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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 냉장고와 테트리스 쇼핑
by
미르
Jan 09. 2025
아래로
아아, 갔습니다.
그는 갔습니다.
널따란 공간에서 김치를 품어주던
나의 김치냉장고가 그만그만.....
20년 동안 고장 한번 나지 않았다.
세 번의 이사에도
잘 살아남은 나의 김치냉장고.
얼마 전부터 들어온 주황색 경고등.
김치를 넣어 둔 곳이 아니라
된장과 고추장의 바다에
큰 멸치 작은 멸치들이
손잡고 즐겁게 뛰어노는 곳이라
살짝 눈을 감았다.
열어 보니 된장이
북극체험을 하고 있구나.
이러면 안 되지.
어차피 해야 할 일.
하루에 귀찮은 일 하나는 해라.
급하게 김치냉장고 주문을 넣는다.
두둥.
3일 만에 바로 배달되어 온 김치냉장고.
우리나라 좋은 나라.
진작 주문할걸.
헌 것은 잘 가십시오.
그동안 저의 김치를 품어 주셔서
정말 고마웠습니다.
편히 잠드소서.
새것은 오라.
기쁘게 맞아주겠습니다.
멋지다.
그런데 뭔가 어색하다.
그동안 사용한 것은 두 짝짜리 김치냉장고.
새로 온 것은 한 짝짜리 김치냉장고.
20년의 긴 사용 기간 동안
나는 나를 알아 버렸다.
일 년에 5포기쯤의 김장으로
잘 먹고 잘 살았다.
여름에는 새로 만든 김치를
사 먹으며 잘 살았다.
그동안
한 통만 사용하고 있었다.
다른 한 통은 수납장이
되어 가고 있었다.
이번에 주문한 작은 김치냉장고.
그 옆의 공간이 남는다.
이를 어쩌나.
든 자리는 표가 안 나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
휑뎅그렁한 공간이 안타깝다.
테트리스의 본능.
채우자.
빈 공간을 채워야 해.
줄자를 가져와서 치수를 재고
부웅부웅 출동.
호모 쇼핑쿠스가 나간다.
(이런 용어 없습니다.
찾지 마십시오.
제가 만든 말입니다.)
저 먼 노벨상의 나라 스웨덴에서
온 가구점에 가면
이 공간을 채워 줄 수납장을
꼭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마음이 급하니
해운대 해수욕장 점프
송정 바닷가의 서핑족들을
차창 너머로 일별하고 지나친다.
드디어 만난 가구점에서
온갖 종류의 3단
바퀴 달린 수납 트레이.
국민 트레이도
세일한다는 목걸이를 건 트레이도
나를 유혹하는구나.
하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우리 김치냉장고 옆에서
예쁜 얼굴을 보여줄
예쁜 옆구리를 가진
3단 트레이.
돌고 돌다
드디어 만난
예쁜 얼굴
아니 예쁜 옆태.
너로구나.
어서어서 가자.
우리 집으로 가자.
쓔웅.
조립 상자를 들고 와
거실에 커다랗게 눕혀 놓는다.
어렸을 때부터
에펠탑, 런던다리 조립에 강했던
나의 딸.
조립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두근하다고 한다.
이케아에 가구 조립하는 일자리가 있으면
지원하고 싶다네.
아마, 그런 일자리도 있지 않을까?
어쩌면 귀찮을 수도 있는 일상의 일을
가슴 뛰며 좋아하며 하는 딸을
멀리서 신기하게 바라보며
사람들은 참 다양하구나 싶다.
돌돌돌
휘리릭
조립한 3단 수납 트롤리.
김치냉장고 옆자리가
원래 자신의 자리인 듯
딱 들어맞는다.
김치냉장고와 수납장 샀다고 자랑하는 글.
하지만 운이 좋으면
향후 20년 동안은 쓸 수 없는
김치냉장고 구입 글.
두둥.
나의 김치냉장고와 수납 트롤리.
작은 행복을 담고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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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냉장고
김치
테트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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