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속 주인공의 이름을 기억하시나요?

by 미료



르 클레지오의 소설 <황금 물고기>의 주인공 ‘라일라’의 일생은 매우 기구하다. ‘예닐곱 살 무렵에 나는 유괴당했다’는 첫 문장만 읽어보아도 그의 삶이 결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을 거라는 걸 짐작할 수 있다. 포식자와 어부의 그물을 겨우 피해서 목숨을 부지하며 살아가는 작은 물고기처럼 '라일라'는 오랜 세월의 유수와 풍랑 속에서 표류한다.


어린 시절 유괴 당한 '라일라'는 자신을 산 '랄라 아스마’의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는 동시에 일종의 수양딸처럼 길러진다. '랄라 아스마'가 지병으로 죽자윤락업소를 운영하는 ‘자밀라’의 여인숙에 머무르면서 도둑질로 생계를 꾸려 나간다. 총명한 ‘라일라’를 제대로 교육시키고 싶어 하는 ‘자밀라’는 그를 기숙학교에 보내지만 규칙과 단체 생활을 답답해 하던 라일라는 문제만 일으키다 결국 뛰쳐 나온다. 그 사이 자밀라의 여인숙은 경찰의 단속으로 폐쇄되고 라일라는 가난한 천막촌에서 지내게 된다. 그곳에서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후리야'라는 여성과 함께 프랑스로 불법 이민을 가게 된다. 프랑스 곳곳을 전전하다 미국까지 가 닿게 되고, 다시금 프랑스로 돌아와 자신의 ‘고향’이라고 부를 만한 땅에 발 디디기까지, 그 다사다난한 여정은 단 몇 줄로 요약하기 어려울 만큼의 대서사시다. 다행히 그의 표류기는 험난하지 만은 않아 독서가 힘들진 않았다. 가는 곳마다 나름의 낭만과 자유가 있었다. 파도를 거스르듯, 주어진 운명에 순응하지 않고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라일라의 여정에서 큰 영감을 얻기도 했다. 인생이 얼마나 힘들던 불평하기보다 최선을 다해 하루하루를 사는 사람에게는 구원의 손길이 내리는 법이었다.








이렇게 힘들이지 않고 책 한 권의 내용을 요약할 수 있는 것은 노트 두 페이지에 걸쳐, 알차게 줄거리를 정리해두었기 때문이다. <황금 물고기>처럼 등장인물의 이동수가 많을 때는 ‘장소’를 중심으로 스토리 라인을 정리한다. 왼쪽에 사건이 일어난 장소와 관련된 인물의 이름을 적고, 오른쪽에는 굵직한 사건과 키워드 위주로 적는다. 좋았던 문장을 몇 개 골라 작게 써넣기도 한다.






영화로 비유하자면 좋아하는 장면을 캡처해 저장해두는 행위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기본적인 정리는 검은색 볼펜을 이용하고 필사나 개인적인 코멘트는 회색 볼펜으로 썼다. 작년에 한국에 방문했다가 지인에게 선물 받은 SARASA 0.5mm 제품이다.


그전까지는 회색 볼펜이 왜 존재하는지 궁금했는데 써 보니까 ‘잉크 연필’ 같은 느낌이 들었다. 쨍하지 않으면서도 쨍한 매력, 너무 튀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흐릿하지도 않은 매력이 있어서 애용하고 있다. 주관적인 의견이나 생각은 보통 이 회색 펜을 이용하는데, 그것이 어쩐지 나의 ‘회색분자’ 스러운 면을 증명하는 듯도 하다. (내 유튜브를 좋아해 주시는 분들은 나처럼 회색 펜을 하나씩 가지고 있다. 어느새 회색 펜 전도사가 되었다.)







줄거리를 요약할 때는 내용 정리가 우선이지만, 주 목적은 등장인물의 이름을 기억하기 위해서다. 소설을 읽거나 영화를 보고 나면 항상 주인공이 이름을 잊어버리는 게 가장 아쉬웠다. <그리스인 조르바>나 <보바르 부인><안나 카레니나>, <윤희에게>나 <캐롤>처럼 제목에 주인공 이름이 들어가 있지 않고는 기억하기 힘든 부분이다. 그 점을 생각하며 노트에 등장인물의 이름을 적어두면 한 번씩 보면서 상기할 수 있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은 형태도 목소리도 없는 가상의 인물이지만,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읽을 때 실제 사람을 만난 것 같은 기분을 느낀다. 어떤 때는 현실의 인간보다 더 친숙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름을 기억하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자밀라’ ‘다가디르다 후리야’ ‘노노’ ‘하킴’ ‘시몬’ ‘새라’ ‘나다’ '엘 하즈'. 모두 노트에 적혀 있는 <황금 물고기> 등장인물의 이름들이고 그들은 ‘라일라’를 지켜준 사람들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주인공이 언급한 음악이나 책 타이틀은 반드시 적어놓는 편이다. <황금 물고기>에서 자주 등장하는 작가는 ‘프란츠 파농’이다. 언젠가 그의 작품을 읽어보겠다는 야심으로 적어두었는데 아직 한 편도 읽지 못했다. 투르네게프의 <첫사랑>은 라일라가 어릴 때 가장 좋아하던 소설이었다. 이것도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천막촌의 ‘Realistic’이라는 이름의 낡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곡의 뮤지션 - 지미 헨드릭스, 니나 시몬, 폴 매카트니, 사이먼 앤 가펑클- 이름도 적어두었다. 니체, 흄, 로크, 라보에티 같은 철학자들의 이름도 노트에 썼다. 이 철학자들의 어려운 글을 읽을 것 같진 않지만 그래도 내가 좋아하는 소설 속 주인공과 관련된 모든 걸 기록해두고 싶은 마음이다.


다양한 방식으로 독서노트를 쓰면서 줄 노트보다는 무지 노트를 선호하게 됐다. 특히 가로로 놓고 쓸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별 거 아니지만 틀을 깨는 그 작은 행위가 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독서노트라고 해서 꼭 책 내용만 적는 건 아니다. <황금 물고기>를 읽고 나면 자연히 난민 이슈가 머릿속에 떠오르게 된다. 줄거리를 요약한 페이지 옆에는 아프리카 난민과 관련된 뉴스 기사 제목을 썼다. 2020년 1월 9일 자 기사에는 ‘비행기 화물칸에 숨어 프랑스 가려던 어린이가 동사체로 발견’ 되었다는 뉴스가 실렸고, 2019년 12월 5일 자 기사는 서아프리카의 대서양에서 난민을 실은 배가 전복해 58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연료가 떨어진 상황에서 풍랑을 만나 배가 뒤집힌 것으로 추측된다고 했다. 2020년 1월 1일 자 기사에서는 EU의 리비아 난민 지원금이 오히려 난민을 착취하는 데 쓰인다고 보도했다.



모두 믿기 힘든 이야기였다. ‘라일라’는 살아남았지만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난민이 비참하게 삶을 마감했다. 소설은 언제나 희망을 담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절망이 더 우세한 것 같았다. 그 절망조차도 지식과 정보의 한 부분으로 노트에 담은 것 같아 숙연해졌다. 기사 제목을 왜 썼느냐, 누가 물으면 이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서,라고 답했을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의 이름은 기억할 수 있지만, 기사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름이 없다. 아무래도 그게 내가 신문보다 소설을 더 많이 읽는 이유인 것 같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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