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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코올 의존증 아빠를 둔 딸

by 새로운 Aug 14. 2024





이제 내 이야기를 할 차례다. 

내가 그와 헤어진 진짜 이유. 



그와 결혼 준비를 하고 있을 즈음, 우리 집에도 일이 터졌다.



일 년 넘게 이유 없이 응급실을 오가는 엄마가 이상했다. 병원에 갈 때마다 나오는 진단은 협심증. 하지만 정밀 검사를 해보면 이상이 없었다. 저녁에 걸려오는 아빠의 전화에 심장이 덜컥해서 받아보면 늘 병원이었다.



협심증은 아니다. 외상도 없다. 너무 답답해서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공황장애 같았다. 안 가겠다는 엄마를 붙들고 정신의학과에 갔을 때 만성 우울증과 스트레스로 인한 공황장애가 의심된다고 했다.



'그럼 그렇지...'



터져야 할 게 터진 것뿐이었다. 

나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었다. 삼십 년이 넘도록 누구 하나 질 줄 모르고, 그렇다고 헤어질 줄도 모르는 지긋지긋한 부모의 투닥거리. 엄마가 응급실에 가는 날은 둘이 싸운 날이 분명했다.



엄마는 공황장애, 아빠는 알코올 의존증.



고민 끝에 가족들과 상의해서 아빠를 알코올 치료 병원에 보내기로 했다. 안 가겠다던 아빠를 몇 날 며칠 겨우 겨우 설득해서.



"두 달간 면회는 안 됩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곤 외출도 금지고요"


알코올 의존증에는 별다른 약이 없다. 그저 중독을 일으키는 술로부터 멀어지는 게 치료이자 약이다.\



“혈압 때문에 드시는 약이 있는데 한 달에 한 번은 직접 병원에 가셔야 해요” 상담할 때 내가 말했다. 



“일주일 전에 미리 연락 주세요. 보호자님이 오셔서 담당교수님 뵙고 외출증 받으시면 됩니다. 그 외에 외출이나 면회는 불가합니다"



선생님의 말투는 꽤나 사무적이었다. 오히려 안심이 됐다.



한 달 후 혈압약 처방 때문에 아빠를 데리러 갔다. 외출증을 끊고 선생님을 만났다.



"다행히 잘 지내시는 것 같아요. 특별히 건강에도 이상은 없고요"

"하아, 다행이에요"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요. 오늘 검진받으시겠지만. 병원 갔다 바로 오시고요 외부 음식 드시는 것도 안 됩니다"

"네..."


차갑고 단호한 교수님의 말에 이상하게도 마음이 놓였다. 그동안 누군가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지겨운 가족사도 꼬여버린 내 마음도.



아빠를 데리러 갔다. 그는 1층 로비에 얌전히 앉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생신 때 사드린 네이비 블루종을 말끔하게 차려입고.



"아빠!"


괜히 미안한 마음에 이름을 크게 불렀다. 다행히도 얼굴이 좋아 보였다.


"얼굴이 좋아졌네?"

"... 술 안 먹으니까"

"있을 만하고?"

"응, 그럭저럭. 이제 술은 안 마실 거야. 근데 과자를 많이 먹어"

아빠는 수줍은 듯 웃었다. 귀가 다 빨개져 있었다. 마치 소년처럼.



검진을 받고 다시 돌아오는 길.


"아빠, 혈압이 더 높아졌대. 이제 군것질은 안 돼요. 조금만 참으세요"

"술을 안 마시니까 자꾸 뭔가 먹고 싶어"

"그래도 안 돼. 다른 걸 찾아볼게"

"..."



"갈게요" 나는 서둘러 돌아섰다.

"로운아"

뒤돌아 서는 나를 아빠가 불러 세웠다. 오랜만에 들어보는 내 이름.

"응?"

"... 미안하다"

"... 또 올게요"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티 내지 않으려 발걸음이 빨라졌다. 아빠, 우리 아빠. 아빠에 대해서는 할 말이 많다. 몇 날 며칠을 말해도 끝이 없을 이야기. 






나는 어릴 적 아빠를 무척이나 좋아했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어른들이 장난스레 물을 때면 고민도 없이 늘 '아빠요!'라는 대답이 튀어나왔다. 엄마가 섭섭해할 만큼 정확한 대답. 아빠는 친절하고 다정한 남자였다. 비록 말 수 없이 무뚝뚝했을지라도... 



내가 어릴 적 아빠가 식당 일로 장을 보러 갈 때마다 나는 늘 따라나섰다. 그 작은 몸으로 조수석 안전띠를 두르고 룰룰랄라 신이 나서 시장에 따라갔다. 나는 한 손에는 큼지막한 아빠 손을 꼭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가 사준 아이스크림을 꼭 쥐고 아빠를 따라다녔다. 어린 나에게 시장은 신세계였다. 양파, 파, 마늘, 고추장, 오징어, 큼지막한 소고기 등등 그곳은 없는 것이 없는 신비의 세계.  



할머니들은 쪼그마한 내가 귀엽다며 천 원 이천 원 꼬깃꼬깃 용돈을 주셨다. 아빠는 얘 버릇 나빠진다면 한사코 말리셨지만 그들은 기필코 그 돈을 내 손에 쥐어주셨다. 나는 그 천 원 이천 원이 너무 좋아서, 할머니들의 관심이 너무 좋아서 늘 아빠를 따라다녔다. 



아빠는 내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손수 내 교복을 다려주고, 옷을 정갈하게 접어주는 다정한 사람이었다. 딱 한 가지 단점이 있다면 멘털이 약하고 스트레스에 취약했다는 사실이다. 살면서 수많은 고난이 우리 가족에게 찾아왔지만 아빠는 그때마다 그 고난의 쉽게 털어버리지 못하고 술에 의존했다. 



작은 아빠에게 보증을 서주고 큰 빚을 떠안게 되었을 때도, 장사가 잘 되지 않아 하나뿐인 집까지 날아갈 뻔했을 때도 그 모든 힘듦을 술로 풀었다. 며칠 동안 술만 마시고 방에만 있거나 혼자 화가 나서 방에 있는 물건을 부수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날은 어김없이 엄마와 싸웠다. 



엄마는 아빠와 지겹게 싸우면서도 말하곤 했다. 


"그래도 네 아빠가 사람은 참 착해. 사람이 너무 좋아서 그래. 사람이...." 


그럴 때마다 나는 따지듯 말했다. 



"그래서, 그렇게 맨날 싸우고 살아? 엄만 지겹지도 않아? 아빠 때문에 우리가 당한 게 얼마야? 도대체 왜 그래? 그렇게 살 거면 제발 헤어져"



나는 퍽하면 엄마에게 아빠하고 헤어지라고 했다. 이쯤 되면 머리가 다 컸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지지고 볶고 지긋지긋하게 싸우면서도 헤어지지 않는 엄마가 이해되지 않았다. 겨우 술 하나조차 제대로 끊지 못하는 아빠도 원망스러웠다. 



그 시절 나는 몰랐다. 세상살이가 얼마나 힘든 지, 가진 것 없이 어린 자식 둘을 키워 내는 게,  남부럽지 않게 공부시키고 대학까지 보내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술이고 푸닥거리고 결국 다 자식새끼 때문에, 가족 때문에 참고 살아야 했던 그들의 고통과 눈물을 나는 정말 몰랐다. 수많은 회한과 희생을. 고됨과 포기할 수밖에 없던 그 꿈들을... 







하지만 하필 이럴 때 문득 그 사람의 얼굴이 떠오른 건 무슨 이유였을까. 하필 이런 순간에. 가장 원망했던 사람 앞에서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생각나다니.



아빠를 병원에 다시 들여보낸 뒤, 나는 한동안 우울에 휩싸였다. 원래도 쉽게 무기력해지곤 했다. 문득문득 이유도 없이. 평소에는 아무렇지 않다가도 어떤 계기 하나가 터지면, 어떤 자극이 털끝 하나만 건드리면 갑자기 집 채 만한 어둠이 찾아왔다.



그럴 때면 난 온 세상과의 연결을 끊고 나만의 동굴로 들어갔다. 아무도 없는 곳으로 더, 더 깊은 곳으로. 아무도 없이 심연 속에서 홀로 시간을 좀 보내고 나면, 그 사람도 없는 곳. 조금씩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달랐다. 도저히 이 어둠 끝에서 나올 수 없을 것만 같았다. 폭식과 절식을 반복했고 회사와 집만을 오갔다. 직장이 끝나고 집에 돌아오면 아무것도 안 하고 노래만 들었다. 아무 감정도 들지 않았다. 책상에 앉아 멍 한 채로 한 가지 노래를 계속 듣다가 잠이 들었다.



결국 모든 결혼 준비는 중단됐다. 이번에는 그에게도 자세히 말하지 않았다. 딱히 설명하고 싶지 않았다. 아니할 수가 없었다. 나도 내가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었으니까.



결국 병원에 가보기로 했다.



의사 선생님 말씀으로는 나를 지탱하고 있던 커다란 중심축이 흔들려서 그럴 거라고 했다. 아버지가 입원하면서 그동안 부정하고 싶었던 과거와 받아들이기 싫은 현실 등 내면의 모든 부정적인 것들과 직면해야만 했기에 그런 걸 거라고. 아버지에 대한 애정과 증오, 사랑과 혐오, 어릴 적 좋지 않았던 기억들을 다시금 떠올려야만 하니까 내가 스스로 그를 병원에 보냈던 사실이 이것을 모두 증명하게 한 꼴이니 당연히 힘들 거라고. 




선생님은 우선 지켜본 뒤 조금씩 약을 써보자고 하셨다. 나는 그러겠다고 했다.




그리고 얼마 뒤 나는 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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