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을 위해 무언가는 아프기 시작할 것 같다. 목하 들풀축제 준비중인 새별오름, 2019.2.9.
나는 아들과 여행한다2-1 제주도 새별오름(2019.2.9)
바람눈과 눈바람이 전부였다
하얀 눈을 보았다. 올겨울 서울 근교에서도 자주 볼 수 없었던 하얀 겨울을 남도의 먼 섬나라 제주도에서 반갑게 만났다. 어디 그뿐이었겠는가 하얀 설원 뒤에는 섣부른 봄바람이 그 배경의 전부를 차지해버리고 있었다.
설 명절을 핑계 삼아 뒤늦게 친정으로 향했다. 바쁘게 오가는 인파를 물리고 한가로이 아들과 다시 한번 제주도를 찾기 위함이었다. 물론 부모에게 얼굴을 보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목하 남쪽 섬에 봄바람이 이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 해야 할 것이다. 꽃잎 같이 부픈 설렘. 그 기분을 누구보다 먼저 맛보고 싶었던 시인의 마음이 발동을 걸었으니 말이다.
그런데 제주도는 우악스러운 북풍을 걷어내고 있지 못했다. 봄바람이 오다가 지쳐 쓰러진 게 틀림없었다. 너무나도 사랑해 마지않는 제주도 서쪽 새별오름은 눈바람, 바람눈 때문에 오르기를 포기했어야만 했었으니까. 바람이 결국 원인이었다. 아들과 나를 쓰러트렸을 것 같았던 서슬 푸르렀던 그 바람이 다시 느껴진다.
사진에는 평온해 보이는 새밭의 겨울 억새 모습, 글씨가 넉넉하게 새겨지고 있는 중이었다.
오르지 못하고 돌아왔던 새별오름 주차장을 다시 찾아가게 된 사건이 발생했다. 꽁꽁 얼어붙은 화장실 앞 얼음 위에서 미끄러진 아들. 그 순간 비척거리며 떨어트린 핸드폰을 자각하지 못하고 뒤늦게 ‘아차’해야만 했었다. 3킬로 정도 질주를 한 도로 위에서 생각이 났길 이 얼마나다행이었던지. 만약 공항 근처 호텔로 돌아갔더라면 더욱 복잡하게 시간과 장소가 얽히고설키지 않았을까 싶다.
적은 금액으로나마사례를 하고 싶었던 나의 마음을 애써 사양했던 젊은 두 여성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인사를 하고 싶다. 이름도 성도 모르지만 아직 우리나라는 참 마음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해주었다고나 할까.
새별오름 주차장에서 바라본 싸라기 바람눈은 겨울을 끝낼 새밭의 마지막 외침이 아니고야 그 무엇이었을까?(새별오름은 2019년 3월 9일 들불축제로 억새가 불길 속으로 들어가는 날을 받아놓고 있다.) 지푸라기 뭉치들은 오름이 훤하게 보이는 앞 중턱에 자리 잡고 있었다. 3월에 맞이할 들불축제 글자들을 만들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듯했다.
새별오름 능선의 바람이 두 모자의 몸을 가만 두지 않을 것 같았다. 힘센 바람을 맞아보고 싶다고 한 아들을 멈춰 세웠다. 오를 만큼의 시간은 차 안에서 보내는 것으로 아들과 합의를 할 수 있었다. 아들과 나는 3월 초가 되면 들불축제의 현장을 보고 싶다고 말을 자주 언급했었다. 올해도 우리는 그 발길이 어려워지고 있음을 직감했다. 반려견 산동이가 3월 출산을 앞두고 있기에 우리는 이 아이와 아이들의 건강을 들불축제와 바꾸지 않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