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미의 축제> 밀란 쿤테라
"우리는 이제 이 세상을 뒤엎을 수도 없고, 한심하게 굴러가는 걸 막을 도리도 없다는 걸 오래전에 깨달았어. 저항할 수 있는 길은 딱 하나, 세상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것뿐이지."
이번에 기회가 되어 밀란 쿤데라라는 작가의 작품을 만났다. <무의미의 축제>를 읽다보면 비록, 단편이긴 하지만 내용의 밀도가 정말 깊었다. 근데 생각을 해보면, 이 책을 읽을 때는 정말 이 책의 의미가 무엇인지 계속 몸부림을 칠 수록 이 책의 미로에 빨려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의미의 사회
현대사회를 살다보면 의미라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는 것을 부인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삶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고 괴뇌하며, 자신의 일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인생에서 의미를 찾는 일을 중요한 것이다. '삶의 의미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이 세상에 산다면 꼭 집고 넘어가야 할 일이다. 하지만 이런 의미에 대한 생각이 너무 과부하되어 의미가 본질로 이어지는 통로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의미가 본질 그 자체를 차지하는 세상이 도래하였다. 간단한 예로 어떤 사람이 농담을 한다. 농담을 들은 사람은 그 사람이 농담을 자신에게 어떤 의도를 가지고 한다고 생각하며 그것에 대해 고민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현대 사회는 너무나 간단한 것에도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하여, 현대사회는 너무나 심각하며 각박한 사회가 되어 간다. 즉, 삶의 여유를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간단한 여행에도 힐링이라는 단어를 붙여, 여행에는 꼭 무엇인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는 것 처럼 말이다. 즉, 의미부여를 하며 사는 것은 건강한 삶을 주지만 과도한 의미부여는 삶의 본질을 망각하게 만드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배꼽의 후예들
<무의미의 축제>를 보다보면 처음에 배꼽에 대한 한 남자의 고뇌로 시작이 된다. 배꼽의 의미는 인간의 탄생을 비유적으로 보여준다. 여성의 가슴이나 엉덩이 허벅지와 같은 것들은 여성을 여성스럽게 만드는 요소이지만 배꼽은 모든 여성이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즉, 쿤데라가 이야기하는 인간이란 존재는 바로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에게 집착한 나머지 자신에게 많은 의미를 부여한다. 나는 어떤 가문의 사람이며, 나는 돈이 얼마나 있고, 나의 계층은 어떻다느니하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하지만 쿤데라의 눈에는 이런 꼬리표들을 다 제거하다 보면 인간이란 존재는 그냥 세상에 떨어진 존재일 뿐이다. 자신의 얼굴형, 성(姓), 인종과 같은 것들을 인간은 선택하지 못하고 그냥 지금 나 자신으로 태어난 것이다. 그런데 앞에서 말한 의미부여라는 것이 인간을 피곤하게 만들며 괴롭게 만드는 것이다. 나는 ~한 사람이기 때문에 더 높이 올라가야 하고, 돈을 더 많이 벌어야 한다는 부담이 우리의 어깨에 올려지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의 과부하적인 부여는 사람들을 거짓된 허상을 쫓게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단지 금덩어리인 금송아지에게 신이라는 이름을 붙여 숭배하듯이 의미라는 것은 헛된 욕망이나 거짓말까지도 아름답게 포장하여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무의미의 축제
쿤데라의 <무의미의 축제>는 마치 허무주의를 부르짖는 것 같다. 하지만 우리가 빛 아래 있을 때는 알지 못하지만 어둠 속에 있을 때, 빛에 감사함을 느끼듯이, 인간은 자신이 무의미한 존재라는 것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쿤데라가 말하는 것은 인생을 대충 살라는 것이 아니다. 내가 무의미한 존재, 단지 세상에 던져진 존재라는 것에서부터 인간의 가치에 대해 인식하게 된다는 것이다. 비록 내가 무의미한 존재이지만 그 속에서 나는 인간이라는 아름다운 가치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는 <무의미의 축제>는 인생을 즐기라는 것이다. 인생을 즐기라는 것은 바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은 아무 것도 아닌 존재이다. 그냥 세상에 떨어진 존재이다. 하지만, 그 사람이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에 나는 그 사람을 더 사랑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는 삶의 여유를 가지고 살아야 한다. 그리고 삶의 의미에 대해 고민도 해보고 살아야 한다. 다만, 현대사회에서 요구하는 무한한 의미부여의 폭풍에 휩쓸려 괴로워 하지말고, 가끔은 조용히 커피한잔을 마시면서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를 들으며 사는 것도 좋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