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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긴급상의

by 오리진 Feb 24. 2025

어젯밤 나이트 근무를 할 때였다. 널싱 홈이라는 곳은, 밤이라고 해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이냐 하면 그건 언감생심인 일. 밤에 다 잠만 자주면 얼마나 좋을까마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아픈 일도 있고 응급실에 가야할 수도 있고 낙상 사고가 일어나기도 하고 세상을 떠나는 일도 일어난다. 밤에만 일어나는 일도 없고 밤에는 안일어나는 일도 없다. 


한 밤에 콜 벨이 울렸다. 80대 후반의 남자 환자의 방에 가서 보니 긴히 상의할 일이 있단다. 목소리도 차분하고 음량도 나직하게 그리고 매우 진지한 표정이다. 임신을 했노라고. 애써 표정관리를 하면서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되물었다. 

내가 알아, 확실히 나는 임신을 했어. 정자를 가지고 임신을 했다고. 

남자는 임신을 없는거 아니냐고 물었다.

그래 난 남자 맞아. 그런데 나는 여자이기도 해. 

낙태를 해야겠어. 임신을 중단시켜야 한다고. 


웃음을 참느라 여러번 헛기침을 해야했다. 검사를 해야하는 일이고 지금은 밤이니까 일단 자고 내일 아침에 검사를 진행하자고 했더니 순순히 동의를 해줘서 대화를 짧게 마쳤다. 굿나잇 인사를 하고 불을 끄고 방을 나서자마자 나는 자진 '입틀막'을 하면서 복도를 걸어나왔다. 


아, 이런 경우는 처음인데? 본인이 팔구십대에 이르는데 부모님을 찾는다거나 자녀가 어린 것으로 생각하고 돌봐주러 가야한다고 떼를 쓰는 경우는 드물지 않지만. 


널싱 스테이션에 돌아와 곰곰히 그의 말을 곱씹어 본다. 처음엔 '내 정자를 가지고 임신을 했다' 가 무슨 소리일까 의아했는데 그 다음 말이랑 연결하니 말이 되었다. 내 몸안에 남자몸 여자몸이 다 있는데 내가 가진 정자로 역시 내가 가진 여자몸으로 임신을 했다? 


처음 이야기를 들을 때는 '내가 여자이기도 해'에 에이 말도 안돼 무슨 헛소리야 하는 기색을 내비치지 않아야 한다고 스스로 주의했다. 우선 상대는 너무나 진지한 표정과 어조로 이야기를 하는데 반응을 너무 가볍게 해버려선 안된지 않겠는가. 우리는, 누구에게라도 어떤 상황에서라도 환자를 '리스펙트'해야 한다고 실이 노가 되도록 교육받는 사람들이니깐. 


그런데 나중 곱씹으면서 생각해 보면서,  캐나다는 성소수자에 대한 관념에 있어서 무지 앞서가는 나라라는 것도 떠올리고 나니 혹시 내가 무슨 농담처럼 받아들이는 태도는 아니었는지 긴장이 되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의 말이 사실일 수도 있으니까.  


성정체성에 관한 실체는 요즘 세상에 등장한 것이 아니지 않을까. 태초부터 인류역사에 있어 왔을 것이라고 믿는다. 다만 사회 문화적으로 용인이 되느냐 아니냐가 아니었을까. 그에 따라서 드러내느냐 숨기느냐의 문제가 되었지 않았겠느냐는 생각이 들었다. 이 주제에 대해 무지하고 사유가 깊지 않은 그냥 내 입장이다. 캐나다는 용인을 넘어서 적극적으로 그 입장을 인정하고 나아가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회이니까. 


'남자인 동시에 여자인' 즉, 자웅동체의 몸은 그럴 수 있다고 쳐도, 그의 여자몸이 생식기능이 가능하진 않을테니 임신 테스트를 위한 업무는 생략해도 근무 태만은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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