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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yu Jul 02. 2024

그때 내가 다르게 선택했다면...


간호부장이 소개해 준 간병인이 왔다.

간병인은 우락부락하게 생긴 남자였다. 급히 오느라 씻지도 못한 건지, 원래 그런 건지, 노숙인 같은 행색이었다.

길에서 만났다면, 피해 갔을 부류였겠지만, 그보다 더한 누가 오든 아버지를 간병해 줄 사람이면 상관없을 것 같았다. 저 덩치가 되어야 아버지를 케어할 수 있을 것 같기도 해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병실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간병인에게 아버지 잘 부탁한다고 하고 급히 병실을 나가려는데, 간병인이 나를 불러 세웠다. 뭔 일인가 했더니 간병비 때문이었다.

"원래 시... 십, 이만 원 받아야 하는데, 만 원 빼서, 시... 십, 일만 원."

24시간 간병비에서 만 원을 빼 준다는데 고맙다는 말조차 나오지 않았다.

말끝이 짧았고, 욕하는 것처럼 들리는 느린 말투에서 질 나쁜 기운이 묻어났다.

이런 사람에게 아버지를 맡겨도 될까. 가뜩이나 경계심이 서 있던 터라, 불안함만 더해졌다.

간병인은 내가 간병비를 더 깎으려는 걸로 오해했는지, 아버지 같은 케이스의 할아버지를 몇 분 모셔 봤다며, 그 경험을 말보다 퍼포먼스로 보여주었다.

아버지에게 누구도 감히 할 수 없었던, 과감한 스킨십을 시도했다. 아버지의 어깨를 부등켜안고, 볼을 비비대고 거기에 입술을 댔다. 어르신, 다정히 부르며 귀에 뭐라 속살거렸다. 정신없는 노인과 교감하려는 것 같았다. 그는 자신의 노하우, 필살기란 걸 스킨십으로 시전 했다.

당신의 몸에 손만 대도 으르렁거렸던 아버지는 어쩐 일인지 가만히 계셨다. 지난밤, 추억 여행을 하시느라 제대로 주무시지 못해 노곤하신 듯, 피로한 기색만 비쳤다.

사람이 궁지에 몰리면 이성적 판단이 흐려진다고, 그게 긍정적 효과로 보였다.  

나는 편견을 벗고 간병인의 다른 좋은 면모를 보기로 했다.

간병인은 아버지 팔목에 생긴 벌건 자국을 안타까워했고, 안아주고 위로해 준 유일한 사람이니까.

일주일 동안 아버지를 간병해 보니, 그 직종에 계신 분이 얼마나 대단한지 새삼 깨달았다. 나한테는 큰 부담이 되는 간병비지만, 원래 금액대로 주겠다고 말했다.

얼마간은 병원에 하루 종일 묶여 있지 않아서 너무 좋았다. 나는 안정적으로 내 일에 몰두할 수 있었다.

내가 병실에 매일 가지 않아도 간병인이 아버지의 그날 상태와 필요한 물품을 전화로 알려 주면, 잠깐씩 병원에 들르면 되었다.


얼마 되지 않아서 나는 무언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아버지는 이전보다 조용해지긴 했지만, 어쩐지 그게 더 불안했다.

그 보다 위생상태가 점점 엉망이 되어갔다. 간병인은 자신의 꾀죄죄한 행색처럼 아버지도 비슷하게 만들어놓았다. 그가 오고 일 주가 지나가도록, 아버지의 머리를 감기거나 샤워도 시켜주지 않은 건, 그렇다 치더라도 얼굴에 물기 하나 댄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환자복 하의는 벗겨 놓았고, 기저귀도 엉성하게 채워져 있었다. 침대 시트에는 얼룩이 눌어붙었다. 매트만 대충 닦고 사용한 듯 보였다.

간병인은 어르신이 스트레스받으니까, 씻길 수 없었다고 변명했다. 아버지 심기, 컨디션에 최대한 맞추어서 케어했다는 거다.

아버지를 자연인으로 만들어 놓고 있는데도,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간병인은 어떤 부분에선 기발한 면이 있지만 대체로 상식이하였다.

나는 위생에 좀 더 경 써달라고 입이 닳도록 말하지 못했다. 저 간병인마저 그만둔다고 하면  다 내 몫의 일이 될 테니까.

간병해 본 경험이 더 무섭다고.

간병인을 다시 구하는 건 쉽지 않으니까, 좋게 생각하자고 애써 마음을 다잡았다.

 

그 일이 있은 뒤, 신경과 주치의가 회진 와서 간병인에게 야단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

"내가 여러 번 주의를 주지 않았냐, 병실 어둡게, 문 잠그지 말고 환기 좀 시키라고."  

의사가 잔소리하다가 아버지의 벗겨진 하의를 보더니 한숨 쉬며 '체면 좀 지켜 줍시다.' 했다. 

나와 엄마는 심약한 사람답게 간병인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의사는 우리가 하고 싶었던 말을 다 해 주었다.  

의사가 간병인에게 주의를 준 게 한두 번이 아니란 거였다.

하지만, 나는 그런 의사의 태도도 좋게 보이지 않았다.

방관적, 낙관적인 치료만 추구하는 것도 그렇고,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려고 (수년간 약만 처방해 주고 한 번도 환자면담을 하지 않았던 것) 아버지의 급작스런 발병이 환자 가족 탓으로 돌렸다. 그 말이 상처가 되어 여전히 불편했다.

1인실 환자 유치가 그의 성과에 반영되나 싶게 간병인을 야단치는 것도 과한 행동 같아 보였다.


신뢰를 주지 못하는 의사보다 위생적이지 못한 간병인이 내겐 필요한 인력이었다.

하지만, 환자 보호자가 병실을 떠나면, 간병인이 자리를 오래 비우는 걸 목격하게 되었다. 그에게 불가피한 사정이 생겼다 해도, 그래선 안 되는 거였다.

불현듯, 주치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병실 어둡게, 문 잠그고... 생각이 다시 꼬리를 물었다. 아버지의 벗겨진 하의....

간병인이 그렇게 밑바닥은 아닐 것인데, 내 정신은 아득히 무너져 내렸다.

나는 바로 간병인을 내보냈다.   


다시  앞이 보이지 않고 깜깜한 터널을 마주하는 것 같았다.  

엄마는 아버지가 쓰러지고부터 모든 걸 내게 일임하고 멀찍이 물러나 앉았다.

가족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울분을 토해내고 돌아간 뒤, 아버지 상태를 실시간으로 알려 주기를 원했다.

그날은 참고 참았던 울분이 터지고 말았다.


내가 울자, 오빠도 울먹였다. 아버지가 그리된 게 자신의 탓이라며 침통해했다. 그해 전년도에 오빠는 갈비뼈 12개가 골절되는 교통사고를 당했다. 아버지 충격이 꽤 컸다. 하나뿐인 친손자의 선천적 장애도 가뜩이나 힘들어했는데, 외아들의 사고까지 겪으며, 신념처럼 극진히 모셨던 제사를 모조리 끊어냈다. 자손들 잘 돌봐 달라고 5대까지 모셨던 게 3대까지 재앙을 불러온 헛된 짓이었다며.

아버지는 중심축이 무너지자 삶의 의지조차 놓아버렸다.   


두 언니들은 나한테 무거운 짐 지워서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물질적, 감정적 소모는 그만하자며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아버지는 기저 질환이 없으니, 쉽게 돌아가시지 않는다, 요양 등급도 받게 하고, 장기전에 대비하자고 했다.

작은 언니는 요양병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후보군 7곳 정해 놓고는 그중 한 곳을 고르라고 했다. 내가 망설이자 요양병원 한 곳을 임의로 정해버렸다.

요양병원 상담 실장에게 내 핸드폰 번호를 알려 줬으니, 전화 오면 환자 이송 날짜만 정하면 된다고 했다.

결국 내 선택에 달린 일이 되어버렸다.


동생은 내가 무슨 결정을 하든 존중한다고 했다.

불교 집안을 개종하게 만든 동생답게 성경 한 구절씩 아버지에게 읽어 주었다.

동생은 국제전화로 의식 없는 아버지 귀에다  '혼과 영,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시는 불가능이 없는 하나님 능력'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이 아버지께 감사했던 걸 모두 말했다. 기독교인이 되었던 것, 20대에 외국에 나가서 산 것, 외국인과 결혼한 것, 모두 아버지가 반대하지 않으셔서 감사했다고.

알고 보면 방목이었던 거지만.

아버지 생전, 동생의 마지막 감사 인사가 되었다. 동생은 코로나 시국이라 한국 방문이 어려워졌다.


고민 끝에 요양병원에 입원을 결정하자, 병원 측에서 환자 송차량을 보내 주었다. 그 차량에 내가 탔다. 불안해하는 아버지 곁을 지키며 용서를 빌었다. 내가 울면 아버지는 더 불안해서 발버둥 쳤다. 차 안의 물품을 떨어뜨리고 망가뜨렸다.

내릴 때 보니까 아버지가 내 손목을 꽉 잡고 있었다. 직원들이 그 손을 떼어 내고서야 나를 놓아주었다.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하던, 그해 2021년 후반기부터 요양병원 면회가 비대면에서 전면 금지 되었다.


아버지의 튼튼한 몸이 뼈만 앙상하게 남기 지 반년도 걸리지 않았다.


주치의가 조금만 내게 신뢰와 확신을 주었다면. 간병인이 조금만 정상 범주의 사람이었다면.


아버지를 요양병원에 보내게 되었을까.


그때 그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는 지금도 살아계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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