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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Mar 28. 2017

색, 향, 멋의 향연.
싱가포르 골목 여행

SINGapore, 널 노래하던 순간 - 두 번째, 거리의 냄새

골목이 도시가 되고, 걸음은 여행이 된다.

 마리나 베이의 야경에 반한 탓에, 여행 첫날은 자정이 지나서야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습니다. 돌아와 짐을 정리하겠다는 약속을 하루 더 미루고 쓰러져 잠을 청했던, 제법 고된 하루였어요. 다음 날 아침, 보기 좋게 늦잠을 잤고 호텔 조식 마감 시간에 겨우 맞춰 카야 토스트 하나와 두유 한 모금을 입에 가득 물고 로비를 나섰습니다. 문이 열리는 순간 열대성 기후의 후덥지근한 공기가 가슴팍을 미는 듯 막아섰지만, 소머셋(Somerset) 역 방향으로 환하게 비친 햇살 덕에 걸음을 멈추는 일은 없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 맞은 첫 번째 아침, 낯선 도시와 저는 어제보다 조금 더 뜨거워져 있었습니다.


 화려했던 지난밤이 싱가포르를 상상하며 기대했고, 먼저 다녀온 이들이 놓치지 말라 일러준 숙제였다면, 남은 사흘은 새로운 장면들에 비친 싱가포르 발견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마치 다른 나라에 온 듯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 싱가포르의 다문화 거리는 그중 첫 번째이자 가장 진한 발견으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독특한 향신료 냄새에 이끌린 걸음이 왁자지껄한 시장 소음까지 이어지다가, 어느새 알싸한 취두부 향 사이를 걷고 있는 특이한 산책이었어요. 걷는 것 좋아하고 거리 풍경에 희열을 느끼는 제게는 더 바랄 것이 없었던 그 오후를 돌아와 친구에게 이렇게 소개했습니다. '향취에 이끌려 걸음을 멈출 수 없던 골목 여행'.


 이야기를 꺼내는 지금, 거리마다 다른 그 풍경들과 그 위에서의 설렘이 몹시도 그리워집니다.



첫 번째, 아랍 스트리트 (Arab Street)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 싱가포르

 이름난 쇼핑 타운 중 하나라는 부기스(Bugis) 역에 내려 거대한 건축물 래플스 병원(Raffles Hospital)을 따라 돌았을 때, 횡단보도 건너 낯선 풍경에 괜히 주변을 한 번 더 둘러보게 됩니다. 숙소가 있는 오차드 로드(Orchard Road)를 나선 삼십여 분 전까지만 해도 이런 거리가 싱가포르 안에 숨어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거든요. 그리고 파란 신호등 불을 따라 횡단보도를 건너는 동안 마치 국경을 넘는 것처럼 재미있는 변화들이 일어났습니다.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나기 시작했고, 비취색과 보라색 같은 과감한 색이 칠해진 건물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히잡을 쓴 여성들과 몇 번 눈이 마주치고 나니 정말로 다른 도시에 온 듯한 기분입니다. 그 길로 몇 걸음 위, 우아한 실루엣의 이슬람 사원이 낯선 여행자를 맞이합니다.


트래블라인의 부기스&아랍 스트리트 소개

 싱가포르에서 가장 이색적인 거리로 불리는 아랍 스트리트는 다민족/다문화 국가인 싱가포르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곳입니다. 싱가포르 내 무슬림이 모여 사는 곳으로 이슬람 사원 술탄 모스크(Sultan Mosque)를 중심으로 다양한 이슬람 문화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건축물의 모양과 색 역시 싱가포르 내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이 거리만의 풍경을 연출하고, 이국적인 음식도 맛볼 수 있죠. 마침 점심시간이라 거리에는 생소한 향신료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그들만의 독특한 컬러와 패턴으로 만든 옷과 카펫을 구경하는 것도 즐거웠습니다. 가게 안을 채우고도 모자라 골목까지 진열된 옷들은 화려함도 화려함이지만 단 하나도 같은 것이 없어 보일 정도로 다채로웠는데, 히잡을 쓴 여성들은 물론 짧은 반바지를 입은 금발 머리 여행자들도 유심히 옷을 고르고 몸에 대 보는 풍경이 웃음 짓게 만들었습니다. 도심에서 볼 수 없는 강렬한 색과 향에 취해서인지 그리 크지 않은 아랍 스트리트를 걷는 동안 지난밤의 싱가포르는 어느새 잊혔습니다.


 술탄 모스크는 여행자들에게 단연 가장 인기 있는 곳입니다. 양말을 벗고, 겉옷으로 반바지나 민소매에 드러난 몸을 가리고 들어가는 수고가 아깝지 않을 만큼, 거리 풍경과는 또 다른 경험이죠. 기도를 준비 중인 시간, 이제 막 이 거리 풍경에 빠진 저와 같은 여행자들은 멋지게 차려입은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사원 내부를 둘러보기 바쁩니다. 이 모든 과정이 너무나도 새로워 잠시 '싱가포르'라는 이름마저 잊을 수 있었던 것이, 첫 번째 거리의 매력이었어요.



두 번째, 하지 레인 (Haji Lane)

하지 레인(Haji Lane), 싱가포르

 아랍 스트리트와 불과 한 블록 건너에 있는, 걸음을 재촉하면 십 분이 채 걸리지 않는 짧은 거리. 하지만 이 좁은 골목을 빠져나가는 데 족히 한 시간이 넘게 걸렸습니다. 아랍 스트리트의 끝자락에 위치한 하지 레인(Haji Lane)은 골목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과 또 다른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 골목 여행자들에겐 더 없는 짜릿함을 선사합니다. 술탄 모스크를 중심으로 한 아랍 스트리트가 그들의 법칙 때문에 어딘가 경건하고 조심스러웠다면 그라피티와 먹거리, 소품이 가득한 하지 레인은 활기차고 자유로운 분위기에 괜히 신이 납니다. 저마다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 손님을 맞는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신나는 음악이 흥을 더욱 돋우고요.


트래블라인의 하지 레인 소개
하지 레인, 싱가포르

 벽마다 빠짐없이 화려한 그림이 그려진 하지 레인은 확실히 바로 옆 골목의 아랍 스트리트와 다른 세상입니다. 짧은 치마와 민소매 차림의 발랄한 여성들이 화려한 그림 앞에서 서로 사진을 찍으며 즐거워하고, 멋스러운 옷과 아기자기한 소품을 판매하는 상점들이 늘어서 있습니다. 비행기 안에서 여행을 준비하며 본 하지 레인에 대한 소개는 '인증샷 찍기 좋은 곳'이었는데, 역시 이 골목의 주된 화두는 사진이었습니다.


 감각적인 그림들과 과감한 색, 사실 이런 벽화 거리는 도시마다 적어도 하나씩 가지고 있지만 깔끔한 인상의 도심에서는 볼 수 없는 싱가포르의 반전 매력이라는 점에서 하지 레인은 아랍 스트리트로 시작된 이색 골목 여행의 또 다른 묘미로 꼽는 곳입니다. 혼자 여행했던 제게 화려한 벽화 앞에서의 인증샷이 그저 남의 이야기였어도 말이에요.



세 번째, 리틀 인디아 (Little India)

리틀 인디아(Little India), 싱가포르

 걷기에는 조금 무리인 거리, 날씨 역시 무더웠지만 아랍 스트리트에 들어서며 느낀 그 짜릿함을 혹 놓칠까 싶어 지도를 따라 걸었습니다. 오피어 로드(Ophir road)를 지나 선게이 로드(Sungei road)로 걷는 동안 건물의 모양이며 색, 향신료 냄새 역시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것으로 바뀐 것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김새 역시 달라졌습니다.


 리틀 인디아(Little India)까지 걷는 길은 꽤 길었지만, 완전히 다른 두 거리의 풍경을 보고 있자니 이보다 빠르고 쉬운 여행도 없다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차비도 들지 않았을뿐더러, 여권을 꺼낼 필요도 없이 어느새 작은 인도의 거리를 걷고 있었으니까요.


트래블라인의 리틀 인디아 소개

 리틀 인디아는 이 날 가장 뜨거운 시간을 보낸 곳이었습니다. 무더운 날씨에 옷이 흠뻑 젖기도 했지만 사람과 풍경 모두가 완벽하게 인도를 그려낸 거리에 흠뻑 빠진 시간이기도 합니다. 좁은 강 하나를 두고 아랍 스트리트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는데, 특히나 포토제닉 한 사람들의 표정과 제스처가 기억에 남습니다. 거리 풍경을 좋아하는 제게는 리틀 인디아의 시장과 휴일을 맞아 모인 사람들의 모습, 독특한 힌두 사원 등 모든 장면이 멋진 주제가 되었습니다. 평소 인도의 모습을 동경하던 제게는 그런대로 훌륭한 '맛보기'가 되었달까요? 


 오후 세 시, 다양한 색의 우산을 매단 나무 그늘에서 사람들이 낮잠을 청하고, 즉석에서 솜씨 좋게 코코넛 열매를 갈라 빨대까지 꽂아주는 과일가게 앞에는 줄이 끊이지 않습니다. 2.7 달러를 내고 받아 든 코코넛 열매 속 코코넛 워터를 길게 한 모금하며 짧은 인도 여행을 마무리합니다. 



네 번째, 차이나 타운 (China Town)

차이나 타운 푸드 센터, 싱가포르

 세계 어느 나라에나 있다는 차이나 타운. 인구 중 중국계 이민자의 후손이 다수를 차지하는 싱가포르에도 작지 않은 규모의 차이나 타운이 있습니다. 싱가포르 내 차이나 타운은 저렴하고 맛있는 먹거리와 기념품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는다고 합니다. 아랍 스트리트와 리틀 인디아보다는 아무래도 그 생소함이 덜하지만 그래도 싱가포르 골목 여행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트래블라인의 차이나 타운 소개

 인천의 차이나타운이 그렇듯, 아무래도 차이나 타운의 최대 매력은 먹거리가 아닐까요? 저는 차이나 타운 입구에 있는 한 식당에 방문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는데요,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미쉐린 메뉴로 선정된 곳입니다. 간장 소스에 졸인 닭고기와 에그 누들을 소스와 함께 내놓는 이 한 접시의 가격이 약 2천 원. 때문에 종일 한 시간 이상 줄을 서야 할 정도로 인기가 많고, 최근에 분점을 오픈했다고 합니다. 서울에 있는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자랑하며 식사를 하다 보니 누군가에겐 이 한 접시만으로도 이 골목을 찾을 이유가 충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꺼이 헤매고 싶던 골목 여행

비가 반가운 것은, 오후가 그만큼 뜨거웠기 때문이겠죠.

 리틀 인디아의 끝자락에 다다랐을 때, 달궈진 하루를 식히는 세찬 비가 내렸습니다. 식당 처마 아래서 비를 피하던 제 가방 안에는 작은 우산이 있었지만 이대로 거리 풍경을 좀 더 바라보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한참을 더 서 있었습니다. 늦은 아침부터 시작된 짧은 여행, 하지만 그 풍경과 감동의 다채로움은 가히 두세 번의 여행에 비할 수 있는 반나절이었습니다.


 아랍 스트리트와 리틀 인디아 그리고 차이나 타운까지. 싱가포르의 다문화 거리를 걸으며 서울보다 조금 더 큰 이 작은 나라가 품은 다양한 매력을 발견했습니다. 그 거리들은 낡은 건물과 곳곳의 칠 벗겨진 흔적, 어지러운 바닥까지 제가 알고 있던 싱가포르의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지만 멀끔한 마리나 베이 풍경과 같은 이름 아래 공존하고 있습니다.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서너 도시쯤은 여행할 수 있는 여행, 그것이 싱가포르 골목 여행만의 매력입니다.


브런치 트래블 패스 - 세 번째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싱가포르 X 브런치 트래블 패스 그리고 금요일 흐림

모든 이야기 보기


https://brunch.co.kr/@mistyfriday/136

https://brunch.co.kr/@mistyfriday/137

https://brunch.co.kr/@mistyfriday/138

https://brunch.co.kr/@mistyfriday/139

https://brunch.co.kr/@mistyfriday/140


본 포스트는 싱가포르관광청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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