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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윤대디 May 12. 2022

여러분은 기적을 믿으시나요?

유리멘탈이 깨진날


서른 살에 결혼을 하여 지금은 9살, 7살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쉬고 있지만, 회사에서는 "1년만 뼈를 갈면서 일하다 보면 차장으로 진급할 수 있지 않을까?"라는 희망 아닌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위치에 있습니다. 부족한 용돈을 늘리기 위해 주식 투자를 하며 “그래도 우량주에 넣어야 하나 하이리스크 하이 리턴이냐”를 고민하는 이 시대의 평범한 삶을 살고 있는 평범한 남자였습니다. 


살아온 삶도 다르지 않습니다. 화목한 가정에 1남 1녀에 막내 초등학교 1회 졸업생으로 초, 중, 고 12년 개근상을 타고 학교를 다녔고 대학교로 진학, 내성적인 성격이었던 저는 20살에 술을 접하며 바뀐 성격으로 활발히 지냅니다. 동기들과 선, 후배들과 PC방, 당구장, 술집을 돌아다니며 밤을 새우고 새벽 첫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들어가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 2년을 마치고 군대를 다녀왔습니다. 


여기까지 보면 정말 큰 이슈 없는, 스스로를 대한민국 평균에 가깝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요즘 시대에 11년간 한 회사에서 근무 한건 조금은 특이한 이력일까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재수도 없이 점수에 맞혀 대학교에 입학하여 군 제대 후 바로 복학, 1년의 휴학만 있었던 저는 대학교 졸업하고 입사를 하지 못해서 끙끙 대다가 합격한 첫 회사에 입사를 하였습니다. 어릴 적, 마냥 ‘삑’ 하고 출입하는 큰 회사를 다니는 TV 속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었던 제가 드디어 ‘‘삑’ 소리 나는 사원증을 목에 걸고 다니는 회사에 입사하게 되어 두근거렸던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습니다. (너무너무 만족했더랬죠) 갖춰 입은 양복에 사원증을 목에 걸고 가슴 주머니에 넣는 그 모습을 제가 할 수 있었기에 두근두근 했습니다. 물론 이렇게 11년이나 다닐 줄은 상상도 못 했지만요.




 2020년 12월 31일 그날은 모든 혼돈이 시작하는 날입니다. 한해의 마지막 날, 출근을 해도 보통 오전 근무 이후에 적당한 시간에 눈치 보고 집으로 들어가는 날에, 휴가를 내고 병원에 갔어요. 병원에 6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사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죠.  B형 간염 보균자라 정기적으로 검사를 받아야 했는데 그전 검사에서 아무 문제없었고 몸 상태도 아무렇지 않았기에 와이프 없이, 보호자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을 갔습니다. 피검사와 CT 검사를 일주일 전에 했었고 결과를 보러 의사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었는데, 의사 선생님이 뭔가 두리번두리번 하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피검사도 그렇고 CT에도 뭔가가 보이는 게, 추가로 여러 가지 검사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한동안, 이게 무슨 말인지? 이게 어떤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6개월 전에 없던 게 있는 건가요? 암인 건가요? 저 아이가 둘이 있는데요... 

 의사 선생님과의 잠깐의 시간이 지나고 밖에서 간호사 선생님의 이후 일정에 대해 설명을 들었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가 바로 이어질 것이고 최대한 빠르게 검사를 잡은 것이니 일정이 가능하냐고 물어보셨고 당연히 그것에 맞춰 진행을 하였습니다. 굳어진 얼굴에 잘은 몰라도 위로 어떻게 들어가면 제거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라고 하셨지만 누가 들어도 나는 잘 모르는데 일단 기다려 보시죠. 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할 수 있는 말이 없었습니다. 제가 아이가 둘이 있는데요.... 와이프는 가정주부인데... 제가  두 아이의 아빠인데요... 를 반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자신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저는 유난히 멘탈이 약하답니다. 갈대같이 쉽게 흔들리죠. 일을 할 때 가장 힘들었던 것도 여러 가지 결정을 해야 하는데 잘못된 결정을 했을 때 쉽게 무너지고 더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던 게 힘들었었죠.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내가 한 결정이 옳은 결정이었는지 여러 번 체크하고 검증한다고 많은 시간을 보내야 했고, 그 결정이 잘못된 결정임을 알았을 때 하루라도 빠르게 수습하기 위해 먼저 노력하고, 그러다 보니 문제에 대한 빠르고 정확한 해결 방안 도출 및 실행이 저의 장점이 되기도 했습니다.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한 긍정적인 케이스였지만 멘탈에 대한 회복은 그렇게 빠르게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문제에 대한 해결이 멘탈의 회복으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것이죠. 


 이번 문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앞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어떤 계획으로 어떤 내용으로 한 발짝 한 발짝 앞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보이지 않았습니다. 정신적인 것뿐 아니라 병원 밖으로 한발  자국도 나가기 어려웠습니다. 와이프에게는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부모님에게는? 우리 아이들은? 장인어른, 장모님 얼굴은 어떻게 보지? 이게... 뭐지?라는 생각뿐이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아직 검사가 끝난 게 아니고, 병원에서 실수를 했을 수 있고, 만약 진짜라도, 6개월 전에 아무 문제없던 곳이 확실하니 6개월 만에 얼마나 나빠졌겠나?라는 희망을 하나씩 머릿속에 집어넣었습니다. 그렇게 쉼 호흡을 하고 한 발자국,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옮길 수 있었습니다. 





 나에 대한 기록, 나를 돌아보는 시간, 최근엔 그렇게 하루하루 보내고 있습니다. 충격과 공포가 다가왔을 때 한 발자국을 움직일 수 있는 용기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 한 발자국이 열 발자국 백 발자국이 될 것입니다. 그 한  발자국이 기적이 되어 돌아오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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