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람들 책 참 안읽는다는 기사가 종종 눈에 띈다. 내가 기억컨대 독서가 강조되지 않은 때가 없었던 것 같다. 내가 어렸을 때는 독서하면 일본사람들 얘기가 많았다. 국민 계몽용으로서 일본인들은 지하철에서 대개 책을 읽는다고 그랬다. 그래서 잘 산다고까지 덧붙임으로써 국민들의 독서생활을 강요했다. 요즘 책보다 스마트폰이 대세인 시대에도 그들은 여전히 책을 읽을까 궁금하다. 요즘은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라든가 '가을은 독서의 계절' 등의 상투적인 구호조차 그저 옛날 말이 된듯 하다.
미디어 등에서는 툭하면 '1년에 한 권도 안읽는 비율이 60%'라는 식의 기사를 다룬다. 그래서 뭐. 그게 꼭 개탄해야 할 일인가. 시대가 변해서, 생활양식이 변해서 그렇다면 그런줄 알겠다는 뜻이다. 물론 나는 40%에 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앞으로도 틀림없이 계속 책을 읽으며 살리라 믿는다.
언젠가는 젊은층에서 '텍스트힙'이 유행이어서 책을 찾는 인구가 늘었다고 했고, 소셜 미디어 같은데 책 읽는 모습의 사진을 올리거나 책을 펼친 사진을 올리는게 유행인 적도 있다고 했다. 한강 작가가 노벨상을 수상해서 출판동네에 특수가 일어나기도 했고, 한 연예인이 티비 프로그램에 나와 언급해서 노벨상 수상작보다 더 큰 베스트셀러를 기록하는 중이라는 이야기도 접했다. 그런가 하면 요즘은 필사가 붐이어서 필사할 책에 대해 다룬 책이 또 인기라고도 했다.
책이나 책읽기를 둘러싼 현상은 늘 있어왔다는 이야기다. 그러니까 요새 많이 보이는 제목식으로 하면 '나는 책을 안읽기로 했다'거나 또는 '책 안읽을 결심'을 하는 사람들은 딱히 없지 않을까. 얼마전 읽은 책, '독서'(김열규 지음)라는 책에는, 많은 사람들에게 적어도 제목만큼은 유명한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에 나오는 내용이 언급되어 있다.
프롬은 삶의 양식과 마찬가지로 책 읽기에 있어서도 두 방식이 존재하는데, 흥미 본위의 책을 상품 소비하듯 하는 소유의 양식으로 읽는 책읽기와 작품 속에 내적으로 참여하면서 생산적으로 읽는 존재양식의 책읽기가 있다고 주장한다.
요즘 드라마에 소품으로 슬쩍 스쳐지나가기만 해도 주문이 늘고 유명인이 언급하면 부쩍 그 책이 많이 판매되는 현상은 그나마 출판가에는 반가운 일이라고 하지만, 이는 소유양식의 책읽기를 넘어서 책이 패션이고 악세사리 정도로 소비되는 형국이니 이런 풍토에서 존재양식의 책읽기는 요원하지 않을까.
'지대넓얕' (지적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류의 책은 대표적인 소유 양식의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맥락과 의미보다도 토막의 지식들을 빨리 주워 습득한뒤 '지적대화'에 참여하겠다는 태도는 사실 이미 만연돼 있지 않은가. 인터넷에 소위 '컨텐츠 크리에이터'라는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영상을 훑어보면 문학작품을 비롯해 거의 모든 책을 짧게 짧게 요약해준다고 난리인 모습이다.
지금도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예전 학교에서 하던 '독서 골든벨'따위의 행사는 바로 소유양식의 책읽기, '지대넓얕'식 책읽기를 유도하고 독서에 대한 잘못된 방식을 형성할 우려가 있는 해로운 행사였다고 생각한다.
책, 읽느냐 마느냐, 과연 그것이 문제일까. 꼭 그렇진 않지 않을까. 읽느냐 마느냐 그것은 다만 선택일뿐. 아주 오래전 책은 커녕 문자에도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세상에서도 인륜이나 보편적인 도리정도로 인간다운 사고와 행동을 하고 살았었다.
그런데 지금은 진실이나 사실을 왜곡하고 호도하는 해로운 정보들이 난무하는 속에서 도저히 이해 안되는 일부 광기어린 '보통 사람'들이 우리 곁에서 살아가는 세상이다. 폼나는 '지적대화'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제는 이 혼란스러운 세상에서 겨우 자기의 중심을 세우기 위해서도 왠만하면 책은 좀 읽으며 더불어 생각이라는 것도 좀 하고 살 필요가 절실한 때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