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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배시시 Oct 30. 2022

잃어버린 행복을 찾아서

남의 행복을 잠시 빌리기


아이러니하다. 행복하다고 느끼기 충분한데 가뿐히 그러지를 못한다. 정신건강의학과 약봉투를 서랍 구석에 숨기기 바쁠 때 ‘너는 왜 행복할 일 투성이인데, 힘들다고 하니?’라는 말이 가슴에 날카롭게 꽂혔다. 실은 아무도 그런 말을 던진 적이 없다. 자신을 다그치는 익숙한 버릇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즐거운 세계로 돌아오기 힘들었다. 며칠을 누워서 오래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그럴 때는 유일한 버팀목이던 글마저 쓸 힘이 없다. 고개를 돌려보니 창밖의 하늘이 미안할 만큼 파랗다. 나뭇가지에서 나온 잎들이 여러 가지 초록으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빛을 받아 순간마다 반짝이며 색을 바꾼다. 그게 예쁘긴 하지만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떻게든 행복을 되찾고 싶어서 스스로 꽃을 사 주려고 했다. 일점오키로를 걸어서 천사 꽃집 건너편까지 도착했다.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등이 세 번이나 바뀌도록 쭈뼛거리다가 몸을 돌렸다. 집 근처 편의점에서 핫도그와 라면, 포카칩을 샀다. 내 편이 아닌 침대로 돌아와 아무렇지 않게 핫도그를 입에 쑤셔 넣었다. 아직도 심장이 쿵쾅쿵쾅 뛰었다. 할 수 있는 걸 다 한 거 같은데 아직도 행복하지 않았다.

그다음에는 닥치는 대로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너를 행복하게 만드는 게 뭐니? 어떨 때 행복하다고 느끼니? 최근에는 무엇으로 행복했니? 무작정 남의 행복을 끌어다 모으면 나도 걔를 알아보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이런 것들을 모았다.


나의 주변 사람들은 이런 것으로 살아갈 힘을 얻는다.


밤늦게 침대에 누워서 알람을 끄고 마음 편하게 눈 감는 거, ASMR으로 빗소리를 틀어놓고 방 불을 끄는 거, 주말 저녁에 괜찮은 영화 한 편을 틀어놓고 맥주 한 캔을 따며 이불속으로 들어가는 거.


행복은 편안한 잠을 맞이하는 거구나.


신호에 섰는데 바로 파란 불로 바뀜, 평일 낮에 회사에 반차를 내고 비가 억수같이 오는 날 다 젖어서 힘든데 2층 이상인 통유리로 된 커피숍에 소파에 앉아서 몸을 뽀송하게 말리면서 창밖을 바라보기, 집에 가는 길에 고양이를 만나기, 보고 싶었던 영화를 개봉하자마자 보기, 가고 싶었던 맛집을 사랑하는 사람과 손 꼬박 기다려서 나가기.


행복은 우연한 기쁨과 설레는 기다림이구나.



고된 알바를 끝내고 씻지도 못한 채 만난 동네 친구들과 집 근처 술집에서 마시는 맥주 첫 잔의 첫 모금, 기업 설명회에 갔는데 나만 대학생이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50대 사장님인데 나를 독특하다고 바라보는 특별한 눈빛, 휴일에 카페에 가서 남들처럼 책 읽기, 봄에 우르르 나가서 벚꽃 구경하기, 미국으로 여행 가서 텅 빈 도로를 맘껏 달리기, 라스베이거스 카지노에서 돈을 따고 그 돈으로 바로 스포츠카를 렌트하기


행복은 남들과 다르다고 느끼면서 동시에 남들과 같다고 안심하는 거구나.


첫 집회를 가서 두려움에 떨며 뒤로 고개를 돌렸는데 끝이 보이지 않던 연대의 행렬, 말이 필요 없는 한 마음의 뜨거움, 매트가 구겨지도록 사랑하는 이와 침대에서 뒹구는 것.


행복은 이런저런 사랑이 느껴지는 거구나.


행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그것과 가까워진 느낌이다. 그건 잠이 안 온다고 유튜브에서 가짜 빗소리나 모닥불 소리를 틀고 눈을 감은 것처럼 조금 외로운 편안함을 선사한다.


오늘도 이런저런 남의 것을 빌려다 침대 옆에 두고 뻔뻔하게 잔다. 어제보다 깊이 잠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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