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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인의 정원이야기 Feb 18. 2018

억지 논리가 판치는 명절

명절 논리, 시간이 지나면 무엇이든 해결된다고???


  명절이 부담스럽지 않다면 거짓말이다. 음식을 준비하는 일보다 시댁 사람들과 만나면 생기는 미묘한 감정의 컨트롤이 겐 부담이라면 부담으로 작용한다. 설 명절과 추석 명절, 큰댁에서 합장해 지내는 한 번의 제사, 그리고 우리집에서 지내는 제사를 합치면 시댁 친척들과 적어도 네 번 정도 만나게 된다. 아니다 시어머니 생신과 어버이날 즈음에 만나는 것까지 하면 두 달에 한 번 꼴로 부딪히게 된다. 나는 시댁이라는 이름으로 모인 관계 중 나이와 몸만 어른이 된 사람들을 만나기가 싫다. 정신이 크지 않고 막무가내의 논리를 가진 자가 있으면 그 모임은 특히 싫어진다. 더욱이 진탕 술을 마시며 자신을 잡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 집단이라면.  


  결혼 초, 시어머니와의 큰 마찰을 불러왔던 때에도 의무감이라든가 책임감이라는 말이 며느리인 내게 장식처럼 달려있어 불참을 감히 선언할 수도 없었다. 명절과 휴일에 더 바쁜 남편이 자리를 비워도 명절이나 제사에 시댁에 와 줬으면 하는 기대감은 없어지지 않았다. 지근거리에 있었으니 그랬으려니 했다. 그러나 조금 먼 곳으로 이사를 갔어도 똑같았다. 시어머니나 주변 시댁 분 중 남자 형제들, 간혹 시누 형님들의 생각이 달라지지 않았다. 한 번은 그랬다. 남편이 출장 중일 때 틀어진 시어머니와의 관계를 참고 여러가지 전을 고루 부쳐갔던 때였다(그 무렵엔 남편도 없는데 시댁에 일찍 가서 음식하기가 싫었다. 조금 늦게 가고 싶어 준비한 전). 시어머니는 내가 해온 전을 보고 그런다. “생활이 힘들다더니 뭔 전은 이렇게 많이 해 왔대. 다 거짓말이네.”란다. 우락부락해진 마음을 잡을 길 없이 속상해만 하고 있었다. 분명히 내 얼굴 표정을 봤을 것인데도 그 옆 자리에 그 누구도 시어머니의 잘못된 말 표현에 반기를 들어준 사람이 없었다. 형식이지만 '고맙다. 수고했다.'의 표현이 먼저지 않겠는가. 남편이 없는 그 자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는 두 다른 아들들(아주버님, 도련님: 이럴 땐 '님'도 붙이기 싫다.)이 버젓이 있었음에도, 그 소리가 무척이나 크게 들렸음에도.     


  결혼 10여 년이 넘어선 나를 보며 미소를 짓는 아주버님의 행동은 더더욱 보기 싫다. 내가 자신의 아내보다 시댁 관련 행사에 잘 참여하고 잘 하고 있다는 이유에서이다. 나는 남편에게 자주 말을 한다. ‘나한테 그런 눈빛 보내지 말고 형님에게나 잘 하시라고 전해드려라.’라고. 아주버님은 워낙 존재감이 없이 조용한 형님(자신의 아내) 때문에 제수씨의 모습이 '고맙게' 들어오고 있는 거라 남편에게 말을 했단다.


  형제들 간에 화목해야 한다는 아주버님은 남편에겐 거하게 술에 취해 전화를 거는 일이 종종 있다. 결혼을 안한 막네 도련님과 지내는 시어머니. 장남인 아주버님은 자신의 어머님(시어머니)을 모시지 못한 것을 ‘죄’라 칭하며, 늘 술병에 의지를 하며 말을 빌린다. 그 애틋한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나 그 모심의 주역은 자신의 아내 즉, 내게는 형님이 된 분의 몫으로 치부하고 있는 것이었다. 장남이라는 위치가 주는 부담감에 늘 자존감 없는 문장들을 뱉어놓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그 대신 큰 사람으로서 무게를 잡고 형제자매가 같이 해나갈 수 있는 일들을 모색하고 집안의 문제점을 누구 하나에 맡기지 말고 의논하며 해결해가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회비 통장을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때문에 각자의 가정에서 의견이 통합되고 대화가 이어지는 게 먼저라는 말이다. 아내에게 더 잘하고, 아내가 남편에게 어떤 불만을 가지고 있는지, 시댁과의 관계에서 이미 어떤 상처를 입고 있었는지 그런 일련의 사정은 알려하지 않은 체 무조건 참석해야 하고 잘해야 한다는 것에 초점을 맞춘 방식의 아들들의 사고가 밉상이다. ‘제사상의 음식은 집에서 정성껏 해야지. 사는 게 어딨어!’라는 말을 하는 구시대적인 아주버님의 발상도 얄밉다. 그런 것들을 배워가지 않으면 했는데 남편도 그런 아주버님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했다.


  최근 자궁 쪽 수술을 하고 자궁경부암 조직검사를 앞둔 날이었다. 명절이 가까워진 것이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출장으로 집을 비운 남편은  전날도 쉴 수 없다고 했다. 명절 전날 일을 쉬면 큰집에 음식을 함께 만들러 갔다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명절 당일은 산소를 찾고 그곳에서 일가 친척들을 만나는 순이다. 매번 친정을 갈 수 있는 일정이 되지 않아 명절 전후로 다녀오지만 이번에는 이도 저도 갈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남편과는 이번 은 시댁에 가지 않고 쉬는 것으로 미리 합의를 했다. 어차피 명절이나 제사를 앞두고 일 년에 두세 번 연락하는 형님과는 전날 문자를 보낼 참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바쁘다는 남편이 급하게 나에게 전화를 하는 것이었다. “자기야 형수가 어제저녁부터 몸이 아파 아무것도 못한대. 조카 OO가 울면서 전화가 왔어”라고 한다. 순간 머리가 빙 돌았다. 살갗에 화가 돋기 시작했다. “그런데 왜 그 전화를 나한테 하는 거야? 지금 나한테 시댁 가서 음식 준비를 하라는 얘기야. 내가 얘기했잖아. 그리고 자기 내 몸 상태 몰라. 지금 내가 거기 가서 앉아서 서서 사람들 비위 맞추고 음식 준비를 해야 할 몸이 아니라는 거 몰라.”라고 했지만 그다음 말은 도통 연결을 못한다. 다 큰 조카가 전한 말을 듣고 머뭇거리는 남편을 만났다. 미치도록 정신이 나가버릴 것만 같은 순간이었다. 지금 꿈속에서 나를 서운하게 만들고 있는 거겠지. 꿈이겠지. 나를 지켜주지 못하고 있는 남편이 내 남편인가 싶었다. 심지어 내가 내 몸 상태에 대해 누구에게도 말을 하지 말라 했다고 나의 사정을 언급하지 않았다고 했다. “자기가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아무렇게 흘리는 말이 아니라 말해야 할 상황을 파악 못하는 어린아이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었던 者. 이런 행동과 말은 ‘남자이기에 몰라. 그럴 수 있어.’라는 말로 포장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울고불고 전화했다는 조카에게 내가 문자를 보냈다. 나의 자궁의 상태를. 결코 가볍지 않고 편하지 않은 마음의 상태를 말이다. 결국 내 손으로 내 입으로 불편한 마음을 쏟아내야 했다. 좋은 일이 아니기에 혼자 겪어야 하는 아픔으로 치부하리라 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짖어야 아는구나. 말을 해야 해결되는 구나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 명절이었다. 그리고 마음이 싫어하면 잠시 멈추는 것도 좋은 치유 방법이라 생각하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괴물이 많구나 명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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