림프 전이는 없었지만, 림프절 조직검사를 위해 세포를 채취하면서부터 내 몸은 마치 공기를 품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헐렁하던 잠옷은 터질 듯 조여왔고, 양말 자국은 살을 움푹 팬 채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거울에 비친 코끼리 다리 같은 내 팔다리를 보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내 인생이 그 부은 팔, 다리만 남긴 채 멈춰버릴 것만 같았다.
그때 내 바로 아래 동생이 찾아왔다.
아로마테라피스트인 동생은 조심스레 내 팔과 다리를 살피더니, 애써 담담한 얼굴로 "많이 부었구나" 하고 말했다. 속상함이 숨겨지지 않았다. 순환이 필요하다고, 오일 마사지를 시작했다. 마디마디가 찢어질 듯 아팠지만, 조금이라도 붓기를 덜 수 있다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동생과 소곤소곤 이야기를 나누며 참아냈다. 동생의 손길에는 위로가, 대화 속에는 따뜻한 연대가 녹아 있었다.
우리 집의 늦가을은 언제나 김장으로 마무리된다.
한국으로 돌아온 뒤부터 우리는 '가을 김장'이라는 가족 레거시를 만들었다.
그런데 올해는 나의 암 투병으로 김장을 하지 못할 것 같았다. 시어머니와 막냇동생은 “절대 하지 마라”라고 신신당부했지만, 나는 이 레거시가 내 병으로 멈춰지는 게 싫었다.
수술 2주 후, 생협 절임배추가 도착하는 날로 김장을 잡았다.
남편과 아이들, 1호기, 2호기, 3호기까지는 마당에 떨어진 나뭇잎을 부지런히 치웠다. 나는 방 창가에 앉아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내년엔 나도 저 자리에 함께하길 기도하며. 그때 3호기가 부르기에 마당을 내려다보니, 그들이 내게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거기 있었다.
나뭇잎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하트. 가족은 그런 것 같다. 아무 말 없이도 작은 행동에 마음을 담는 존재
김장하는 날 마당 청소하는 가족 & 나뭇잎으로 만든 하트 @mirmamang
전날 배달 온 절임배추는 남편이 정성껏 헹궈 물을 빼두었고, 나는 앉은자리에서 김장 속 양념을 준비했다. 깨끗이 씻고, 정갈히 다듬으며 속재료를 하나하나 만들었다. 남편은 내가 최대한 움직이지 않게 하려 애썼고, 나는 간만 보고 나머지는 그의 손에 맡겼다. ‘괜히 레거시를 지키겠다고 남편을 고생시키는 건 아닐까’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이미 시작한 일. 함께였기에 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먹을 김치는 덜 매운 고춧가루를 넣었다. 김장 3년 차 아이들은 작년보다 훨씬 능숙하게 양념을 버무렸다. 웃음 섞인 소리들 속에서 내 마음은 다시금 차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