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이면 내가 중학교 3학년 때다. 7년 전의 4월 4일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각나면 무섭도록 먼 세월이다. 알람을 클릭하니 한눈에 그날 촬영한 사진 모음이 보인다. 한 학교 풍경이다. 단상 위에 설치된 플래카드에는 커다랗게 '육상대회'라 적혀 있다. 맞다. 바로 내가 마지막으로 출전한 육상대회의 1일 차 사진이었다.
저릿한 오른손이 자연스럽게 오른 무릎으로 향했다.
저번 학기 7개 전공시험을 준비하며 오른손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는 팔목에 파스 한 장 붙이면 해결되고는 했을 정도로 크게 거슬리지는 않았는데, 그 학기는 조금 달랐다. 이미 파스가 가득했음에도 손등의 아픔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번에도 또 다른 차원이다. (일단 최소 3차원. 통증이 입체적이다.) 이틀 전부터 약지 손끝이 종이에 베인 듯이 따끔거리더니 오늘은 아예 힘을 줄 수가 없다.
여기서 문제는 이번에 아픈 손이 오른손이라는 거다. 확률적으로도 예상되겠지만 나는 오른손잡이다. 그리고 이건 예상하기 어려운데, 지금이 중간고사 2주 전이며 나에게 (지금까지 공지된) 과제만 총 다섯 개가 있다는 것도. 그리고 클라이맥스, 시험과 과제 모두 자필 형식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아무렇지 않게 오른손으로 칫솔을 잡고 문지르다가 오른 팔목에 통증을 느껴 왼손으로 옮기고, 아무래도 칫솔질이 개운하지 않아 또 오른손으로 옮기는 행위를 2일 내도록 하는 중이다. 게다가 코끼리 코 하듯 왼손으로 화장실 전등 스위치를 눌러야 하며 평소 오른손 엄지손가락 데이터를 입력해둔 태블릿의 지문 인식도 곤란하다.
오른손을 쉬어주는 게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이전 문단까지만 쓰고 중간고사를 마치고 돌아왔다. 글을 쓰고 싶어서 손이 움찔거리는데, 문제는 충분히 생각하고 글을 쓸 시간도 없어서 눈물을 머금고 중간고사가 끝난 5월까지 미뤘다.
중간고사의 마지막 시험이 끝난 날과 오늘. 그 사이 제주를 다녀왔다. 중학교 1학년 때 다녀온 기억 이후로 제주 여행에 대한 기억이 없는 것으로 보아하니 거의 10년 만이다. 익숙할 정도로 알려진 맛집 여행보다 사람이 적은 자연 속에서만 2박 3일을 보냈다. 내리막보다 좋은 오르막길을 하루 종일 걸으면서 숨도 쉬고 푸르른 사진을 찍다가 일상으로 돌아왔다.
한 오름을 오른 뒤 조심스레 계단을 딛으며 내려가던 나의 속도에 뒤에서 나를 따라오던 모두가 발걸음을 늦췄다. 한참을 말없이 걷던 엄마는 내게 무릎 괜찮은지를 물었고 나는 괜찮다고 말했다.
손목을 다치고 나서 한참을 쉬다가 문득 생각이 둘 들었다. 키보드 타이핑을 쉬었더니 손목이 꽤 괜찮아졌다는 것과, 다시는 단기간에 많은 글을 쓰지 않겠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는 무릎도 같지 않을까.
나는 엄마에게 말했다. 어찌 보면 무릎도 나에게 경고를 날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렇게 철부지처럼 무릎을 고생시키면 나이가 들을수록 더 아플 수도 있다는 주의. 이제는 예전처럼 행복하게 뛰어다닐 수는 없겠지만, 앞으로의 소소한 행복이라도 누리려면 지금처럼 느리게 움직여야 한다는 조언을 말이다. 그리고선 나는 나이가 들었을 때 어느 동년배들보다 더 좋은 무릎으로 이런 좋은 곳을 또 오겠노라 다짐했다.
말을 곱씹으시던 엄마는 얼굴에 옅게 드리운 그림자를 겉어 내고는 환하게 웃으셨다. "맞아 그런 거야"라는 부모님의 말을 들으며 어느새 평평해진 길을 가볍게 내려왔다.
무의식적으로 느껴왔던 서울을 향한 거부 반응에 대해 의식적으로 생각하기를 3년. 조금씩 그 이유를 찾고 있다. 무엇을 해도 도드라지지 않을 정도로 너무 많은 사람들. 그에 비해 너무나 좁아서 존재 여부조차 확인하기 힘든 나만의 공간. 그리고 너무 빠른 속도.
서울에 올라온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학년. 지하철을 환승하거나 버스를 타러 갈 때 나는 줄곧 뛰어다녔다. 물론 그 당시는 지금보다 무릎이 덜 아프기도 했지만 여전히 통증이 있던 것은 여전했다. 그럼에도 나는 뛰었다. 이유는 내 주변 사람들이 모두 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릎이 점차 아파오고, 내게 주어진 일들이 대부분의 일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걸었다.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뛰고, 시간이 없어도 나는 그냥 걸었다. 단순히 통증 때문에 천천히 움직이게 된 것만은 아니다.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이후 서점에 갔다가 아주 흥미로운 책을 한 권 찾았다. 다비드 르 브르통의 <느리게 걷는 즐거움>이 바로 그 책이다. 항상 빠른 발걸음으로 움직이던 내가 무릎이 아픈 이후 강제로 천천히 걷게 되었고 그때는 느린 내 발걸음에서 즐거움 따위는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책을 보고선 짜증과 분노, 그리고 호기로움을 느꼈다.
그 책 중 한 문장이다.
걷기는 시간을 충분히 차지하되 느릿느릿 차지하는 일이다. 걷기는 삶의 의욕을 꺾는 현대의 그 절대적인 필요성에 대한 일종의 저항이다.
저항! 바로 그거다. 빠르고 도드라지게 살아야 한다는 일상에서 천천히 걷는 것이 보잘것없는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선택이었다. 그리고 경험상 천천히 걷는 삶 속에서 잃는 것은 거의 없다. 환승 과정에서 빠르게 뛰어 지하철을 빨리 탈 수 있겠지만 가끔은 그 뒤에 오는 지하철 속 사람들이 적어서 운 좋게 좋은 자리에 편하게 앉을 수도 있다. 천천히 움직이기 위해서 아침 일찍 일어나 할 일을 여유롭게 마치고 약속시간보다 1시간 먼저 나서서 느린 발걸음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도착하는 삶. 전혀 잃을 것이 없을뿐더러 심지어 건강하기까지 하다. 지각할까 봐 노심초사할 필요도 없어서 정신적으로도 매우 좋고 일찍 도착하니 첫인상도 좋아진다. 가장 좋은 것은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도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는 거다. (당연하지만 이 모든 것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할 일을 미리 끝내 놓거나 계획하는 성실함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성실의 고통보다 느림의 행복이 훨씬 거대하다는 건 확실하다.)
며칠 전 다녀온 제주에서도 느린 내 발걸음은 빛을 보았다. 우리와 거의 동시에 산 입구에 도착한 십여 명의 여행객 무리는 나보다 세 배 빠른 속도로 가파른 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1.5초에 한 걸음 수준으로 천천히 흙을 디뎠다. 과연 두 무리 중 어느 무리가 정상의 빛을 먼저 보았을까. 정상에 도착한 후 한참 주변 산을 바라보고선 하산하려는 우리는 정상에 도착한 그 무리의 한 명만을 마주했다. 느린 발걸음이 어느 순간에는 가장 빠르다. 그리고 충분히 즐겁다.
천천히 도착한 정상에 걸터앉아 이 책의 문구를 중얼거렸다. 느린 것이 이렇게나 의욕적일 수가 있다니. 이렇게나 눈부실 수 있다니. 빠르게 달리던 예전처럼 또다시 행복해질 수 있을 것만 같은 한 줄기의 빛, 그 속에서 곧은 꾸준함을 보았다.
*글 제목은 다비드 르 브르통의 <느리게 걷는 즐거움> 중 '느림' 글에서 제시된 문장 일부를 인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