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에 우리 남편이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과자 묶음을 사가지고 오셨어요.
한 노래가 생각난다.
아빠와 크레파스.
'어젯밤에 우리 아빠가 다정하신 모습으로
한 손에는 크레파스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음음'
1985년에 발표된 이 노래는 동요가 아니라
가수 배따라기의 가요로 금지곡이 될 뻔했다.
언론의 통제가 아주 강한 시기가 있었다.
그 당시 공연윤리위원회의 사전심의에 걸렸다.
원래 가사는
아빠가 술에 취한 모습으로 오셨다.
대한민국 아빠들을
다 술꾼으로 만드는 부정적인 가사라 해서
다정한 모습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남편은 술에 취하지 않은
멀쩡한 모습으로 과자를 사들고 왔다.
평소 술 담배를 하지 않는 남편은
과자에 관심이 많다.
마트에 가면 새로 나온 과자를
베란다 유리 밖에서
대봉감을 노리는 까치처럼
뚫어져라 쳐다본다.
과자가 눈에 보이면 먹고
보이지 않으면 먹지 않아도 되는
나와는 다르다.
아이도 아니고 어른이
과자 코너 앞에서
아주 진지한 생각에 잠겨 서성인다.
어떤 과자가 맛있을까?
어제는
3개가 한 묶음으로 되어 있는 과자를
사 가지고 왔다.
저녁을 먹고 난 뒤.
딸아이가 한 봉지의 과자를
뜯어먹으려고 한다.
새로 보는 과자라
나에게도 같이 먹자고 제안한다.
그런데, 내가 양치를 했다.
양치를 다시 하기가 귀찮아서
안 먹는다고 했다.
과자에 미련 따위는 없다.
양치하기가 훨씬 더 귀찮다.
그러자
용기에 따로 담아 놓겠다고 한다.
다음날 오후.
문득 과자 생각이 났다.
밀폐용기에 담아 놓은 과자를 먹었다.
새로운 과자라 하는데
포테이토 칩의 새로운 양념 버전이다.
질소 포장이라 양이 뻔한데
꽤 많이 남겨 놓았다.
'많이 남겨 놓았네.
우리 딸은 엄마를 너무 좋아하잖아~.
귀여운 녀석~.'
손에 집히는 대로 먹다 보니
금방 다 먹었다.
눈에 보이면 다 먹을 수 있다.
저녁에 딸에게 이야기했다.
"과자를 생각보다 많이 남겨 놨네.
맛만 보라고 조금만 남겨 놓을 줄 알았는데.
맛있어서 엄마가 다 먹었어"
"당연하지.
엄마랑 내가 같이 먹으려고 많이 남겨 놨는데."
하하하.
많이 남겨진 과자를 보고
나는 딸이 엄마를 아주 사랑해서
많이 남겼다고 생각했다.
아주 사랑하다.
항상 사랑하다.
아주 사랑받다.
항상 사랑받다.
나는 사랑받는다는 착각을
항상 하고 살고 있는 중이다.
사랑이라는 착각을
항상 하고 살아가고 있다.
어쩌면 하루에도 몇 번씩
'사랑해'를
마침표처럼 말끝마다 붙여서 말하는 딸
덕분인지도 모르겠다.
어수선한 세상 한구석에서
반 봉지 정도 되는 작은 과자로도
행복한 사람이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