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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Aug 17. 2020

찐반성vs노반성

절도에도 반성이 없는 녀석

정호는 경찰서를 거쳐 상담이 의뢰된 중학교 1학년 학생이었다. 정호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았던 계기는, 단짝 친구 순호와 가출을 하고, 상점에서 빵을 훔쳤기 때문이었다. 때마침 순찰을 돌던 경찰이 현장에서 이들이 빵을 훔치는 것을 발견하고 경찰서에 보내졌다. 학교 교사는 정호와 순호의 상담을 의뢰하면서 순호는 현재 많이 반성 중이었지만, 정호는 전혀 반성의 기미가 없어서 걱정이라고 이야기하셨다. 정호한테는 경찰도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는 것이었다.   
상담자의 눈을 장착하고 녀석들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교사의 말처럼 ‘찐’ 반성 순호와 ‘노’반성 정호는 달라도 많이 달랐다.      
상담자 : 너희들이 한 행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해?
순호 : (고개를 조아린다. 말투는 씩씩하다) 아.. 진짜 잘못했죠. 너무 배가 고팠어요. 배가 고픈데 상점 문이 열려 있길래 충동적으로 손이 갔어요.
정호 : (고개를 떨구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는다. )...................
상담자 : 앞으로 그런 상황이 되면 어떻게 해야 할 것 같아?
순호 : 이번에 느낀 건데, 진짜 그런 행동을 하면 안 될 것 같아요. 경찰서 가서도 무서웠고. 다시는 그런 행동을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정호 :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재차 상담자가 묻자)... 잘 모르겠어요. 하면 안 될 것 같은데 자신이 없어요.     


잘 짜인 고해성사를 하는 순호와의 상담은 하품이 났다. 순호와의 상담은 수월하지만 진솔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도 나도 안다. 어차피 이 상담은 적당히 반성하는 척하고 적당히 들어주는 척하는 것이다.      

침묵하는 정호와의 상담은 긴장스럽다. 정호와의 상담은 어렵지만 풀어 볼만한 문제이다. 침묵하는 그에게 물었다.      


“알아. 네가 진심으로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고 싶다는 것을.... 그런데 이상하지? 왜 경찰 아저씨들도.. 선생님들도.. 네가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는 것을 몰랐을까?”      


정호의 친어머니는 5살 때 가출을 했고, 아버지는 정호가 초등학교 4학년 되던 해 새어머니와 결혼을 했다. 새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인이었고, 아버지는 지방 출장이 잦은 일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는 새엄마에게 너무 죄송해요. 엄마는 저를 많이 신경 써 주시고 걱정하세요. 매일 저를 위해서 기도해요. 가출하고 싶지 않았지만, 친구가 가출하자고 말하면 거절을 못하겠어요. 제게 유일한 친구들이에요. 경찰서에 있는 내내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어요. 경찰관이랑 선생님이랑 잘못했어 안 했어 라고 말했을 때, 전 아무 생각이 안 났어요. 엄마랑 약속했는데 지키지 못한 제 자신이 너무 미웠어요.”     


반전이다. 찐반성자 순호의 반성은 척이었고, 노반성자 정호의 반성은 진짜다. 정호의 반성에는 ‘진짜’가 들어있다.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좋은 행동을 하고 싶다’는 의지. 그래서 자신에 대한 실망도 깊다. 차마 행동을 정당화할 수 없는 진짜 마음이 자신의 행동을 성찰한다. 겉치레 변명 대신 묵직한 침묵이 존재한다. 이제 진짜의 마음이 진짜 그의 삶에 곳곳에 뿌리내리도록 도와주면 될 일이다.     


‘전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해요. 더 좋은 사람이 되리라 교회 가서 다짐하지만 한 번도 제대로 지킨 적이 없어요. 위인전을 읽고 훌륭한 사람이 되는 꿈을 꾸어요. 그 사람들은 제게 어떻게 살면 좋다고 이야기해 주는 것 같아요. 하지만 저는 게을러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요.’         

‘정호야.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것,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은 것, 다시 말해 네가 멋지고 의미 있게 삶을 살고 싶은 것은 소중한 마음이야. 다만 그걸 현실에서 지키려면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해. 우린 너의 꿈이, 소망이 현실에서 습관이 되는 연습을 하기만 하면 돼!!’     


정호 같은 아이를, 순호 같은 아이를 청소년 현장에서만 만났던 것 같지는 않다. 청소년 내담자에서부터 동료들, 친구들, 이웃 주민들 등 주변 사람들 중에는 순호도 정호도 있다. 때로 내 속에도 순호가 있고 정호가 있다. 자신을 속이며 세상이 원하는 잣대를 맞추며 살아가라는 순호도 있고, 세상 속 자신과 자신의 행동을 돌아보며 나를 찾아가라는 정호도 있다. 


돌아본다. 그리고 묻는다.      


세상에 맞추며 살까? 나에게 진실하게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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