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사유상의 얼굴을 연상시키는 해가 커다란 미소를 띤 채 눈을 지그시 감고 있다. 해의 따뜻한 빛이 아이들에게 가 닿아 주황빛이 감돈다. 아이들도 해처럼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생각에 잠긴 것인지 눈을 감고 있다. 미소를 띠고 있거나 그렇지 않은 여러 가지 표정, 다양한 자세가 각자의 스토리가 무엇인지 궁금하게 만든다. 누군가는 이 그림에서 평화와 안식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나에게는 가족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며 그림을 그리고 있는 화가의 뒷모습이 보인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보고 싶은 아이들을 그림으로 밖에 만날 수 없다는 현실이.'
하브루타 참여자 : 중3 딸, 엄마, 아빠
1. 그림을 관찰하며 느낌 나누기 단어로 적기
해, 달, 꿈꾸는 중, 쉼, 편안함, 암울한 시대, 행복, 미소, 복숭아, 꽃잎, 벌거숭이, 이곳은 너무 차가운데 해가 비쳐서 그나마 아이들이 빛을 받는 느낌, 해가 눈 부셔서 눈을 감고 있는 느낌
2. 나만의 그림 제목 짓기
무릉도원, 무제, 뜨거움과 친구가 되다.
3. 질문하기
둥그런 것은 해일까? 달일까?
해는 왜 눈을 감고 있을까?
웃고 있거나 웃지 않는 아이들이 함께 있는 이유는?
등장인물은 왜 모두 다 남자일까?
옷을 벗은 아이들을 그린 이유가 뭘까?
무슨 꽃을 그린 걸까?
팔다리를 붙잡고 있는 두 인물은 무슨 사이일까?
왼쪽 끝에 인물이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건 해일까? 함께 있는 두 사람일까?
해를 받치고 있는 사람은 이중섭 자신일까?
왜 머리카락을 안 그릴 걸까?
해 양쪽 옆에 꽃봉오리 두 개를 붙여 둔 것은 귀처럼 보이게 하고 싶어서일까?
오른쪽의 두 인물은 왜 부둥켜안고 있을까?
인물들은 다 남자아이일까?
색상을 단조롭게 쓴 이유가 있을까?
인물 다섯 명의 숫자는 의미가 있는 건 아닐까?
4. 생각 나누기
Q1. 옷을 벗은 아이들을 그린 이유는 무엇일까?
엄마 : 저는 이 화가의 스토리를 알고 있어서 그것에 근거해 유추해 보았어요. 아기였을 때는 기저귀도 갈아줘야 하고 그러니까 벗겨 놓을 때가 많잖아요. 화가의 기억에 아들의 아기 때 모습만 남아서 이렇게 벗은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닐까 해요. 그리고 남성임을 나타내는 성기를 그려 넣은 것은 아들이 자랑스러워서가 아닐까 짐작해 보았어요.
딸 : 저는 이 어린아이들이 햇빛을 온몸으로 만끽하고 싶은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벗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이 들었는데 엄마 말을 들으니까 그것도 맞는 말 같아요.
엄마 : 해를 만끽한다는 표현도 되게 좋네요.
아빠 : 저는 이 화가가 그림을 잘 못 그려서 이렇게 단순하게 표현한 것이 아닐까 싶어요. 옷을 그리면 힘드니까.
엄마 : 아빠에게 그림을 잘 그렸다는 기준은 뭐죠?
아빠 : 사진같이 잘 그려야 되는 거죠. 뭐가 이렇게 막 감이 와야 하는데 그런 것이 없어요.
엄마 :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잘 그린다는 기준이 거기에 있으면.
아빠 : 옷을 벗었지만,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표현되어 있잖아요. 팔목도 너무 두껍고요. 그래서 세세하게 표현을 못 한다고 생각했어요.
Q2. 웃고 있거나 웃지 않는 아이들이 함께 있는 이유는?
딸 : 아무래도 해가 영향을 주지 않았는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주황색으로 막 칠해놓은 것이 햇빛 같거든요. 해를 많이 받은 애들은 웃고 있는 것 같은데 비교적 햇빛을 덜 받거나 조금 받는 애들은 표정이 없어요. 우울한 것 같기도 하고요.
엄마 : 딸 이야기를 듣고 보니까 또 그렇네요. 햇빛을 많이 받은 애들은 진짜 웃고 있고, 편안해 보이네요. 아래 누워있는 아이는 표정이 조금 안 좋아요. 사실은 다 웃고 있지 않아서 이유가 궁금했는데 햇빛을 얼굴에 많이 받은 아이들은 행복하게 웃고 있는 데 반해 햇빛을 덜 받은 아이들은 애매모호한 표정을 지었거나 뭔가 우울한 느낌이 있는 것 같아요. 화가의 의도가 있을 것 같아요.
아빠 : 저도 그 생각에 동의해요. 해를 웃는 얼굴상으로 본다면 다 웃는 얼굴이 되어야 될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는 것을 보면 세상이 아무리 좋은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이 있다고 하더라도 좋은 영향을 그대로 흡수하는 사람도 있고 슬프거나 안 좋은 상황이 있는 사람도 있으니까, 삼라만상이 다 있다는 걸 표현한 것 같아요.
엄마 : 아빠의 깊은 통찰력에 갈수록 감동이 느껴지네요.
Q3. 인물이 다섯 명인 이유가 있을까?
아빠 : 저는 다섯 명을 그린 이유가 한 가족을 그린 것 같아요. 성기를 드러낸 것은 남자이고, 성기를 드러내지 않은 사람은 여자일 수도 있어요. 이중섭, 아내, 아들 둘에다가 이중섭의 아버지 정도. 그래서 다섯 명을 그린 것 같아요. 다섯 명의 의미는 한 가정을 꾸려야 되는 가족의 의미를 상징하는 것 같아요.
딸 : 여섯 명까지 넣기에는 화면이 너무 작지 않았나 싶어요. 다섯 명이 딱 적당한 것 같아요.
엄마 : 인물의 크기랑 배치로 봤을 때 저도 이 화면에 다섯 명이 딱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 이분은 연세가 있는 할아버지 같은 느낌이 들어서 아빠의 생각처럼 다섯 식구가 맞는 것 같아요. 그런데 사실 이 그림의 제목이 <해와 아이들>이거든요. 그러니 아이들만 그린 거예요. 또 해를 크게 그렸기 때문에 해의 의미가 되게 큰 것 같아요. 화면의 1/4 정도 차지하고 있거든요. 꽃도 넣어야지, 아이들도 넣어야지, 화면을 구성하다 보니 다섯 명이 딱 알맞은 것 같아요. 그래서 이렇게 그림 정보를 알고 볼 때와 모르고 볼 때는 참 다른 것 같아요.
5. 작품의 메시지
엄마 : 해와 아이들이라는 제목을 듣고 다시 봤을 때 메시지는 뭔 것 같아요? 저는 이중섭이 감고 있는 눈을 그린 건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편안함을 표현하려는 의도도 있겠지만 약간 소극적인 것 같아요. 눈을 뜨면 뭔가를 봐야 하고, 그 시대의 여러 가지 어려움 같은 것들을. 꿈속에서 아이들을 그리는 듯한 그런 느낌도 있고요. 뜬 눈을 그리지 않은 의미가 그거 같아요.
딸 : 전체적으로 봤을 때 슬픈 느낌이 들어요. 사실 해만 없어도 온통 파란색이잖아요. 암울하고.
엄마 : 색깔 자체가 그렇죠. 예쁜 파란색이 아니라 좀 어두운 파란색이잖아요. 그래서 밤에 뜬 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달빛이라고 하기에는 덜 밝은 것 같고, 그런데 또 해라고 하기에는 낮의 밝음이 안 느껴져요. 그림 자체가 따뜻한 느낌은 아닌 것 같아요. 해가 나오지만.
딸 : 다시 보니까 애들을 이 그림에서 지우면 해가 있고 이게 약간 구름 같아요. 그냥 하늘을 보고 그렸는데 이중섭이 상상해서 위에다가 이렇게 라인을 한 느낌이 들어요.
엄마 : 하늘을 보고 있는데 거기에 자식들의 이미지가 보이는 거지. 그런 거죠?
딸 : 네 맞아요.
엄마 : 딸 얘기를 들으니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사무쳤을 거야. 이렇게 눈앞에 계속 가족의 모습이 아른거리는 거지. 너무너무 자녀와 부인이 보고 싶으니까, 눈을 감아도 보이고, 하늘을 봐도 아른거리고 그런 의미로 작품이 메시지가 좀 더 와닿네요.
아빠 : 그 얘기 하니까 난 이제 해가 해라고 안 보이고 이중섭의 얼굴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흐뭇하게 눈 감고 상상하고 있는 거잖아. 애들이 놀고 막 그러잖아. 그러니까 그냥 그 기분 좋은 상상을 간직하고 싶거나 아니면 더 밝은 미래를 기대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에요. 암울보다는 앞으로 더 밝음을 생각하든 아니면 좋은 일만 생각하고 있는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눈 감고 미소 지으면서.
화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
<작품 정보 >
이중섭, <해와 아이들>, 1952~1953, 종이에 연필과 유채 32.5X49cm
이중섭(1916~1956)
이중섭은 평안남도 평원군 대지주의 집안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부유한 환경 덕분에 미술을 쉽게 접할 수 있었고, 아주 어릴 때부터 그림에 빠져들었다. 오산고등보통학교에 들어가 우리나라 1세대 서양화가인 임용련의 지도 아래 화가로서의 꿈을 키웠다. 1936년 일본 도쿄 제국미술학교에 입학하였으나 학교를 그만두고 그다음 해 문화학원 미술과에 다시 입학했다. 재학 중 다양한 전시회에 출품하여 신인으로서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 뒤 여러 상을 받았다. 1945년 원산에서 일본인 마사코와 결혼하여 3남을 두었으나 장남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 죽었다. 6·25 전쟁을 피해 부산을 거쳐 제주도에 도착해 피난 생활을 하였으나, 생활고로 인해 다시 부산으로 돌아왔다. 이 무렵 장인어른의 별세로 부인과 두 아들은 일본 동경으로 건너갔으며, 이중섭은 홀로 남아 부산 · 통영 등지로 전전하였다. 1953년 일본에 가서 가족들을 만났으나 불법 체류자가 되지 않기 위해 며칠 만에 다시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 줄곧 가족과의 재회를 염원하다 1956년 정신이상과 영양실조로 적십자병원에서 죽었다. 그의 나이 40세였다.
부인 마사코는 이중섭과 7년밖에 살지 못했지만, 그의 사후 66년을 홀로 지내다가 2022년 101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사랑이 얼마나 깊었는지 그녀의 외사랑에서도 느낄 수 있다. 사실 이중섭에 대한 스토리를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중섭에게 아들이 둘이 아닌 세 명이 있었다는 것은 최근에야 알게 되었다. 장남은 조산아로 태어나서 그해에 세상을 떠났다. 이중섭은 어린아이들이 즐겁게 노는 모습을 그려서 아들의 무덤에 같이 묻어줬으며 그때부터 이중섭의 그림에 뛰어노는 아이들이 많이 등장했다고 한다. 그림을 이해하는 데 화가의 생애는 필수 불가결한 공부의 대상이다. 하브루타를 마친 뒤에 꼭 한 번 되짚어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다시 한번 느꼈다. 부유한 집안에 태어났음에도 불구하고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으며, 일찍 죽은 아들과 살아있어도 만나지 못하는 가족을 가슴에 품은 채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져 죽어간 화가의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