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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도화 Oct 15. 2023

목동에 있는 변두리 아파트는 손에 잡힌다고

#13

 “엄마, 파마를 왜 이렇게 세게 말았어.”


 진원은 엄지와 검지에 온 힘을 주고 미자의 흰머리를 한 가닥 잡아당겼다. 야무지게 오므린 손가락이 민망하게도 얇은 흰머리는 힘없이 툭 뽑혀 나왔다.


 “엄마는 생머리라서 파마가 쉽게 풀려. 미용실 갈 시간도 없는데 한 번 가면 뽀글뽀글 세게 말아야지.”


 진원은 모아놓은 흰머리 한 무더기를 쓰레기통에 털어 넣었다.


 “이왕 파마하러 간 김에 염색도 좀 하지. 뽑아서 될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미용실에서 염색하면 비싸. 염색약 사다 뒀으니까 집에서 해야지. 진원이가 좀 도와줘.”


 “그러고 보니 엄마는 생머리인데 나는 왜 반곱슬이야?”


 “아빠가 곱슬머리잖아. 지 성격처럼 머리가 얼마나 억센 줄 아니. 진원이는 엄마, 아빠 반반씩 닮아서 반곱슬 아닐까?”


 진원이 피식하고 웃자 미자도 따라 웃었다. 처음에는 조그맣던 웃음이 눈덩이처럼 커져 한참을 낄낄대며 웃었다.


 “누가 뭐라 해도 나는 엄마 편이야. 엄마가 하고 싶은 대로 해, 나는 찬성.”


 “좀 살살 뽑아, 머리 다 뽑히겠다.”


 진원의 말을 못 들은 척 미자가 딴청을 부렸다. 진짜로 아팠는지 미자의 안연에 슬쩍 눈물이 한 방울 고였다.


 미자와 태평의 사이는 최악으로 치달았다. 만나기만 하면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서로와 집안의 치부를 원색적으로 비난했다. 몸싸움을 벌이고 살림을 집어던지는 일도 예사였다. 집안에 할머니가 있든 말든, 가게에 손님이 있든 없든 개의치 않았다.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고 오직 둘만 보이는 커다란 투명 방울에 갇힌 사람들 같았다.


 미자는 IMF 사태 때문에 2억 원을 하던 집이 1억 5천만 원에 내놓아도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는 지금이 목동의 아파트로 이사 갈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태평은 건국 이래 최대 경제 위기 앞에서 도대체 무슨 놈의 아파트를 사자는 말인지 아내의 말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미자는 남편을 설득했다. 화도 내고 애원도 했다. 화곡동 빌라를 팔고, 빵집 보증금과 저축한 돈을 합치면 진짜 목동 아파트는 아니더라도 목동에 있는 변두리 아파트는 손에 잡힌다고. 이번 기회를 놓치면 우린 평생 여기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태평은 이대로도 나쁘지 않았다. 아이들도 잘 크고 있고 서울에 내 집도 있으며 약간이나마 저축도 하고 있으니. 매일 굶던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밥솥에서 언제나 고봉밥을 풀 수 있는 지금의 자신이 스스로 대견할 지경이었다.   


 “집안일은 여자 소관이라고 애 셋 키우면서 쥐꼬리만한 월급 알뜰살뜰 모아서 이 집도 샀잖아. 당신이 월급은 죽어도 더 못 벌어 온다고 해서 여편네가 남자도 힘들다는 제빵 기술로 손끝 다 터져가면서 돈 벌어 왔더니 도대체 왜 이 중요한 순간에 남의 뒷다리를 잡는 거야!”


 “세상이 어떻게 될 줄 알고 덜컥 집을 사. 한강 다리에서 떨어지는 사람들이 다 바보인 줄 알아. 서울역 한 번 가 봐. 양지바른 곳마다 노숙자가 드글드글 댄다고. 우리도 그렇게 안 되란 법 있냐고!”


 “남자가 통이 간장 종지만 해서 무슨 놈의 사회생활을 한다고! 당신을 믿고 시집을 온 내가 바보지. 내가 남자였으면 벌써 아파트 두 채는 샀겠다.”


 “빵집 해서 돈 좀 만졌다고 유세 떠냐?”


 “그러는 너는? 회사에서 승진도 제때 못 해서 안 잘렸다고 유세 떠냐?”


 아이들은 방에 모두 모여 부모의 설전을 들었다. 설전이 정점에 이르면 어김없이 무언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가 났고 그다음은 이혼하자는 말로 서로를 윽박질렀다. 진오는 엄마 아빠가 헤어지면 어쩌지라는 걱정을 했고 만약 둘 중 선택하라면 엄마라고, 누구도 묻지 않은 결론까지  앞서 내렸다. 진원은 시끄러워 죽겠다며 이어폰을 끼고 평소에 잘 들춰보지도 않는 참고서를 꺼냈고, 진현은 동생들 앞에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상황을 논평했다.


 “야, 너네 엄마 아빠 절대 안 헤어져. 이혼한다는 소리를 나 유치원 다닐 때부터 했어. 진짜 지겨워 죽겠어. 차라리 진짜 헤어지든가. 근데 이혼도 못 해. 이혼하면 돈이 엄청 많이 깨지거든. 짠돌이 짠순이가 돈 아까워서 이혼을 어떻게 하냐.”    





 “사장님, 그동안 감사했어요. 어려울 때도 매번 도와주시고.”


 보증금을 내주러 내려온 건물 주인에게 미자가 거듭 감사를 표했다. 쇼케이스와 오븐이 차례로 빠지자 매장은 한결 넓어 보였다. 철거 인부들이 망치를 이용해 빵을 진열했던 나무틀을 떼어내는 소리가 제법 시끄러워 미자와 건물 주인은 대화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야 했다.


 “젊은 양반이 애들하고 열심히 사는 게 보기 좋았는데. 장사가 잘 돼서 더 오래 할 줄 알았지.”


 “더 하고 싶었는데 몸이 여기저기 아파서 못하겠어요. 프랜차이즈 빵집이 들어올까 봐 계속 신경도 쓰이고요. 그나마 손에 좀 쥔 게 있을 때 그만해야죠.”


 미자의 말에 건물 주인도 고개를 끄덕였다. 인부들이 ‘부부 빵집’의 간판까지 모두 떼자 철거 작업도 반나절 만에 끝이 났다. 올릴 때는 몰랐는데 내리고 보니 간판의 크기가 제법 컸다.


 “여기는 다음에 뭐가 들어와요? 횡단보도 앞에 있는 코너 자리라서 참 좋은 자리인데.”


 “동물 병원이 들어와. 요즘 사람들이 개를 그렇게 많이들 키운다는 구만. 건물 1층부터 개 비린내가 날 것 같아서 왠지 꺼림칙했는데 월세를 지금의 2배를 불러도 목이 좋다고 무조건 들어온다는 거야. 나로서는 뭐, 그러면 땡큐지.”


 보증금 처리가 끝나고 미자는 건물 주인에게 열쇠를 넘겼다. 키를 받고 돌아서는 그의 눈에 가게 앞에 버리려고 한쪽으로 치워 둔 평상이 들어왔다. 그동안의 시간을 대변하듯 평상을 덮은 노란 장판 여기저기가 그을린 자국 투성이었다.


 “멀쩡해 보이네. 이거 내가 가져가서 써도 되지?”


 건물 주인이 평상 여기저기를 툭툭 두드리며 물었다. 미자는 너무 낡아서 괜찮으시겠냐고 되물었다. 그는 껄껄 웃으며 부자가 되는 법은 첫째도 절약, 둘째도 절약이라고 내내 강조했다. 차에 잡다한 물건을 모두 실은 태평이 빵빵거리며 이제 그만 가자고 재촉했다. 다시 한번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미자에게 주인이 다급히 말을 건넸다.


 “마지막으로 조언을 하나 해 준다면 말이야. 다음에 장사를 하면 꼭 자기 건물을 사서 해. 세상엔 나처럼 좋은 주인만 있는 건 아니거든. 나 같이 괜찮은 건물주를 만난 미자 씨가 이번엔 운이 좀 좋았을 뿐이야. 내 말 명심해.”


 빵집을 시작한 5년 전처럼 따뜻한 봄이었다. 미자는 유리문 사이로 슬쩍 가게를 돌아보았다. 구석구석 손이 닿지 않았던 곳이 없는데 짐을 모두 치우고 나니 벌써 생경했다. 미자는 미도가 생각났다. 먼저 연락이라도 해볼까 하다, 결국 돈 빌려달라는 말로 끝날 인연임을 상기하고는 마음을 접었다.


 미자가 채반에 딸기를 씻어 그릇에 담았다. 제철이라 알이 굵고 싱싱했다. 온 가족이 모인 주말, 실로 오랜만이었다. 식구들이 먹기 좋게 그릇을 식탁 한가운데로 놓았다. 모두 둘러앉자 할머니가 은근슬쩍 태평에 가까운 쪽으로 그릇을 옮겼다. 딸기를 집어 들기 위해 내뻗었던 가족들의 손이 무안했다.


 “가만히 두세요. 애들 먹는데 왜 그러세요.”


 태평이 버럭 화를 내며 그릇을 다시 제자리로 밀었다. 할머니는 탐욕스럽게 딸기 한 알을 깨물며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미자는 집에 들어앉아 살림을 재정비하며 부엌부터 완전히 뒤집었다. 끈적이는 각종 조미료 통과 싱크대, 가스레인지 상판을 베이킹소다로 불려 광이 나도록 닦았다. 찬장에 있는 그릇은 모두 꺼내어 이가 나가거나 필요 없는 그릇은 과감하게 버렸고 자기 손에 편하게 다시 집어넣었다. 할머니는 하루 종일 살림을 집어넣다 꺼내는 며느리에게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소파에 앉아 그 모습을 우두커니 지켜보았다. 이미 고부관계의 중심 추는 며느리 쪽으로 완연히 쏠려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사람은 잘 변하지 않는지 할머니는 기회를 노려 한 번씩 미자의 속을 긁어댔다.


 “요즘 아범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 보약이라도 한 첩 해먹이면 좋으련만. 애를 셋이나 낳아서 처자식 먹여 살리는 것도 벅찬데 아파트로 이사 간다고 자꾸만 일을 벌이니 원.. 쯔쯔.”


 “아들 낳으라고 그렇게 구박하실 땐 언제고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그렇게 안타까우시면 어머님이 보약 해주세요. 땅 판 돈 있으시잖아요. 저는 안 말려요.”


 미자는 몇 달이나 비어있던 1층 투룸을 생각해냈다. 강남에 오랫동안 살았다던 노부부가 살았는데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할아버지도 곧장 따라간 방이었다. 동네 사람들은 강남에 살았다던 노부부의 말을 허언으로 들었지만 한 분씩 돌아가실 때마다 등장한 자식들의 외제차를 보고서야 뒤늦게 그 말을 믿었다. 어쨌거나 동네에 소문은 어찌나 빠른지 세입자들은 노인 두 분이 연달아 돌아가신 방에 들어가길 꺼렸다.


 “어머님은 이제 1층에 모시자. 의정부로 가시란 말은 안 할게.”


 태평도 미자의 생각에 동의했다. 그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을 때 할머니는 오히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태평은 어머니를 위해 1층 방의 도배를 직접 다시 했다. 대야에 풀을 풀어 벽지의 가장자리에 슥슥 묻히고 미자와 맞들어 세로 길이를 맞춰 붙였다. 손재주가 좋아, 벽지가 울지도 않고 깔끔하게 붙었다. 진오도 일을 돕는다고 나섰지만, 처음에는 구수하던 풀냄새가 시간이 지나자 역해져 밖으로 나와 연신 헛구역질만 해댔다.


 진오는 엄마가 집에 있다는 생각에 하굣길이 설렜다. 엄마는 할머니와 달랐다. 엄마는 대체될 수 없었다. 엄마가 차려주는 간식, 엄마가 받아주는 가방, 가끔 예기치 않게 비가 쏟아지는 날이면 우산을 들고 학교 정문에서 기다리는 엄마. 하지만 그건 초등학생인 진오의 사정이었고, 고등학생인 진현과 중학생인 진원은 이제 엄마 품 속의 아이가 아니었다. 학원은 제시간에 가는지, 성적은 잘 나오는지, 교복을 지나치게 줄여 입진 않는지 전보다 꼬치꼬치 따져 묻는 엄마의 질문이 곱게 들릴 리 없었다. 어쨌거나 균열과 봉합 속에서 미자를 중심으로 한 포스트 빵집 체제는 완연히 자리 잡았다. 하지만 미자에게는 20세기가 다 가기 전 완수해야 할 과업이 남아있었다. 그녀의 눈은 다시 집 밖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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