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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거진 미러 Nov 17. 2021

Vol.12 <빛바랜 것들의 시대>

[기록보관소]

사서 심지윤입니다.


길 가다가 발견한 고양이를 보며 미소 짓고, 새로 산 머그컵 하나에 하루의 기분이 맑음으로 표현될 때가 있습니다. 그냥 생각 없이 걸었던 몇 분 동안의 시간이 스트레스를 날려주기도 하죠. 막막한 길을 헤쳐나가는 우리네 삶에 이런 사소한 행복들이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힐링이 필요한 청춘들의 라이프 판타지와 그것이 구현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12호의 기사 ‘빛바랜 것들의 시대’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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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피드를 내리다보면 빈티지 천국과 마주하게 된다. LP가 돌아가고 있는 카페, 창가에 놓인 오르골, 루즈핏 팬츠에 빛바랜 자켓을 걸친 사람들. 이 모든 것들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왜 우리는 빈티지를 사랑할까.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에서 역설적으로 복고를 원하는 트렌드를 에디터의 시각으로 분석한다.

작년부터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는 뜻의 ‘소확행’이라는 단어가 유행하고 있다. 이런 신조어가 생겨난 것은 사람들이 작은 행복의 가치를 높이 사고 있다는 뜻이다. 예능 프로그램의 흥행공식은 ‘힐링’이다. <윤식당>, <효리네 민박>처럼 일상적인 요리와 식사를 즐기거나, 별다른 오락적 요소 없이 전원생활을 하는 예능들이 인기를 끌었다. 서점에서도 <보노보노처럼 살다니 다행이야>와 같은 힐링 서적들이 쏟아져 나왔다. 새로운 여행 방식인 ‘한 달 살기’는 유명관광지와 맛집을 돌아다니기보다는 타지의 한 숙소에서 한 달간 지내는 것으로, 사색과 휴식을 사랑하는 여행자들 사이에서 각광을 받고 있다. 집순이들은 번잡한 바깥으로 나가기보다는 방에서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기 위해 셀프 인테리어를 시작했다. 그 결과 영상을 통해 자신이 꾸민 방을 공개하는 랜선 집들이, ‘room tour’까지 등장했다. 이만하면 충분히 느껴지지 않는가? 요즘 청춘들은 쉬엄쉬엄 살고싶어 한다. 느리게, 소박하게, 당장의 작은 행복들을 놓치지 않는 여유를 가지면서 살고자 하는 것이 이 시대 청춘들의 라이프 판타지이다.


사실, 약 10년 전만 해도 상황은 정반대였다. <Sex and the city>,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에 나올 법한 워커홀릭의 화려하고 야망에 찬 삶이 하나의 판타지였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경기 침체, 경쟁 과열 및 취업난으로 인해 청년층의 피로가 누적되면서 ‘힐링’이 하나의 중요한 키워드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2011년, <힐링캠프>가 인기리에 방영되던 무렵 사람들은 바쁘고 치열한 일속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원했다. 하지만 2019년의 사회는 그 이상을 원한다. 휴식이 주가 되는삶, 과욕하지 않고 자신의 안식과 소박한 행복을 추구하는 삶을 하나의 라이프 판타지로 형성한것이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이러한 라이프 판타지가 단순히 추상적인 인생관에 그치지 않고 미적으로 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 인테리어, 콘텐츠, 패션, 팬시 등의 분야에서 광범위하게 통용되는 빈티지 디자인 트렌드, ‘뉴트로(New+Retro)’가 바로 그것이다. 본디 미술은 인간 내면을 가시화한 것이고, 시대와 사회상을 반영한다. 빈티지 특유의 아늑하고 개성 있는 느낌이 소박하지만 소신 있는 라이프 판타지와 절묘하게 맞닿아있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의 내면과 닮은 것을 가까이하려는 경향이 있어, 뉴트로는 그들 삶 깊숙이 스며들었다. 블로그, 혹은 유튜브로 한 번쯤 보곤 한다. 퇴사 후 앤티크하게 꾸민 카페를 운영하는 젊은 사장님이나, 낡은 스니커즈에 필름 카메라를 들고 배낭여행을 떠난 어느 대학생의 삶. 이들의 인생관은 빈티지와 잘 어우러져 멋진 삶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즉, 소박한 라이프 판타지와 뉴트로는 단순히 사회상과 디자인 트렌드로 분리된 것이 아닌 공존하는 것들이다.

물론 이 유행을 전혀 따르지 않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야망을 품고 더 큰 사회적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사람들도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당연히 정답은 없다. 라이프 판타지에도 트렌드가 있을 뿐이다. 2030년을 사는 사람들은 또 다른 모습의 삶을 꿈꾸게 될 것이다. 에디터는 결혼과 출산, 1인 1직업의 고정관념이 붕괴되는 모습에서 읽어낼 수 있는 ‘자유로움과 다양성의 추구’가 디자인으로 구현될 것이라 예상한다. 어찌 되었든, 현재 대다수의 청춘은 안식이 있는 삶을 꿈꾸며, 빛바랜 것들을 사랑한다. 이에 속하든, 속하지 않든 격변하는 사회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의 모습을 고민하고, 소신 있게 결정하는 것만이 해답일 것이다. 모든 청춘이 자신만의 삶을 살기를 응원한다.


Vol.12 <빛바랜 것들의 시대> 中

Editor 이하은

Photographer 조여은, 이인희, 박세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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