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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헤비 Jul 16. 2024

꽃 피듯

열한 번째 편지. 내 사람에게


엄마의 화단에 꽃이 피었다.


쪽볕이라도 어떻게든 먹이려고

애를 써서 피워낸 붉은 꽃이

비를 머금어 한껏 영롱해졌다.


그러고보면

난 많은 순간 많은 이에게

그리고 또 그대에게

또 나 자신에게

때 되면 꽃이 피듯이

우리도 피는 날이 올 거라

그렇게 위로를 건네고는 했다.


쉽고 상투적인 위로가 좋은 건

말하는 이나 듣는 이나

반쯤은 믿고 반쯤은 흘리기 때문인데

며칠 피고 떨어지고

피고 떨어지는 꽃을 보며

우리는 영영 꽃일 수 없을 거라 슬퍼졌고

꽃일 수 없어 다행이었다.


우리는 향기롭지 않은 대신에

끝없이 땀내 비린내 풍겨가며

하루하루를 채워갈테고

우리는 영롱하지 못한 대신에

이렇게 비루한 삶을

영영 버리지 않을 것이다.


아름다운 일은 꽃이 하라고 하고

우리는 꽃 기다리다

꽃 보고 잠깐 위로를 받으며

또 이렇게 하루하루를 때우며 살자.


찬 물 만 밥에 김치 한 쪽으로

저녁을 때우고도

잘 먹었습니다라는 말과

힘찬 미소로 마침표를 찍으며.


엄마의 화단에 꽃이 피었다.


2024. 07.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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