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와와 소리치며 장군선의 깃발을 보며 앞으로 돌진한다.
우리, 이 배를 탄 군사들이여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자! 왜군과 싸우자!
나는 파도에 배가 솟구치고 치솟을 때마다 더 크게 함성을 질렀다.
‘OO 고속해운입니다. 1월 27일 기상악화로 인하여 전편 결항하였습니다. 1월 26일 15시 히타카쓰 출발 부산행은 1월 26일 12시 30분 히타카쓰 출발 부산행으로 변경되었습니다.’
큰일이다! 2020년 1월 24일 대마도에 들어와 1월 27일 부산항으로 돌아가는 배를 예약해놓았는데 기상악화로 결항하여 하루 일찍 부산으로 돌아가라 한다.
다음 날, 조금은 억울한 느낌으로 새벽 버스를 타고 히타카쓰항에 가서 예정에 없던 배를 기다리느라 몇 시간을 멀뚱멀뚱 앉아있다가 내키지 않는 걸음으로 승선했다. 무언가에 떠밀려 강제로 끌려가는 찝찝한 이 기분으로 대한해협을 향했다.
잔잔해 보이던 바다가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배가 파도 위를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정도가 심상치 않자 승객들은 조금씩 공포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옆으로 흔들렸다.
한 번 앞으로 갔다가 옆으로 엎어질 듯 둥글게 파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 와중에 비까지 쏟아졌다. 배의 유리창을 깨고 저 너머로 커다란 괴물이 우리를 잡아먹을 듯 독을 품고 광포 속에서 사지를 뒤틀며 아가리를 벌렸다.
파도는 지칠 줄도, 그칠 줄도 모르고 끝없이 사나웠다.
불안한 분위기가 고조될라치면 안내방송이 나왔다.
기상악화로 운행 시간이 길어지고 있으니 각자 안전을 기해 달라한다.
노약자와 어린이는 특별히 조심하라 한다.
거대한 자연 앞이라면 우리는 모두 어차피 약자인데 누가 더 특별히 조심할 수도 없는 위급상황인데 말이다.
흔들리는 뱃속에서 나는 뱃멀미를 시작하며 조선시대 이순신 장군의 수군(水軍)들을 생각했다. 맨손으로 노를 저어 바다 위에서 전쟁을 치렀던 우리 수군들의 굳건한 표정들을 떠올렸다. 자기 군사를 사랑해 마지않았던 이순신 장군이 대장선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을 말이다.
이 파도와 비바람에 뱃멀미로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온몸이 축 늘어지는 나를 비롯한 승객들이 이순신의 수군들이었다면 과연 어떠했을까?
유리 뚜껑조차 없는 배를 타고 온몸으로 울돌목의 파도 위에 섰던 그들은 나약하기 그지없는 인간의 신체적 한계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이 바다 밑으로 꺼꾸러져 물고기 밥이 될 수밖에 없는 죽음을 예감할 때 이순신의 수군들은 어떻게 그 공포를 견뎌냈을까, 그리하여, 그 울고 돌아간다는 사나운 물목에서 어떻게 명량의 기적을 만들어 냈을까.
나는 상상 속으로 더 깊이 빨려 들어가 울돌목의 대장선을 따라 왜군을 향해 돌진하는 어느 한 작은 배에 탄 수군이 되었다.
와와 소리치며 장군선의 깃발을 보며 앞으로 돌진한다.
우리, 이 배를 탄 군사들이여 몸과 마음을 하나로 모으자! 왜군과 싸우자!
나는 파도에 배가 솟구치고 치솟을 때마다 더 크게 함성을 질렀다.
목이 터져라 소리 질렀다.
온몸에 힘주고 바다를 노려보고 돌진했다.
싸우자! 싸우자!
와, 와! 울돌목이다.
장군선의 신호다!
일자진이다!
133척이나 되는 저 왜군의 배를 우리 12척의 배가 울돌목에 가두어 버리자!
와와!!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장군의 군사다,
이 민족을 위해서,
조선의 평화를 위해서,
와와!!
우리 12척의 배로 133척을 무찌를 수 있다,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
죽기 위해 싸우자,
싸우다가 죽자!
장군과 함께 이 나라를 위해서라면, 와와!!
“여기는 부산항입니다. 부산항입니다.”
어느새 부산항에 도착하고 모두 늘어진 몸을 이끌고 부두에 발을 디뎠다. 땅에 발을 디디자마자 아들아이에게 전화를 걸었다. 명절 내내 잠만 자겠다던 아들아이는 정말로 계속 잠만 잔 듯 졸음에 겨운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다.
“아들아, 엄마 살아 돌아왔어!”
“엄마 무슨 일 있었어요?”
“결투가 있었어. 그리고 엄마가 이겼어!”
맞다, 내가 이겼다. 아직 남아 있는 삶의 힘이 대한해협의 파도와 싸워 잘 이겨냈다. 조선시대로 돌아가 왜군과 싸웠던 당당한 수군으로써의 상상 속 나 자신이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그나저나, 혹시 오늘 어느 신문에 대한해협에서 어떤 결투가 있었다는 기사가 올라갔으려나?
배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옆으로 흔들렸다.
한 번 앞으로 갔다가 옆으로 엎어질 듯
둥글게 파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했다.
그 와중에 비까지 쏟아졌다.
배의 유리창을 깨고 저 너머로 커다란 괴물이
우리를 잡아먹을 듯 독을 품고 광포 속에서 사지를 뒤틀며 아가리를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