. 이것이 내가 할 수 있는 '배워서 남주자'라는 생각의 핵심이다. 메타인지는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들 중에서 가장 유효한 것들을 뽑아 놓은 것이다. 그렇다면 메타인지는 우리가 오늘 살펴본 천재들의 생각처럼 능동적으로 생각하고, 맥락을 생각하고, 직접적으로 생각하면서 의심하는 생각속에서 자라난다고 볼 수 있다. 천재들의 생각법! 우리도 그들처럼 생각할 수 있다면, 천재처럼 살아갈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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