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진기행> 김승옥
안개에 쌓여 있는 무진
소설의 처음은 주인공인 '나'가 무진으로 가는 장면으로 시작이 된다. '나'는 안개야 말로 무진의 명물이라고 말을 한다. <무진기행>을 읽을 때는 이 안개가 주는 효과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안개가 감싸고 있는 도시는 마치 우리에게 원더랜드와 네버랜드와 같은 느낌을 준다. 즉 세상과 단절된 공간으로 여겨진다. 바로 관념의 공간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이 안개가 현실과 이상적 공간으로 작동하는 모습은 과거일 뿐이다. 지금 '나'가 가고 있는 무진의 안개는 세상과 무진을 나눠놓는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과 함께 작동하고 있다. 근대화된 서울은 나 자신을 잃게 만드는 공간이다. 현재의 무진에서 안개 또한 나 자신의 자아를 잃어가게 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것은 무진의 모습이 근대화된 서울과 비슷한 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조'라는 출세 지향적인 인물이 있으며, 전보가 존재하며, 무진의 사람들은 '나'를 속물로 바라보며 얘기를 하고 다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진이 완전히 서울과 똑같다는 것은 아니다. 무진에도 근대의 문물과 근대적 관념이 들어오고 있지만 그 반대편에는 '나'의 과거와 향수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무진에서 '나'의 과거를 바라보다
'나'는 부인과 장인의 힘으로 회사에서 출세를 하게 된다. 승진을 하기 직전 '나'는 무진으로 내려간다. 무진에서 그는 자신의 과거를 바라본다. 즉, 무진에서 잃어버린 자아를 찾으려고 나선다. 그의 자아 찾기는 나름 혹독한데, 과거 6.25 때 전쟁에 참가하지 않고 홀로 방에 있던 자신을 바라보며 순수했던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또한 한인숙이라는 여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그 여자는 과거에 자신을 도망쳤던 애인을 기억하게 하는 여성이었다. <무진기행>에서 '나'는 과거를 바라보기는 하지만 그 과거를 껴안지는 못하는 것 같다. 과거의 어둡고 순수했던 모습을 그리워하기는 하지만 '나'는 과거와 현실의 문턱에 서서 갈등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가지는 못한다. 그것은 바로 전보를 통해 부인이 자신을 부르자 '나'는 한인숙에게 편지를 남기고 홀로 서울로 돌아간다.
이상향 앞에 서 있는 근대
근대라는 곳은 사랑, 명예, 순수보다 실용성이 우선되는 세상이다. 그리하여 하나의 존재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 아래 굴러가는 톱니바퀴처럼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무진이라는 환상적인 공간을 설정한 것은 바로 서울이라는 공간이 주는 공포감 때문이다. 즉 현실이 너무나 괴롭기 때문에 관념의 세계를 만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 놓은 무진이라는 이상적이었던 공간도 이제는 현실에 잠식되기 시작한 것이다. 경쟁 속에서 인간은 자신이 살아가는 존재 의미를 상실하며 살아간다.
현대인들은 마치 무진기행 초반에 나온 미친 여자와 같다. 광인은 자신이 미쳤는지를 모르는 사람이다. 그것을 지각하는 것은 타인들의 질타이다. 이 모습이 무진에서 사람들의 험담을 통해 '나'에게로 다가온다. 즉, 현대인들은 누구나 미친 여자처럼 자신을 잃어가고 있는 존재이다. 비록, <무진기행>의 '나'가 세상에 속해있지만, 다른 현대인들보다 희망이 보이는 것은 바로 자기 자신이 누군지 노력을 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