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호자에 의해 결정되는 너희들의 삶
생일파티를 하고, 여행을 떠나고, 가족들의 모든 이벤트에 함께하는 요즘 반려견들의 삶. 때로 기쁨이와 함께 길을 나서면 [강아지 팔자가 제일 좋구나] 하시는 분들을 마주한다. 유모차에 앉아서 편안하게 서울 관광을 하는 모습을 보면 나도 헛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동네에 기쁨이 친구들을 보면, 다들 자신들의 강아지를 위해 참 최선을 다 하시는 분들이 많다. 간식을 직접 만드는 것은 물론이고, 정기적인 검사와 치료를 위해 매달 연차를 쓰고 대학병원에서 하루 종일 기다리시는 분들도 있다. 큰 병원에 가면 보통 아픈 강아지들은 가장 편안한 자세로, 가장 푹신한 곳에서 쉬고 중간중간 간식도 먹지만, 견주들은 밥도 제 때 못 드시고 점점 눈 밑이 시커멓게 되어서 쪽잠을 주무시는 분들이 많다.
옷을 직접 만들기도, 강아지 산책을 위해 환갑이 넘으신 나이에도 근력을 쌓으신다고 헬스장에 부지런히 다니시는 분들도 뵈었다. 우리를 포함하여 이 분들에게 강아지는 그냥 예뻐서 함께 하는 강아지가 아니다. 자식이고 가족이고 나의 일부이기에 우리는 한시도 게으를 수도, 귀찮다거나 힘들다는 이유를 달 수도 없다.
기쁨이를 키우면서 다른 강아지들을 눈여겨보게 되었다. 그리고 강아지들도 사랑을 많이 받는 아이와 그렇지 않은 아이가 한눈에 구분된다는 것을 알았다.
아이들의 표정과 눈빛에서 그 아이들의 안에 쌓인 사랑이 보인다. 산책을 할 때에도, 주인과 눈을 맞추고 대화를 하면서 걷는 아이가 있는가 하면, 강아지는 냄새도 많이 맡고 싶어 하고, 주인의 얼굴도 서로 마주하고 싶은데 그저 휴대폰만 바라보며 막무가내로 줄을 잡아끄는 분들도 있다. 심지어 다리를 절뚝이는 줄 잘 모르시고 걷는 분들도 계셨다. 오지랖인 줄 알면서도, 예의가 아닌 줄 알면서도 나도 모르게 [저기.. 아이 걸을 때 다리를 조금씩 깽깽이를 해요]라고 알려드린 적도 아주 가끔 있다.
다른 친구를 향해 짖는다고 대놓고 목줄로 얻어맞는 아이, 잘 안 따라온다고 발로 밀침을 당하는 아이, 그리고 가게에서 키운다고는 하지만 사실상 방치에 가까울 수도 있는 아이들을 보기도 한다. 그런 모습을 기쁨이도 가만히 바라본다. 기쁨이가 봐도 이상한지 눈을 떼지 못하고 그 친구를 뚫어져라 본다. 슬픈 눈으로.
사람들이 { } 수저라고 등급을 매기는 것처럼, 강아지들에게도 그 수저가 존재하는 듯하다. 그런데 그 수저는 돈이나 재물의 여부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오로지 견주에 의해 결정된다. 같은 배에서 나온 강아지들이라도, 어느 가정에 입양되느냐에 따라서 행복의 척도가 달라지는 것 같다. 처음에는 예쁘다고 데리고 와서는 방치가 되고 그러다가 버림을 받거나 죽음까지 가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진심으로 아껴주는 가정에 갔더라면 분명히 사랑을 받았을 아이들이다. 돈이 들어서, 집이 좁아서, 아이가 있어서, 바빠서.. 사실 강아지를 키울 때, 우리가 댈 수 있는 핑계는 무궁무진할 것이다. 그러나 강아지는 오로지 견주와 가족 하나만을 믿고 따르면서 그 세계가 전부인 채로 살아간다. 어린이를 부모가 오만가지 이유를 대며 방치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것이 얼마나 공포일지 말이다. 그나마 어린이는 말이라도 하고 표현이라도 하지만, 강아지들은 말도 못 하고 그저 묵묵히 자신의 삶에 순응하며 그 시간을 견딘다.
종종 강아지 구조와 관련된 유튜브 채널을 본다. 정말 비참한 상태로, 거의 누더기나 다름없는 아이들을 누군가는 버리고 누군가는 간절한 마음으로 살린다.
사람에 의해 망가졌다가 또 사람에 의해 다시 생기를 얻고 살아가는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묘해진다. 애초부터 저렇게 웃음이 가득한 얼굴을 보일 수 있는 아이들의 잃어버린 몇 년이 안타까운 마음 때문이랄까.
우리 강아지의 삶이 어떠한 색의 수저가 되는지는 바로 함께 하는 견주에게 달렸다. 강아지들에게 필요한 것은 멋진 집도, 고급스러운 옷이나 음식도 아니다. 오직 사랑. 가족들이 전해주는 사랑이다. 우리나라에 있는 강아지들이 모두가 반짝이는 다이아 수저의 삶을 살았으면 한다. 마음이 따듯함과 안락함 그리고 사랑으로 꽉 채워져서 10여 년의 삶 동안 빛나기를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