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칫솔, 나는 밝아.

by 미르

칫솔통에 식구들의 칫솔이

나란히 꽂혀 있는 것을 본다.


각자의 취향에 따라

디자인이 확연히 다른 칫솔일 때도 있지만

한 종류의 다른 색의 칫솔들이

꽂혀 있을 때도 있다.


너무 바빠 정신이 없는지

혹은 나의 일순위가 바뀌고

다른 작은 일에 신경이 쓰이지 않는지

칫솔을 찾으려다

고민을 한다.


아, 내 칫솔이 어떤 색이더라?


가끔씩 딸의 칫솔에 치약을 짜다가

뭔가 이상한 느낌에 사로잡힌다.


어, 이게 아닌데.


그러다

나의 칫솔을 구별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나는 밝아, 칫솔.


대체로 칫솔 세트를 사면

어두운 색과 밝은 색이

골고루 섞여 있다.


남편은 쉽다.

파란색류로 정해주면 끝.


그 외 나머지 색을

딸이랑 사이좋게 나눠 쓴다.


그러다 알게 되었다.


어릴 때

분홍치마를 입고

분홍 신을 신고

분홍 가방을 메고

다니던 딸.


커서는

여름에도 겨울에도

흑백 인간이

되어가고 있는 중


분홍색이라니 질겁을 한다.

그래서 분홍, 다홍, 노랑

이런 색들이 나의 차지.


딸은

그 외의 좀 무난한 초록 계열로 선택.


분홍, 다홍, 노랑이라니.

밝다.

한없이 밝은 색이 나의 차지가 되었다.


그래서 요즘은 칫솔통 앞에서 두렵지 않다.

그 앞에만 서면 이런 생각을 한다.


나는 밝아, 칫솔.


나란히 꽂혀 있는 칫솔 중에서

제일 밝은 녀석이 나의 칫솔이다.


이런 작은 하찮은 짧은 순간이

하루에도 세 번씩 반복된다.


나는 밝아.

주문을 외운다.


이러다 보니 점점 그 주문을 닮아간다.

기분이 좋아진다.


의도치 않게 가지게 된

밝은 색상의 칫솔에게서

밝음을 보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진한 색깔의 칫솔을 사용하는 분들,

고민하지 마시라.


칫솔 같은 작은 것을 가지고

고민을 하다니

당치도 않다.


진한 색이면 진한 색답게


아, 나는 진한 인간이야.

나는 푸른 인간인걸.

나는 진중한 사람이다.

나는 우리 집의 중심.


이렇게 주문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많은 유명한 사람들이 말한다.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물론 무조건 말만 해서

이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간절한 목표를 가지고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자세를

더욱더 강조하는 말일 것이다.


무슨 굉장한 목표가 없더라도

이를 이루기 위해

대단한 노력을 하지 않더라도

이렇게 작은 말하나로도

기분이 좋아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당장 칫솔에게

주문을 만들어서

불러 보라.


말할 때마다

아주 기분이 좋아진다.


정신없이 바쁜 와중에

자기 칫솔 잘 못 찾아서

만들어낸 말이 아주 마음에 든다.


칫솔에게 말을 걸다니

주문을 걸다니

미쳐가고 있나 보다.

물론 좋은 쪽으로.


이러다 세상의 모든 물건에도

말을 걸지도 모르겠다.


설령 대답이 돌아오지 않는 말이라도

이렇게 한 마디씩 하니 좋다.


주변에서 밝음도 좀 찾아보고

행복의 작은 순간도 찾아보고

묵직한 가슴 벅차오르는 순간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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