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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아한밍블 Jul 14. 2021

월급에 포함되어 있는 것들

직장을 그만두지 못하게 하는 것

“월급 그거 얼마나 된다고.

그 조금 안 받고 스트레스도 안 받는 게 훨씬 좋지!.”   

  

복직하고 이런 말을 꽤 자주 했다. 월급이 얼마 이상이 되어야 이런 생각을 안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 월급은 정말 많지 않았다. 7급이 된 이제야 230만 원 정도 받는데 그 안에서 부모님 용돈, 차비와 식비, 품위 유지비용(옷, 커피 등등)을 제하고 나면 정말 매번 현타가 다.

아이가 없을 때는 내가 버는 만큼 고스란히 저축을 할 수 있어서 적은 월급이어도 가정 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생각을 했는데 아이 돌봄 비용까지 더해진 지금은 일을 해도 저축늘지 않았다. 게다가 일하느라 아이들의 공부와 생활습관도 세심하게 챙겨줄 수 없게 되니 이래저래 남는 게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 거리두기의 당부가 무색하게 출퇴근길 지하철은 사람으로 가득 찼고 그래서 더욱 짜증스러웠던 어느 날, 진지하게 그만두는 건 어떨지 생각해 봤다. 겨우 7-80만 (이것저것을 제하고 남는 금액)을 위해 매일같이 새벽에 나와 사람이 꽉 찬 지하철에서 나의 체력을 버려 하는 건지, 간신히 도착한 직장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정신까지 갈아 넣어야 하는 건지 명확히 답을 내고 싶었다. 




 직장 생활 8년, 휴직을 6년 했던 나는 집에 있다는 의미가 그저 편안히 쉬는 게 아니라는 걸 안다. 오히려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다는 이유로 멀쩡했던 자존감이 무너지기도 하고 열등의식에 시달리기도 했는데 거기에 내가 좋아하는 소비까지 제한됐.

 반면, 복직을 한 이후에는 예쁜 쓰레기, ㅆㅂ비용이라는 이름으로 지출 후 금방 후회할지언정 그때그때 지친 마음을 돌보는 소비가 가능했다. 겨우 얼마니, 어쩌니 해도 집에 있을 땐 네이버 애드포스트 이외에 한 푼도 벌지 못하다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 덕에 사고 싶은 것을 눈치 보지 않고 살 수 있었다. 

이번 달엔 향수를 2개나 샀는데 거기에 룸 스프레이 2개를 추가했다. 2개의 향 중 어떤 걸 고를까 고민하는 대신 2개 다 주문하는 Flex.! 이런 것들이 '겨우' 7-80만 원이라고 할 수 있는지 나 자신에게 물었다.


매월 100만 원 정도의 여윳돈만 생긴다면 그만 둘 이유가 충분했는데, 그 전제를 충족시키기가 어렵다. 매월 100만 원 정도의 여윳돈은 절대 쉽게 생길 수 없었고 다시 예전처럼 소비를 줄이며 쪼그라드는 마음을 관리할 자신이 없었다. 무엇보다 출퇴근길이 힘들어서, 남는 돈이 쥐꼬리만 해서가 아닌 더 중요한 가치를 이루기 위해 퇴사를 선택하고 싶었다. 출퇴근길의 짜증을 가라앉히며 차분히 생각해 보니 아직은 이 직장에서 더 배울 것이 있었다. 나의 뿌리가 깊이 뻗어 갈 수 있도록 힘이 더해지는 압력의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다. 내가 그토록 받기 싫어했던 스트레스를 통해.


우리는 능숙한 인간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재능과 능숙함은 다르고, 후자는 무조건 꾸역꾸역의 나날이 필요하다. 버틴다고 뭐가 되지는 않지만, 그런 보장은 없지만, 재미없는 걸 참아내는 시간 없이는 재미가 오지 않는다.
[출근길의 주문, 이다혜]


직장 내에서 부딪히는 크고 작은 일, 출퇴근길에서 드는 허탈한 마음 등을 '퇴사'라는 만능카드로 해결하려 했다. 하지만 만능카드로 여겼던 '퇴사'가 사실은 만능이 아님을 알고 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것은 내 마음의 만족을 따르는 일과 경제적 가치가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나의 역량과 방향을 설정하는 일이다. 이 직장이 내 인생의 목표점이 아니라는 점에서 뛰쳐나가고 싶었지만 어쩌면 이곳에서 힘을 비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꾸역꾸역의 나날'을 통해 결핍과 불안함을 견뎌내는 힘, 기대고 싶은 마음을 나 혼자 해결하는 힘 말이다.


가정에서 나의 역할이 건강하게 자리 잡을 때까지 혹은 다른 방향의 에너지로 새로운 인생을 설계할 때까지, 직장에서 버티는 힘을 길러보자. 직장은 버티는 힘을 배울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혼자만 있을 땐 생각하지 않았던 부분을 누군가를 위해 배려하고, 서로 조금씩 눈치도 보면서 마음의 평수를 키워 나가는 곳. 나에 대해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을 해도 본질이 아니라면 허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 있는 여유를 갖게 하며, 내향적인 내 성향에 반하는 일도 주춤거리지 않는 자세를 가르치는 곳. 내 월급에 경제적 가치 외에 이런 것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생각하자 직장 생활이 배움의 장으로서 꽤 괜찮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버티는 힘은, 그러니까 사회생활의 필요 근육은 하기 싫은 일을 견뎌내며 길러지는 법 아닌가? 그러다 간간히 내 적성에 맞는 일을 만나면 조금 재밌다 싶은 마음으로 일하며 인정도 받고.


 그래, 매월 받는 내 월급에는 좋아하는 향기를 킁킁대며 맡을 수 있는 호사스러운 취향의 존중과 집안에 가만히 있을 땐 영 떠오르지 않던 글감뿐만 아니라, 보너스로 '버티는 힘'까지 제공하고 있었다. 게다가 '버티는 힘'은 직장생활만 버티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욕망과 경제적 가치의 균형을 이루지 못해 삐걱대는 내 모습까지 견디게 해 준다는 점에서 월급만큼 매력적이다.


결국 월급과 보너스다.

의미부여가 꼭 필요한 나 같은 사람이 기어이 월급에 포함된 경제적 가치 이외의 것들을 찾아내도 결론은 크게 월급과 보너스.


아, 괜히 머리 아프게 돌아온 기분이다. 소중한 것은 그저 소중한 것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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