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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성 May 16. 2016

교육은 그 사회의 거울이다.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 (4) : 뒤르캠과 사회화의 개념

어떤 사람들은 교육을 사회화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사회화가 교육이 될 수는 없다. 다만, 사회화의 관점에서 교육을 바라보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사회의 제도를 받아들이면 그 위에서 자유를 누리리라고 말했다. 그런데 우리에게 억압적인 제도라는 것과 자유 사이에 괴리감이 드는데 이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위의 그림은 서얼 박제가의 초상이다. 그는 서얼이었다. 재미있게도 이런 조선 사회에서 멸시 받았던 서얼이라는 존재가 오히려 제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 조선 시대 서얼들은 양반과 첩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다. 서자에 대해서 먼저 알아보자! 


서자는 법적으로 양반이었으나, 사회적으로 서자는 양인 또는 중인이었으며, 얼자는 천민 또는 양인의 대우를 받았다. 이는 서자의 어머니는 양인(또는 그보다 높은 신분)이며, 얼자의 어머니는 천민이기에 그에 따라 그 자녀의 신분이 정해졌다. 서자의 어머니가 반가의 여인이거나 중인층의 여인이면 서자의 신분은 중인이고, 그밖에는 양인이었다. 얼자는 그 어머니가 면천하였다면 양인이고, 또한 아버지로부터 인지를 받았을 때(정식으로 족보에 이름이 올랐을 때)에도 양인이었으나, 대부분 천민의 대우를 받았다.

(참조:위키백과 서얼)


이런 신분을 가지고 어떻게 제도의 아름다움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인가? 우리가 이 논의에 대해 생각해 보려면 2가지 측면으로 나누어 생각을 해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을 개인적인 측면과 사회적인 측면으로 나누어 보아야 한다. 개인적 측면은 개인의 심리의 작용을 상대적으로 많이 받는다. 서얼제도의 불합리에 대해 개인들의 마음은 지옥이다. 즉 세상의 제도는 개혁해야할 대상이다. 그러나, 사회적인 시선으로 본다면 조금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사회적 시선으로 본다는 것은 왜 그 제도가 만들어 질 수 밖에 없는냐는 질문이다.


조선이 서얼 제도를 만든 이유는 이러하다.

서얼은 양반의 신분에 속했으나 가정에서 천한 대우를 받았으며 상속권(相續權)도 없었다. 조선 시대에는 대부분이 혈통이나 결혼으로 인한 인척 관계로 출세가 규정되었다. 서얼에 한해서 문과의 응시 자격을 주지 않았고 무과에 한해서 허용하였으며, 이도 또한 대부분이 실직(實職)이 아닌 벼슬을 주었다. 이것은 귀천의식(貴賤意識), 유교의 적서(嫡庶)에 대한 명분론에서 나온 것으로 고려나 당나라·명나라에서도 없던 제도이다.(참조:위키백과 서얼)

만약 서얼들이 제도가 만들어 진 것을 안다면 그의 사고가 자유로워 질 수 있다. 이것은 외부의 족쇄가 바뀐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소 추상적이고 주관적이긴 하지만 마음의 변화가 생긴다는 것이다. 아무리 사회제도가 부당하다고 하더라도 내가 처할 수 밖에 없는 이 상황을 긍정은 아니어도 더이상 나쁘게 보지 않는 다는 것이다.



서얼 제도가 너무 우리와 동떨어져 있다고 보면 수능시험을 생각해보자! 가끔 사람들은 수능시험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한때는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이기심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자신의 이익의 관점에 따라 그 제도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능 제도의 목적 아니. 수능시험의 목적은 무엇인가? 바로 언어 수리 외국어 능력이 출중한 사람을 대학에서 뽑겠다는 취지이다. 만약 이것을 이해한다면 사람들은 공부를 하는데도 편안한 마음을 가질 것이다. 자신이 수학을 못보아서 수능이 최악의 제도라는 것은 개인의 한탄 그 이상을 차지하지 못하다. (솔직히 나는 아직도 불만이 많다. 수능은 답없는 시험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무엇인가? 교육 또한 사회 제도의 하나이다. 이를 전제로 하였을 때 교육은 사회제도이기 때문에 사회와 등가를 이룬다. 즉 교육은 사회이다.


누군가가 그럴 것이다. 사회제도를 박아들이는 것은 도망이고 굴복이다. 우리가 더 새로운 제도를 창조하고 대체할 것을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에 대해 두 가지 반박을 가할 수 있다.


1.만약 새로운 제도를 만든다면 그것이 기존의 제도보다 괜찮다고 할 수 있는가?


2.제도라는 것은 하나의 역사이며 큰 틀은 바뀌지 않았지만 작은 틀에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즉 인간들은 사회 내의 불합리한 부분을 변화시키려 노력했다.  그렇다면 제도라는 것이 인간의 합리성을 가지고 만든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 사회에서 벗어나 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 제도는 개인을 비추는 거울인데 그 거울이 사라진다면 인간은 불안젆한 상태에서 더 괜찮은 제도를 만들 수 있을까?


뒤르캠의 이런 관점은 사회의 시스템에 대해서 불평만 하지 말고 그것을 받아 들이면서 그 받아들인 형태 속에서 사고의 자유함을 누리라고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맞는 말이기도 하다. 뒤르캠의 이런 교육론을 바라보면서 내가 느낀 것은 그 교육을 바라보면 그 사회가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나라 교육은 정말 답이 없다. 요즘 애들 보면 중학교 때 고3이 배우는 수학을 배운다고 한다. 2살 때부터 영어를 공부시킨다고 한다. 미쳤다. 나는 이런 뒤르캠의 교육론이 선진국에 한정된 설명이지 우리 나라 교육제도는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요즘 태어난 애들이 불쌍하다.


1.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 (1)

https://brunch.co.kr/@minsungdkim/69

2.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 (2)

https://brunch.co.kr/@minsungdkim/70

3. 교육을 바라보는 관점 (3)

https://brunch.co.kr/@minsungdkim/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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