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몰아치는 불안감...
여러분은 한해의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내시나요. 저는 보통 아이들을 재운 조용한 거실에서 와이프와 지상파 시상식을 보며 작은 케이크 하나에 불을 켜고 마지막 날을 보내왔습니다. 다른 일을 하다가도 보신각 종은 꼭 보려고 노력했어요. 크게 특별하지 않은 평범하면서도 리마인드 할 수 있는 날을 보내왔습니다. 스물아홉 마지막 날은 결혼하기 전 마지막 해이기도 했기에 여자 친구(지금의 와이프)와 종각에 보신각 종 치는 것을 구경하러 갔던 기억도 있네요. 수많은 인파 덕분에 다시는 못 갈 것 같은 곳이었던 기억만 있어요.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접한 소식은 한해의 마지막 날을 평범하게 보낼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 흔들리는 눈동자와 두근대는 가슴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천천히 들어갈까 생각도 했지만 집에 빨리 가고 싶더라고요. 아이들을 재우고 와이프가 무슨 일 인지 물어왔습니다. 회사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흔들리는 눈동자를 진작에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최대한 차분히 팩트를 중심으로 흔들리지 않게 전달하였습니다. 담담히 말하려 했지만 떨리는 목소리를 참지 못하겠더라고요. 와이프는 제 생각보다는 담대하게, 들었습니다. 우리 둘은 아직 확정된 건 없으니 동요하지 말자고, 새해에는 건강을 생각하자고 다짐하였습니다.
결과가 나오는 건 2주 후, 2주간 서너 개의 검사를 추가로 진행하고 결과를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 사이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지만 세상은, 지구는 계속 돌더라고요. 회사를 나가야 했고 아버지 칠순 잔치가 그 사이에 있었습니다. 회사는 새해라 어수선한 데다가 계속되는 재택에 최대한 피하며 다닐 수 있었는데 아버지 칠순으로 온 가족이 모이는 곳을 안 갈 수도 없고, 가자니 유리처럼 깨진 멘탈이 걱정되었습니다. 온 가족이 모이는 곳이니 사진도 찍고 좋은 추억 남기고 자는 마음으로 다녀왔습니다. 훗날 어머니가 그날 네가, 너희 와이프가 얼마나 힘든 마음으로 참석을 했을지 생각하니 마음이 아프다고 하셨습니다.
딱히 말하지 않았지만, 숨기기는 힘들었나 봅니다. 회사에서 자주 보는 사람들이 뭔가 이상함을 느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회사에 큰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위하여 제안서 작성을 해야 하니 모이라는 내용을 전달받았습니다. 상세 결과 나오기 4일 전, 자리에 모인 리더급 인력 몇 명과 팀장님에게 현재 저의 상황을 전달하였습니다. 만에 하나 안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나는 모든 일을 중단하게 될 것 같으니 현재 진행되는 새로운 일에는 참여하기 어렵노라고, 다들 걱정을 해 주고 별일 아닐 거라고 해 주었지만 잘 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오고 일을 하고 있는 우리 파트원들에게 목요일까지 나는 좀 쉬겠노라고 내 일에 대해 커버를 부탁하며, 묻지말고 조금만 기다려달라 요청하였습니다.
저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더라도 침대에 누워 베개에 머리를 대면 3초 컷으로 잠드는 축복받은 수면 습관이 있었습니다. 주변의 부러움 특히 결혼 후 와이프가 신기해할 정도였죠. 하지만, TV에서나 듣던 검사들을 지나 결과가 나오는 날까지 하루도 편히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불면증이 이런 거구나? 라는걸 알 정도로 자기 위해 가만히 누워 눈을 감고 있는데 잠이 오지 않습니다. 차라리 뭐라도 하면서 다른데 신경을 쓰는 낮 시간이 좋았습니다. 두근두근 심장소리 똑딱똑딱 시계 소리 모든 감각이 예민해지고 다양한 생각이 머릿속을 휘젓는 나날이 계속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과 확인하는 날, 첫 검사 때와 달리 와이프 손을 잡고 병원을 갔습니다. 매일 가던 본관 건물이 아닌 암 병원 건물에서 외래를 보게 되어 암 병원까지 걷는 것조차 부담이었습니다. 내가 이 길을 이렇게 걷는구나, 이 길을 걸어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힘들어졌습니다. 기다리던, 기다리고 기다리던 날인데 그 날이 왔는데 시간이 더이상 가지 않았으면 했습니다. 기다리던 시간이 오지 않기를 바랐죠. 하지만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채 그날이 왔습니다. 주변을 정리하려 했지만 저 자신은 정리가, 준비가 되지 않았던거죠.
기다린 다는 것은 확인하고 싶은 정보를 듣기 위해 기다린다는 것은 세상에서 제일 힘든 일 중에 하나인 것 같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기다림이라는 시간이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되기도 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정리하고,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자각하는 것조차 쉬운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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