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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요일 Mar 29. 2017

티옹 바루(Tiong Bahru)
사람들의 아침 인사

SINGapore, 널 노래하던 순간 - 세 번째, 여유의 향기

좋은 아침이에요, 그렇죠?


 동네 끝자락 좁은 골목길의 작은 서점 북스 액추얼리(Books actually)는 이제 막 문을 열었는지 아직 손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조심스레 들어서자 책장을 정리하던 이가 눈을 맞추며 '굿모닝', 아침 인사를 건넵니다. 살가운 미소에 왠지 모르게 머쓱해져 얼른 책 하나를 집어 들었습니다. 빨간 표지의 책 제목은 'Grandma's recipe(할머니의 레시피)'. 건성으로 페이지를 몇 장 넘기고 책을 다시 내려놓았을 때, 어느새 서점에는 제법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싱가포르에서의 세 번째 아침은 이렇게 시작됐습니다.


북스 액추얼리(Books Actually), 티옹 바루

 부끄럽게도 평소 많은 책을 읽지 못하지만, 서점을 둘러보는 것은 무척 좋아합니다. 특히나 이런 작은 독립 서점을 둘러보는 일은 차가 막힌다는 핑계로 다음 약속 시간을 조금 더 미루고 싶을 만큼 매력적이죠. 티옹 바루 북스 액추얼리 역시 그랬습니다. 어지럽지만 나름의 규칙대로 정렬되어 있는 책들과 짝다리를 짚거나 책장에 기대 골똘히 책을 훑어보는 사람들, 책장 소리가 간신히 들릴 만큼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 그리고 이 모든 풍경을 한눈에 다 담는 시선까지. 몇 발짝 뒷걸음질로 서점 입구 앞에 서서 곧 보물 찾기의 시작 호루라기 소리를 앞둔 것 같은 설렘을 즐깁니다. 제 소년 시절 봄소풍의 단골 배경 '드림 랜드'를 떠올린 것이 뜬금없지만, 이 작은 책방을 한 바퀴만 돌아도 그럴듯한 것들을 한 줌 쥘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추억 속 감정과 닮았던 것 같아요.


 싱가포르 번화가에 있던 북스 액추얼리가 2012년 티옹 바루의 골목으로 이사를 왔다고 합니다. 싱가포르에서 가장 오래된 주거지 중 한 곳인 티옹 바루에 개성 있는 상점과 디자인 숍들이 들어서고, 그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라이프 스타일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이라고 하니 속은 좀 낡아 보여도 책방 이상의 의미가 있는 곳이죠. 일반 서적 외에도 다양한 독립 출판물을 만날 수 있는 곳이라 현지인들에게도 높다고 합니다. 카운터 옆으로 난 작은 복도로 들어서면 개성 있는 빈티지 소품들도 구경할 수 있습니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서점 안을 족히 예닐곱 바퀴는 돌았을 정도로 매력적인 공간이었습니다. 영어뿐인 책은 전날 아랍, 인도 거리를 여행하느라 여독이 아직 덜 풀린 머리를 지끈하게 하지만 개성 있는 책들이 늘어선 모습과 그 사이를 헤치며 다니는 사람들의 모습을 훑는 것만으로도 북스 액추얼리는 충분히 즐거운 곳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 북스 액추얼리에서 책 보다 더 인기를 끄는 냥이 두 마리는 서점 곳곳을 순찰하며 고즈넉한 분위기를 더했고요.

 왜 여행하다 보면, 그냥 나오기 왠지 아쉬운 곳이 있잖아요? 북스 액추얼리가 그런 곳이었습니다. 기념품 코너를 한 번 더 둘러본 뒤 결국 서점 이름이 새겨진 에코백 하나를 구매했는데, 싱가포르에서 제게 처음으로 아침 인사를 건넨 그녀가 다시 한번 웃으며 말합니다. 


'좋은 하루 보내요'


오늘 아침을 이 곳에서 시작하길 잘했습니다.



티옹 바루 골목마다 골고루 흩뿌려진 여유

 북스 액추얼리를 나서 조용하고 한적한 티옹 바루의 골목을 걸었습니다. 멀라이언 같은 랜드마크는 물론이고 그 흔한 편의점 보이지 않는 동네, 좁은 길을 걷다 보니 아이들 떠드는 소리 가득한 주민 센터 건물도 보입니다. 중간중간 세워진 열대 지역의 나무들만 빼면 얼핏 서울의 여느 골목길과 크게 다르지 않은 티옹 바루를 싱가포르 사람들이 이 도시에서 가장 멋진 장소로 꼽는 이유를 뜨내기손님이 단번에 알아차리긴 어렵겠지만, 굳이 누가 일러 주지 않아도 느낄 수 있는, 골목마다 느껴지는 여유도 분명 그중 하나일 것입니다.


 당신을 위해 아침 식사를 준비했다는 카페의 문구와 따끔한 햇살 아래 선명한 색으로 치장한 꽃들, 골목 곳곳에서 발길을 붙잡은 벽화들까지. 이제 막 하루를 시작하는 티옹 바루의 풍경은 낯선 서점을 들어서며 받은 살가운 아침 인사처럼 여유롭고 정겨웠습니다. 별 볼 것 없다 생각했던 이 작은 동네를 결국 한 바퀴 더 걸으며 정해진 약속 시간이 없다는 것, 혼자 여행하고 있다는 것이 오늘 아침만큼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티옹 바루 베이커리 (Tiong Bahru Bakery)의 아침 향기

티옹 바루 베이커리, 티옹 바루

 한적한 아침의 티옹 바루를 둘러보는 데에는 한 시간이면 충분하고, 그 짧은 산책을 마무리하기엔 티옹 바루 베이커리가 적당합니다. 워낙에 작은 동네라 걷다 보면 두세 번쯤 이 빵집 앞을 지나치곤 했는데, 그때마다 빵 냄새가 걸음을 붙잡더군요. 사람 맘이 다 비슷한지, 티옹 바루 베이커리는 이른 아침부터 브런치와 티타임을 즐기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여유로움에 향기가 있다면 아마 이런 향이 풍기지 않을까?'


 야무진 입매로 아침 인사를 건네는 점원에게 거리낌 없이 '굿모닝'이라 답하고 나니 그새 티옹 바루의 룰에 적응한 것 같아 어깨가 으쓱해집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 몇 번이고 발길을 붙잡았던 빵 향기의 본산에서는 숨을 들이마시는 것마저 괴롭습니다. 아침도 거르고 골목 탐방에 여념이 없었거든요. 입을 반쯤 벌리고 빵들을 구경하는 제게 그녀는 인기 메뉴라며 쿠안 아망(Kouign Amann)을 추천했습니다.


 캐러멜을 입힌 페이스트리를 한 입 크게 물고 아이스커피를 마시니 오늘 하루는 이대로 마무리되어도 좋다 싶을 만큼 신이 납니다. 벽에 등을 붙인 채 빨대를 입에 물고 빵집 풍경을 보고 있으니 이 아침 풍경의 하나가 된 것이 제법 큰 행운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고요. 시계를 보니 아직 열한 시 이십 분. 계획대로라면 바쁘게 움직여야겠지만 한 두 개쯤 빼먹더라도 이대로 좀 더 있기로 했습니다. '이것도 티옹 바루의 룰이야' 라며.


티옹 바루 베이커리, 싱가포르


당신의 아침 인사가

내 하루를 어찌나 행복하게 만들었는지

싱가포르 여행 정보를 제공하는 트래블라인 앱

 여유로운 동네 티옹 바루(Tiong Bahru)는 싱가포르 여행을 준비하며 알게 되었습니다. 이번 여행에 적지 않은 도움을 준 트래블 라인 앱이 첫 손에 꼽은 싱가포르의 힙 플레이스였는데, '골목 탐방'이라는 그럴싸한 제목에 마음을 빼앗겨 조식도 거르고 걸음을 서둘렀죠. 트래블 라인에서 추천한 스폿들을 모두 둘러보아도 한 시간이 넘지 않을 만큼 작고 한적한 티옹 바루에서 낯설지만 어딘가 편안한 여유를 만끽한 아침이었습니다.


아쉽게도 티옹 바루 마켓은 5월까지 공사중이었지만 말이죠.

 작지만 깨끗하고, 조용하지만 살가운 동네. 티옹 바루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서점과 빵집, 상점을 들어설 때마다 살가운 아침 인사를 나눴습니다. 처음엔 어색하던 인사에 점점 기분이 좋아져 나중에는 기다리고 기대하게 됐어요. 어쩌면 행복이란 것이 이토록 아무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화창한 아침과 무척 잘 어울린 골목 산책을 마치고 저는 다시 뜨거운 오후를 기대하며 센토사(Sentosa) 섬으로 향했습니다.


오늘도 좋은 아침입니다!



싱가포르 X 브런치 트래블 패스 그리고 금요일 흐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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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트는 싱가포르관광청으로부터 일부 경비를 지원받아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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