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선미 May 21. 2024

사춘기와 갱년기 사이

지극히 개인적인 가정사



사춘기 남매와 보내는 시간은 주말이 가장 길다. 평일에는 학교와 학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저녁 먹을 때가 전부인데 그것도 가뭄에 콩 나듯 귀한 시간이 됐다. 중 3 아들이 학원을 도심 메카로 옮기면서 라이딩을 하기 시작했다. 학원자체에서 차량운행하는 곳을 다니면 좋으련만 굳이 동네 친구들이 다니지 않는 곳을 택했기 때문이다. 속에 있는 말을 다 꺼내지 못하고 아들 눈치를 보면서 입을 꾹 다물었다. 사춘기 아이들과 대화하는 요령 중 하나는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참고 내뱉지 않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릴 때는 하루에 있었던 일을 재잘재잘 늘어놓아 들어주기가 힘들 때도 있었지만 그때가 그리웠다. 그랬던 아이들이 여드름이 나고 키가 나보다 훌쩍 자라면서 입도 닫고, 방문도 닫아버렸다. 


아이들이 한창 바쁠 중3(초6)이 되니 저녁 한 끼조차도 다 함께 먹는 날이 사라졌다. 큰 아이가 있으면, 작은 아이가 학원에 가 있고 엇갈리게 바쁘다 보니 어쩔 수 없었다. 대체 몇 끼를 차리는 건지 간식도 챙겨주고 학원 마치고 오면 늦은 저녁을 챙겨줘야 하니 점심 급식을 빼고는 적어도 네 번은 차려야 한다. 어릴 때는 아이들이 어리다는 이유로 남편을 챙길 틈이 없었는데 아이들이 자라니 끼니를 챙겨주느라 남편을 돌볼 틈도 없다. 집안의 가장임에도 불구하고 아이들 눈치 보느라 중간에 낀 나와 남편은 갱년기가 시작됐다. 남편의 갱년기는 말없이 드라마나 영화 시청시간이 늘어났다. 반면 나의 변화는 갑자기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며 변덕스러워졌다는 거다. 그리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잘 삐지고 풀어지기를 반복한다. 아이들의 관심은 오로지 스마트폰으로 보는 쇼츠나 유튜브에 관심이 있다. 그들에게 아이들을 통째로 빼앗긴 거 같아 속상하다. 



스마트폰 때문에 싸운 지가 몇 년이 지났어도 나아지지 않는 걸 보면 그만 포기할 법도 하건만 이 엄마의 집요함은 지칠 줄 모르고 끝도 없이 잔소리로 늘어놓는다. 그럼에도 끄덕 없이 아이들은 스마트폰을 제어하지는 않기에 낮동안은 실컷 할 자유를 주겠다. 대신하여 저녁 11시가 되면 안방에 태블릿과 함께 반납하고 일찍 잠자리에 들어 키라도 키워보겠다는 일념으로 강제성을 띤 결론을 내렸다. 아무도 반항하지 않고 수용했다. 대신 주말만은 자유를 달라고 했다. 잘 지켜지다가도 둘째는 가끔 반항하면서 가자미 눈을 하고 매섭게 바라보며 흰 눈동자만 보이게 째려보면 나도 사람인지라 상처받는다. 



아시다시피 엄마들의 모성애는 아이들의 행동과 말투, 목소리만 듣고도 나름대로 해석하고 너무 멀리 과대 해석을 해서 꼭 문제가 터지고 만다. 화목한 듯 잘 나가던 대화도 말을 중간에 새치기하면서 끊었다는 이유로 팽하고 토라져 방 안으로 들어가 버리면 정말 속에서 열불이 난다. 어이없이 닫힌 문을 바라보고 서 있는 나는 마음에 구멍이 듯 허전하다.






절대 아이들에게 바래서는 안 되지만 버르장머리 없이 하는 행동에는 급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내 속마음에서는 이미 전쟁 중이다. 악한 마음과 선한 마음이 대립한다. '자식 키워봐야 아무 소용없다'라는 어른들의 말을 들었어도 설마 내가 저런 생각을 하게 될 거라 생각도 못했다. 그러다가 후회가 물밀듯 밀려온다. '그동안 내가 너를 어떻게 키웠는데'라는 후회와 '앞으로는 너를 위해 절대 희생하지 않겠다'라고 중얼거렸다.  그런 내가 속도 없이 아이가 언제 그랬냐는 듯 "엄마!!~~"하며 방긋 웃으며 품 안으로 달려 들어오면 속절없이 성난 황소 같았던 마음도 풀어진다. 사춘기 아이도 갱년기 엄마도 미쳐가고 있음에 틀림없다.  아이들은 영적을 맑고 순수한 존재라 자신들이 하는 심경변화를 알 턱이 없다. 나도 분명 어릴 때 철없이 엄마한테 똑같이 그랬을 텐데라며 이제야 깨달았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도 부모님께 "엄마가 뭘 아냐며?" 똑같이 행동하고, 큰소리쳤던 기억이 있다.


한창 갱년기를 겪는 남편은 퇴근하면 소파와 텔레비전과 한 몸이 되어 주방에서 동당동당 거리는 것은 내 몫이다. 내 감정 다스리느라 바쁘니 건들지 말라는 태도다. 작년부터 남편회사에 출근하면서 어느 것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살림도 업무도 완벽하지 않은 자신에 감정까지 뛰어 날뛰니 답답했다. B형 남자인 남편은 자기 일은 완벽하게 해낼지는 모르겠지만 주변 사람이 힘들어하는지, 무엇을 기다리고 있는지 관심조차 없다. 서운한 마음에 조금이라도 투정을 부리면 하는 일이 뭐가 있냐며 엄마의 일을 하찮게 여긴다.


부부가 함께 똘똘 뭉쳐서 갱년기를 극복하며 사춘기 아이를 슬기롭게 대처할 방법을 강구해야 하는데 서로 단합이 안되니 큰 일이다. 서로 조금만 한 발짝 뒤로 물러설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잘 안 되는 게 문제다. 





이미 슬기롭게 사춘기 자녀와 갱년기를 겪었다거나 저와 같은 시기를 걷고 계시다면 충고나 조언 부탁드려도 될까요?




작가의 이전글 숨결이 바람 될 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