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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의 질문

by 오리진 Feb 28. 2025

야간 근무를 할 때 가장 바라는 바는 님들이 푹 주무시는 일이다. 아기도 밤에 잘 자주는 건 엄마의 기쁨이고 아기인 자로서 큰 미덕이지 않나. 시설에서 돌봄을 받는 노인의 경우도 다르지 않을터. 

침대에서 떨어지거나 공연히 자신의 능력을 오판 또는 과신하여 도움을 청하지 않고 무리하게 침대에서 일어나 무언가를 하기를 시도하다가 쓰러지거나 넘어지는 일 없이 그냥 쭉 길게 수면상태를 유지하는 일, 우리에게는 큰 행운같은 일이다. 


이바는 아무 보조장치 없이 걷는 능력이 아직 멀쩡한 80대 여성이다. 이 분 역시 치매를 앓고있지만 난폭함을 비롯해 특별한 점은 없는 환자이다. 옷장엔 자신이 손수 만든 원피스, 뜨개질로 만든 니트 가디건들이 가지런히 걸려 있다. 작은 키에 그것을 입고 있으면 가끔 젊은 여성들의 글에 꿈이라고 말하는 '귀여운 할머니'의 모습이다. 


한밤의 조용한 순간, 어디선가 쓰윽쓰윽 하는 소리가 들린다. 주의를 집중하자마자 그 미세한 소리의 정체를 간파한다. 그리고 숨을 죽인채 그 소리가 다시 멀어지고 이내 사라지기를 기대하며 기다린다. 그러나 바람대로 되지는 않고 점점 더 소리의 실체가 가까이 다가옴을 나의 청각은 지각한다. 점점 더 가까이, 쓰윽쓰윽. 체념하고 그쪽으로 주의를 준다. 이바, 그녀다. 


"나 지금 어디 있니?" 

"나 여기 왜 있니?" 

"누가 나 여기에 데려왔니?" 


딱 이 세가지 질문을 하고 단답형의 답변을 들으면 후속 질문은 없다. 올 때 혼자서 왔던 길을 돌아갈 때는 나와 함께다. 천천히 함께 걸어 그녀의 침대까지 바래다 준다. 푹 주무시라고. 하지만 얼추 15분 뒤에 그녀는 똑같이 천천히 걸어나와 이 세가지 질문을 반복한다. 밤새 이것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다 그녀는 새로운 하루를 맞이하고 나는 퇴근을 하는거다. 


그녀를 보면서 인내심을 듬뿍 생성하려고 애쓰면서 나는 생각한다. 자다가 눈이 떠져서 궁금하더라도 일어나 나가서 누군가에게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자면 귀찮다는 생각이 안들까. 내가 어디 있는 것일까, 왜 여기 있는 것일까,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왔을까 점검하는 일은 자기를 인식하는 아주 중요한 질문일 수 있다. 하지만 한밤중에 왜 귀찮지가 않는 것이냐고!


그녀를 침대에 데려다주고 돌아와서 복기해본다. 그녀의 질문들을. 내가 나에게. 

나는 지금 어디에 있는건가. 

나는 여기 왜 있는건가. 

누가 여기에 데려온건가. 


나는 반도의 남녁에서 태어나 지금 지구 반대편 아메리카 대륙 북녁 어디메쯤 살고 있다. 누가 나를 여기에 데려온건가. 나자신이다. 왜? 라는 질문엔 쉽게 답하기 어렵다. 답을 모르겠는건지 답이 없는건지조차 모르겠다. 운명이었을까. 답이 궁해 에이 모르겠다 하는 순간, 익숙한 그녀의 기척이 다가온다. 쓰윽쓰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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