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0월 17일)
<공장에서는 집에서 만든 것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싼값에, 똑같이 따뜻한 벙어리장갑을 생산해 낼 수 있다. 하지만 가게에서 산 것과 집에서 짠 것을 구분하는데 필요한 몇 가지 결합 요소가 있다.
집에서 옷 한 벌을 생산해낼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안녕을 염려하며, 이러한 염려를 옷감과 함께 짠다. 그러한 각별한 가치를 인식하는 사람들은 이 선물을 하고 다닐 때 따뜻함뿐만 아니라 보살핌과 애정을 더 많이 느낄 것이다. 이것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있어 손으로 짠 벙어리장갑은 더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다움에 대한 우리의 감각은 이렇게 아느냐 모르느냐, 혹은 느끼는가 느끼지 못하는가에 따라 크게 영향을 받는다.
우리는 아름다움을 시각적으로 생각하는데 익숙하지만 껍데기로 둘러싸인 속을 들여다볼 줄 알게 되면 보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진다.>..... 핸드메이드 라이프에서
나에게는 아내가 손수 만들어준 하얀 저고리와 파란 사폭 바지 한벌이 있다. 지금은 너무 낡아서 바지는 입지 못하고 저고리만 입고 있다. 그 저고리마저도 너무 낡아서 몇 번을 기워서 입고 다닌다. 여름 한 철 내내 입고 다니면 좋은데 금방 달아서 입지 못할까 봐 아껴서 입고 다닌다. 2005년도에 만들어 준 옷이니 벌써 15년이 되어 간다.
내가 입고 있는 옷 중에 이보다 더 깊은 기억을 가진 옷은 없다.
초등학교 때인가? 엄마가 헤진 무릎과 팔꿈치를 다른 천으로 덧 데어 수선해준 바지와 티가 있었다. 갈색 옷이었는데 그때는 그렇게 입고 사는 것으로만 알았기 때문에 아주 오랜동안 그 기억을 잊고 있었다.
아내 만들어 준 옷이 나에게 소중한 이유를 들어보라고 하면 몇 가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첫째는 내 몸 딱 맞는다. 크지도 작지도 않게 내 몸에 맞는 여름 저고리다. 몸에 맞으니 태가 난다. 입고 있으면 편하고 잘 어울린다.
둘째는 아내가 직접 디자인 한 옷이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디자인이다. 자부심이 생긴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자랑도 많이 한다. ˝이거 아내가 만들어 준거야 벌써 10년이 넘었어, 목깃은 헤져서 기운 실이 드러날 정도로 입었다. 이제는 옷깃 아래도 헤어져서 얼마나 더 입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집에서 입는 데는 별 문제가 없다.
셋째는 아내가 재봉을 하고, 나는 옆에서 조수로 같이 만들었다. 아내와 함께 만든 옷이 몇 벌 있는데, 그때마다 옆에서 보조를 한다. 아내가 ˝가위˝그러면 가위를 주고, ˝천 잡아봐˝ 그러면 천을 잡는다.
그렇게 만들어 입은 옷이 참 소중하게 여겨진다. 이번 여름에는 한 번 입고 세탁을 하고 잘 개어서 옷장에 넣어두었다. 더 오랜동안 입고 싶은 마음에 한 여름에 한 두 차례 입는다.
공장에서 만든 옷들은 싸고 맵시도 좋다. 아내가 만든 옷에 비교하면 세련된 옷들이다. 내가 입고 있는 옷의 대부분은 공장에서 만든 옷이다. 그렇지만 난 그 옷을 누가 만들었는지, 왜 그렇게 만들었는지, 만드는 동안의 과정도 사연도 알지 못한다. 어디서 샀는지도 기억에 없다. 다만 인터넷에서 쇼핑을 한 옷들이 대부분이다. 그렇다고 내가 입고 있는 옷들이 의미가 없거나 부도덕하다는 뜻은 아니다.
아내가 만들어 준 옷에 비해서는 기억나는 것이 없고, 따스한 손맛이 없다는 말이다.
아내가 만든 저고리와 바지를 입고 친구들과 만날 때는 저고리가 이야기의 소재가 된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나 어린이 학원 다니는 이야기, 주식 이야기, 오늘은 무엇을 먹을까?라는 이야기도 하지만 내가 입고 있는 저고리도 이야기의 중심으로 들어선다. 그럴 때 내 표정은 참 밝고, 어깨가 으슥해지는 느낌이 든다.
싼값에 똑같은 옷이 많은 세상이다. 질도 좋고 디자인도 좋다. 그렇지만 나에게 소중한 옷은 몇 벌 되지 않는다. 할인할 때 산 옷 중에 몸에 맞는 옷이 있으면 ˝싸게 잘 샀지˝이게 전부다.
아내가 옷을 만들 때 보조를 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있다. 시중에서 파는 옷 값이 터무니없이 싸다는 것이다. 하루에 한 벌을 만들기 어려운 핸드메이드 저고리를 돈으로 환산한다면 아내의 인건비, 내 인건비, 재료값, 기타 비용까지 족히 20만 원은 될 것이다.
공장에서 나오는 좋은 제품들의 가격은 정직한 것일까? 너무 싸게 살 수 있고, 사서 입은 기억이 전부라서 그런지 버려지기도 쉽고, 비슷한 디자인의 옷들도 몇 개씩 가지고 있다.
건축가인 나에게 집과 건물을 의뢰하러 오시는 분들 중에 상당수는 나만의 집, 취향이 반영된 건축,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분들이 많다. 아파트를 분양받아서 입주하거나 지어진 건물을 구입해서 용도에 맞게 쓰면 되는데도 손맛이 들어간 새로운 건물을 요청하러 오신다.
우리들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이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는 아닌 것을 아시는 분들이다.
몇 달 동안 설계를 하고, 몇 달간 공사를 하면서 건축주와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시간이 지날수록 건축가와 건축주는 서로에 대해서 많은 것은 이해하고 배려하게 된다.
시간이 주는 선물이고, 관계가 주는 보답이다.
아파트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을 집의 크기로 분류하고 새로운 흐름을 반영하여 분양을 한다. 표준을 만들어 내고 그 안에 사람들이 적응해서 살아가도록 한다. 큰 고민할 것도 없고 불편함도 없다. 건물의 디자인은 공동주택답다. 반면에 단독주택 한 채를 설계하고 공사를 하더라도 그 집에 살 사람이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가족들의 취향은 무엇인지 새로 지은 집에서 살 때 무엇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지 도면 안에 공사 중에 녹아나도록 노력을 한다. 공동주택에는 한 동에 몇 백세 대가 입주를 한다. 설계자와 시공자는 입주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디자인을 하고 집을 짓는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장갑과 엄마가 만들어주는 장갑과의 차이점 같은 것이라고 할까?
대량 생산된 반팔티와 아내가 만들어 준 하얀 저고리와의 간격만큼 우리는 오늘을 살고 있다.
우리 들은 지금 어디에 살고 어떤 옷을 입고 있을까?
내 몸에 맞는 집과 옷을 입고 있는 것일까?
내년에도 우리 가족은 고추를 심고, 씨를 받아 둔 피망을 심을 것이다. 텃밭에 뿌리내린 토마토는 계절을 알려주며 빨갛게 여름을 알려줄 것이다. 올해는 생각지도 않은 단호박이 풍년이 되었다. 손님들에게도 나누어주고 집에서 구워 먹기도 하고 호박죽도 해 먹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