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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전 같은 캐나다 대 미국 아이스하키 경기

모욕당한 자의 설욕 

by 오리진 Feb 22. 2025

지난 목요일 저녁은 올겨울 춥고 유난히 눈이 많이 내리는 캐나다 전역을 후끈 달아오르게 만드는 일이 있었다. 아이스 하키 경기 때문이었다. 캐나다의 자존심 아이스 하키 경기에 대한 열광은 새로울 것 없는 일인데 그 날은 더욱 그랬던 것 같다. 왜? 요즘 돌아온 트럼프의 과감하고도 무례한 행보와 망발때문에 껄끄러워진 미국과의 경기였기 때문이다. 


난 그날 저녁 나이트 근무를 하고 있었고 내가 투약시간에 약을 실은 카트를 밀고 복도를 오가는 동안 크게 틀어진 티비 중계 소리도 여느때와 다름없는 일상일 뿐이었다. 아이스 하키에 문외한인 나는 그날 어떤 경기가 펼쳐지는지 알바 없었고 누가 이기는지까지 뭐 그닥 큰 관심사는 아니었기 때문에. 


힐끗힐끗 보면 몸싸움이 격렬해서 그 하얀 얼음바닥에 피가 뚝뚝 떨어지기도 하는 장면을 더러 본적있고 관중들도 퍽 열정적인 모습이라는 정도가 내가 아이스 하키에 대해 갖고있는 이미지였다. 밤 열시가 넘어서 마지막으로 약을 주는 한 환자의 방에 갔을 때 그는 흥분상태였다. 사지를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는 스포츠 경기의 채널이나 뉴스 채널을 돌려가며 침대에 누워서 시청할 때도 혼자 리모컨을 조작하지 못해서 콜벨을 울리는 사람이다. 마약성 진통제를 세시간마다 복용해야 하는 그는 별 표정변화가 없고 늘 통증이 있고 몸이 심하게 불편하기 때문에 까다롭다는 인상을 주는 사람이었다. 


내가 처음으로 본 신이 난 모습으로 "캐나다가 이겼다! 우후~~" 하고 외쳤다. 그의 새로운 모습에 비로소 예사의 아이스 하키 경기가 아니었구나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날 아침에 퇴근하면서 뉴스등에서는 줄줄이 그 경기 이야기가 풍년이었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그 경기는, 캐나다, 미국, 스웨덴, 핀란드 네 나라가 페이스 오프 경기를 펼치는데, 캐나다가 미국을 상대로 한 결승전에서 이겼다고 알게됐다. 최근 트럼프가 캐나다를 상대로 관세를 25%까지 올리겠다고 엄포를 놓고 미국의 51번째 주가 되라고 하면서 캐나다인들의 자존심을 긁어대서, 최근 '국산품 애용운동'이 자발적으로 일어나는 분위기까지 조장된 마당에 펼쳐진 대 미국전이니 그 선수들이나 관중들의 비장함이 남달랐던 거다. 


이런 배경을 이해하고 나니 캐나다 대 미국의 아이스 하키 경기는 마치 한일전을 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었다. 그 어떤 종목이 되었든 세상없어도 일본을 상대로 한 모든 경기는 다 이기고 봐야 하는, 본능과도 같은 필연의 비장함 말이다. 


요즘 인기없는 트뤼도 총리도 소셜 미디어에 한 말씀 남겼다. 

"너네는 우리 나라를 가질 없다! 너네는 우리를 이길 수 없다!"


트럼프도 경기 전 선수들에게 전화걸어 이렇게 말했다고 알려졌다.  

"행운을 빈다. 당신들은 매우 잘 훈련된 전사들이다. 나는 그대들에게 말걸 수 있어서 영광이다. 사랑한다. 우리는 오늘밤 경기를 지켜볼 것이다. 이겨서 돌아오라" 

이에 한 선수는 "우리는 오늘밤 우리 나라를 위해 그리고 트럼프를 위해 꼭 이길 것이다." 소셜 미디어에 메시지를 남겼다. 


캐나다 경제 전반에 전망되는 '무역전쟁'의 전운과 함께 높아져 가는 두 국가간 긴장관계속에, 하루 저녁 국가적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는 설욕을 하듯 그렇게 상쾌하게 막을 내렸다. 진통제 없이 한시도 못견디는 환자를 잠깐 살맛나게 만드는 진통효과마저 불러일으킨채. 경제도 아이스 하키도 문외한인 나는 그저 모욕당한 자, 캐나다의 건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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