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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Apr 10. 2021

사랑도 경쟁이다?

아들러 심리학을 통한 통찰

미국에 있을 때 일이다.
미국에 간지 6개월이 되었을 무렵 근처 교회에서 진행하는 무료 영어 튜터링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 갔을 때 다섯여 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다. 그러나 겨울이 되어 한 두 명씩 빠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은 혼자 남아 미국인 할머니를 독대하는 영광(?)을 얻게 되었다. 처음에는 언어의 장벽과, 완벽한 문장을 구사해야 한다는 오만함 때문에 침묵의 시간이 자주 있었더랬다. 그리고 완벽함을 추구하기에는 내 영어의 수준이 그리 고결하지 못하다는 것, 튜터 선생님이 침묵보다는 서툰 말들을 인내하시고 싶어 한다는 것, 그리고 언어에는 바디 랭귀지도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촉촉이 젖어있는 시애틀의 밤 비릿한 비 냄새와 섞인 쓴 커피 향과 함께 인생에 대해 이야기하고 서로 고민을 털어놓기도 했다. 그렇게 겨울이 가고 봄이 왔다. 봄이 오면서 사람들도 한 두 명씩 다시 찾아오기 시작했다. 그들과 함께 새로운 화제와 다양한 경험들도 등장했다. 모임은 시애틀의 은혜로운 햇살처럼 밝고 더욱 생기 있어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때 내 마음은 어둡고 혼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잘 못이지? 다른 사람들은 행복한데.. 그리고 그 선생님도 저리 행복한데.. 왜 나는 행복하지 못한가?’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내게는 ‘사랑도 경쟁이었구나’.    



개인 심리학의 주창자 Alfred Adler는, 성장기 아동의 일차적인 사회적 환경인 가족 구도 내에서 아동이 차지하는 위치의 중요성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출생순위나 형제 서열이 아동의 심리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요인이 될 수 있음을 지적하였다. 사람들은 출생 후, 누구나 부모의 사랑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을 한다. 그러나 부모들이 베풀 수 있는 지적, 정서적, 물질적 보살핌은 한계가 있다. 따라서 형제들 간에는 이를 서로 확보하기 위해 형제끼리 치열한 경쟁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형제들은 출생순위에 따라서 부모에게서 받는 관심과 보살핌이 다르고 이에 대응하는 방법에 따라서 성격은 다르게 형성될 수 있다.    


나에게는 두 명의 언니와 한 명의 남동생이 있다. 그리고 부모님은 소규모의 장사로 언제나 바쁘셨다. 친척들은 내게 ‘니 남동생이 일찍 태어났더라면 너는 태어나지 않았을 거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어머니는 남동생을 우리 세 자매가 가보지 못한 유치원을 다니게 하셨고 그 당시 귀했던(?) 야크르트를 매일 사주셨고 언제나 따뜻한 밥을 먹이셨다. 아버지는 첫째 언니와 함께 때로 영화를 보러 가셨고 그녀와 많은 대화를 나누셨다. 연년생이자 초 중 고 내내 같은 학교를 다녀야 했던 둘째 언니는 월요일 학교 전체 조회 시간마다 선행상, 모범상, 우등상을 위해 운동장 단상 위에 올라가곤 했다. 어쩌면 나는 어릴 때 ‘개밥의 도톨이’ 같은 존재라고 느꼈던 것 같다. 그런 내게 가뭄의 단비 같던 부모님의 관심이 초등학교 4학년 학교 성적이 상승하면서 오기 시작했다. '내가 무언가를 잘해 냈을 때' 원하던 관심과 사랑이 찾아왔다. 사랑을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잘 해내야 하는 사람이 되어야 했다.


시애틀에서 미국인 선생님과의 관계는 특별했다. 쉽게 이야기를 나눌 친구가 없는 미국에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주고 어눌하기만 한 말에 귀 기울여 주는 선생님은 속 이야기를 털어놓는, 유일한 친구였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오면서 긴장되었다. ‘저 사람은 나보다 영어를 더 잘하네?’ ‘저 사람은 나보다 현명한 말들을 하네?’ ‘저 사람은 나보다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더 깊네?’ 불안했던 것 같다. '그 사람에게는 내가 가장 소중하고 특별해야 하는데.. 더 괜찮은 사람이 나타나서 더 이상 내가 특별해지지 않으면 어쩌지?'


그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사랑은 내겐 경쟁이었다.    

사랑을 받는 것에 허덕이던 내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언제나 부럽고 때론 샘나는 존재였다. 그래서였다. 언뜻 노력하지 않고, 존재만으로 사랑을 받는 사람들.. 남자라는 이유로 귀함을 받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이유로 주목을 받는 사람들.. 미워했더랬다. 사랑을 받는 것이 절실한 사람들은, 사랑을 받을 만한 존재로 인정받기 위해 경쟁한다. 이들에게 사랑받는 경험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있는 순간들이다. 그 달콤한 순간들을 지속시키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그러나, 존재 자체로 사랑을 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가치가 타인의 사랑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내 노력 여부로 사랑의 여부가 좌지우지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랑을 위해 고군분투하지 않고, 그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한다. 심리학에서는 그 두 유형의 차이가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기본적인 신뢰(basic trust)'를 형성했느냐 안 했느냐로 본다. 부모로부터 무조건적인 사랑과 신뢰를 받은 사람들은 기본적인 신뢰가 형성된다. 이들은 자신의 노력 자체로 인정과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존재 자체로 인정과 사랑을 받기에 자기 존재 자체로 의미 있다고 느낀다. 반면 부모로부터 조건적인 사랑과 신뢰-예를 들어 무언가를 잘했을 때 사랑을 받는다-를 받은 것으로 지각한 사람들은 기본적인 신뢰가 형성되지 않아 자신의 모습이 어떠하냐에 따라 사랑과 인정이 조건적으로 올 것이라고 느낀다. 그리고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아야 존재 가치가 있다. 이것이 사람들의 인정과 사랑을 받기 위해 '괜찮은 사람'이라는 타인의 요구와 잣대를 맞추는 이유이다.  




상담을 받던 때, 상담 선생님께 물었었다.

"지금의 이 불안이 제 어린 시절의 결핍과 관련이 된 것이라면, 이건 도대체 언제 없어지나요?"

"안타깝지만 그 불안과 결핍은 없어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

"그럼 너무 억울하지 않나요?"

"인생이 다 그렇게 공정하지 않습니다. 그냥 다소 억울했던 그 어린 시절 당신을 측은히 여기세요. 그리고 그런 어린 시절을 아 줄 만큼 성숙해진 당신의 어깨를 두들겨주세요."


오늘도 스스로에게 말한다.            


"사랑은 경쟁이었고 여전히 경쟁이다.
그러나 안다.
누군가의 사랑을 쟁취한 이후의 허탈과 불안을
그리고
나를 사랑하는 풍요로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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