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병아리콩
퇴사 1일 후 : 또다시 백수
회사 재정이 어려우니 회사에 다니면서도 이직 준비를 하고 있었지만, 퇴사가 워낙 갑작스럽게 진행되어 나는 하루아침에 백수 신세가 되었다. 매일 아침 6시에 일어나 출근하며 규칙적으로 돌아가던 루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오늘이 며칠이고 무슨 요일인지도 중요하지 않아 졌다. 사람의 일상이 이렇게 손바닥 뒤집듯 바뀔 수 있구나, 참 쉽다.
이직처를 정해 놓지 않는 퇴사를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한 발짝도 발전하지 못한 것 같아 속이 쓰렸다. 아니, 쓰린 속을 품고서라도 자기소개서는 써 내려갈 수 있게 됐으니 맷집은 좋아진 건가.
N 번째 퇴사를 하며 느끼는 점은 백수일수록 규칙적으로 살며 몸과 마음을 지켜야 한다는 것. 밥 잘 챙겨 먹고, 같은 시간에 일어나고 잠들고, 때론 다이어리도 쓰며 내가 무너지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자기소개서 쓰기, 운동하기, OTT 보며 놀기까지 앞으로 나를 지탱할 새로운 루틴을 만들어 본다. 그리고 일단 오늘은 집에서 뒹굴거리며 놀기로 한다.
퇴사 4일 후 : 실업급여 거절
실업급여를 신청하러 지역고용센터에 다녀왔다. 실업급여 신청 조건이 이렇게 까다로운 줄 처음 알았다. 각종 포털 사이트에서 실업 급여에 대한 기사를 종종 봐왔다. 올해 수혜자가 몇 명이라느니, 부정 수급자가 많다느니 하는 내용들을 당장 내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 제대로 살피지 않았다. 하지만 그게 내 일이 되고 말았다.
실업급여 수급을 위해서는 ‘비자발적’ 퇴사여야 하며, 근무 기간, 고용보험 가입 여부 등 이런저런 조건을 충족해야 한다. 즉, 임금이 체불되거나 비합리적인 대우를 받아도 실업급여를 받으려면 근무 기간을 채워 일해야 하는 것이다.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보다는 조건에 맞는 사람에게 실업급여를 주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나의 경우 A사에서 일한 기간이 짧았지만 전 직장 경력을 포함하면 수급 가능하다고 생각했고, 면대면으로 상담을 받고 싶어 고용센터로 향했다.
고용센터 내부로 들어가자, 너무나 많은 사람이 북적거려 놀랐다. 쉴 새 없이 대기표 번호가 불렸고 고성이 오갔다. 수급을 거절당해 삿대질하는 청년, 같은 말을 반복해서 설명하느라 목이 쉬어버린 직원, 신청서 작성법을 계속해서 물어보는 어르신까지 아주 북새통이었다. 초조하게 기다린 지 30분이 넘어가자 내 차례가 되었다. 이전 고객을 상대하느라 지칠 대로 지친 듯한 직원은 내 사정을 듣더니 노무사 상담 번호표를 끊어주고 더 기다리라고 했다. 그렇게 20여 분을 더 기다려 들은 대답은 NO였다. 이전 직장은 고용보험 대신 공제회에 가입되어 있었기에, 경력을 산입 할 수 없어 수급 대상이 아니라는 거였다. 군말 없이 뒤돌아서 나왔다. 당장 생계가 위태로운 것도 아니고, 대상자가 아닐 수 있단 걸 예상했음에도 거절은 늘 아프다.
퇴사 6일 후 : 임금체불 진정서 제출
퇴사할 때 대표가 밀린 월급을 주겠다고 약속했던 기일이 하루 지났다. 나와 올리브, 샐러리는 각각 관할 노동청 사이트에 임금체불 진정서를 제출했다. 해외여행 중인 파프리카는 귀국 후 제출할 예정이었다. 노동청 사이트에 접속한 것도 처음이고 진정서가 뭔지도 몰라서 하나하나 검색해 가며 진행했다. 평생 안 겪어도 될 처음이 참 많은 요즘이다.
인터넷에는 임금체불을 당한 수많은 선배님의 후기가 있었는데, 저마다의 사연이 기구하여 이것이 21세기 노동 현실이 맞나 싶었다. 임금이 하루만 밀려도, 이는 명백한 회사의 계약 위반이다. 그런데 애타는 마음으로 임금을 받기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을 쏟는 주체는 근로자다. 노동 현실은 끔찍할 정도로 근로자에게 불리하다.
퇴사 11일 후 : 임금체불 위임장 작성
노동청에서 올리브에게 연락을 했다. 각자 제출한 우리의 사안이 동일하니 한 명이 대표로 출석하면 된다고 했단다. 샐러리가 위임장 양식을 만들어 공유했고 올리브는 우리의 대리인이 되었다. 미처 제출하지 못한 추가 서류들도 올리브에게 메일 보냈다. 기꺼이 총대를 매 준 올리브가 너무나 고마웠다.
퇴사 12일 후 : 면접
퇴사 후 지원했던 회사 중 한 곳에서 면접 연락이 왔다. 무료 대여 서비스로 빌린 정장을 입고 면접장으로 향했다. A사에 대한 여러 질문을 받았다. A사에서의 경력이 5개월도 안 되지만 인원이 적다 보니 원고 작성, 교정 교열, SNS 관리, 행사 준비 등 다양한 업무를 했어서 대답할 거리가 없진 않아 다행이었다.
면접관들은 예상했던 대로 나의 짧은 경력들을 염려했다. 나는 스스로도 고민하고 고민했던 퇴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최대한 진솔하게 설명했다. 특히 A사에서의 임금체불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퇴사 사유라서 또다시 다행이었다. 회사 재정을 간략히 설명하자 면접관들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아마 내 표정도 똑같았을 거다.
면접을 마치고 집에 와서 들끓는 마음을 진정시키려 몰입도 높은 드라마 시리즈를 봤다. 아직도 잘 본 면접과 못 본 면접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잘 봤든 못 봤든 부족했던 점이 계속 떠올라 미칠 것 같을 뿐이다.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서 자꾸 면접장으로 돌아가 내가 했던 멍청이 같은 대답을 반복한다. 그래서 일부러 전자파를 과하게 쐬어 뇌를 마비시키려는 하찮은 시도를 하는 것이다.
퇴사 20일 후 : 노동청 출석
대리인 올리브의 노동청 출석 날이다. 그는 9시 반이라는 이른 시간에 먼 길을 이동해 노동청에 출석했다. 파프리카, 샐러리, 나는 11시쯤 올리브와 합류해 식사를 함께하기로 했다. 날이 날인지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물웅덩이를 피해 종종걸음치며 약속 장소인 삼청동의 한 브런치 식당으로 갔다. 미리 도착한 올리브는 노동청에서 있었던 일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우리 모두 형사처벌을 원하지 않고 진정을 취하한다는 의사를 밝혔기에 대표가 출석해서 사실 확인을 하는 것이 다음 순서라고 한다. 그러면 노동청에서 확인서를 발급해 주고, 그 확인서를 근로복지공단에 제출해 간이대지급금을 수령하면 된다. 올리브는 혼자서도 똑 부러지게 어려운 과정을 처리하고 온 것이다.
퇴사 후 처음으로 모인 자리였다. 오랜만에 만나니 각자의 근황도 나누었다. 나는 면접 봤던 회사의 편집부로 이직하게 되어 입사 일자를 조율하는 중이었다. 같은 편집 업무이지만 다루는 매체 특성이 다르고, 업무 성격도 달라 고민이 많다고 털어놓았다. 편집 일이 재밌었으나 이 분야로 계속해서 커리어를 쌓아나가고 싶은지 확신도 없었다. 올리브, 샐러리, 파프리카가 해주는 이런저런 조언도 좋았지만 같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비슷한 연령대의 사람들에게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어 더 좋았다. 회사는 잃었지만 사람은 얻었달까, 원래도 인간적인 호감이 갔던 회사 동료들과 노동청 동지까지 되니 우습지만 더 끈끈해지는 기분이었다.
식사 후 식당 밖으로 나오자 빗줄기는 더 거세져 있었다. 우리는 근처 하루필름에서 사진을 찍었다. 나를 제외하고 다들 가방에 책을 들고 와서, 책 한 권씩을 들고 촬영했다. 샐러리가 책을 두 권 챙겨 와서 나에게 빌려주니 책 권수가 딱 맞았던 것이다. 다들 전직 에디터 티 내는 거냐며 웃었다. 우리는 모두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었다.
그 기세를 이어 샐러리가 우리가 좋아할 것 같은 카페가 근처에 있다며 자신만만하게 앞장서 안내했다. 목재로 포인트를 준 따뜻한 분위기의 북카페였다. 다양한 독립출판물이 서가에 꽂혀있었고 손 글씨로 꾹꾹 눌러쓴 안내 메모들이 붙어 있어 곳곳에서 정성이 느껴졌다. 샐러리의 말이 맞았다. 나는 그 카페가 좋았다.
음료를 주문한 뒤 가운데 테이블에 앉아 저마다 골라 온 책들을 돌려보았다. 이 책은 디자인이 예쁘네, 저 시리즈는 사이즈가 콤팩트하니 잘 빠졌네 등 이야기하다 보니 한 회사에서 같이 책 작업을 하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문득 샐러리가 한 회사에서 한꺼번에 퇴사하여 노동청 동기가 된 우리의 경험담을 글로 써보자고 제안했을 때 덜컥 수락한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물론 언제나 일 벌이기를 좋아하는 내 성격 탓도 있지만, 우리는 모두 책을 만들던 사람이고 글을 애정하는 사람이니까. 일사천리로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할 노션 페이지가 생겼고, 소재와 차례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하나씩 활자로 옮겨졌다. 삼청동 브런치 식당에서 먹은 샐러드와 오븐 샌드위치의 재료는 우리의 필명이 되었다.
사실, 뿔뿔이 흩어진 우리가 프로젝트를 제대로 해 낼 수 있을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한 회사에서 공통적인 매뉴얼에 따라 작업하던 경험과 이 프로젝트는 전혀 달랐다. 보수도 규칙도 아무것도 없었다. 글을 우리끼리 간직할지, 대중적으로 공개할 지부터 어디까지 소재로 삼을 수 있을지 까지 일일이 정해야 했고 의견 차이도 있었다. 심지어 우리의 MBTI를 자기소개에 넣어야 할지 말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갈렸다. 쉽게 개인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는 단서이니 넣으면 재밌겠다는 주장이 있는가 하면, 유행도 지났고 MBTI 만물 설에 지쳤다는 주장도 있었다. 내 안에서도 수십 가지 생각이 왔다 갔다 하니 사공이 넷인 우리의 프로젝트는 산으로 가버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으로 가더라도, 그 과정이 재밌으면 되지 않을까? 퇴사 후에도 기획 회의를 하고 말아 버린 오늘, 쏟아지는 비에 바짓자락이 흠뻑 젖었지만 돌아가는 발걸음은 경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