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와 건축

건축, 이웃, 사람, 날씨를 이어주는 것들

by 빵굽는 건축가



가을 들녘 풍경이 색을 더해가는 계절입니다. "초록은 모든 색의 시작"이라는 어느 시인의 글귀에 고개를 끄덕이게 됩니다. 초록초록하던 봄과 여름이 지나가면서 마을 주변에 펼쳐진 벼이삭들은 이제 깊은 노란빛을 더해 가고 있습니다. 한두 달 더 지나면 하얗게 찬서리 내린 가을을 넘어 파란 하늘 투명한 겨울을 맞이 하겠지요. 그때쯤이면 햇빛도 매일 저마다의 색을 낼 것입니다.

건축가들은 계절의 변화에 민감합니다.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 그리고 새벽까지 온도에 민감하고, 비와 바람, 햇볕과 습도에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건축을 업으로 삼고 있는 저 같은 사람들에게는 매일 확인하는 의식과도 같습니다. 커피 원두를 볶을 때도 “그날의 습도와 온도, 공기질이 맛을 결정한다”라고 하는 로스터의 이야기처럼 건축 역시 커피맛의 세계와 비슷한 면이 존재합니다.

날씨는 형태와 재료를 결정하게 만드는 디자인뿐만 아니라 시공의 품질을 좌우하는 요소 중에 하나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집을 짓는 공사의 시작은 봄과 가을을 가장 선호하게 됩니다. 물이 얼고, 땅이 어는 겨울과, 장마와 태풍을 품은 여름은 아무래도 공사 효율이 떨어지고, 마감의 품질을 끌어올리는데 더 많은 시간과 힘이 들어가야 합니다. 좋은 날 궂은날을 구분해가며 어떻게 건축을 생업으로 삼냐고 할 수도 있고, 그럼 일 년에 6개월만 일을 하냐고 누군가 질문을 던질 수도 있겠지요. 날씨의 영향을 받고 있지만 실제로 일은 1년 내내 하고 있습니다.

추석을 앞둔 이번 주 토요일과 일요일은 현장 식구들도 느긋하게 쉬어가고 있습니다. 초등학생을 둔 서팀장, 이 팀장은 아이들과 나들이를 간다고 합니다. 김 소장은 “아이들도 다 크고 이제 혜민이 엄마랑 다시 연애를 시작한다”라고 하는군요.

월요일부터는 기초 콘크리트 공사와 전기, 설비 사전 매립 작업이 있습니다. 세화 전기 이사장님은 정말 천사 같은 분입니다. 앞으로 소개할 기회가 있겠지요. 설비 이사장님은 큰아들과 함께 일을 하십니다. 축구선수였던 아들과 함께 있는 이사장님의 눈매에는 아들을 바라보는 특별함이 있습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세월이 길어질수록 남 같지 않아 제 마음도 애정이 생겨갑니다. 내년 2월까지 지어야 할 두 동의 집을 앞두고 잠시 멈춘 모습에 한가로운 주말입니다.

주말에는 추석 감사선물을 보내러 10년 넘는 단골 포도밭에 다녀오려고 합니다. 예년에 비해 선물을 보내는 개수가 줄었습니다. 그래도 협동조합을 시작한 이후 해마다 건축주분들과 조합 식구들에게 유기농 안성포도를 색색이 골고루 섞어 보내고 있습니다.

협동조합과 첫 인연을 맺고 집을 지은 양평 명달리 건축주 내외분께는 지난 8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포도와 함께 조합 건축가들의 이야기가 담긴 편지도 담아 보내고 있습니다. 건축가들의 초심이라고 할까요? 건축주인 최 선생님과 고선생님도 이런 우리들이 좋은지 뒷산에서 딴 잣을 지난 사연과 함께 보내주십니다.

건축가에게 집만 남고 사람이 없다면 재미가 반으로 줄 것입니다. 세월이 흘러 친구 같고, 가족 같은 세상 식구들이 점점 더 늘어 가는 이 일이 저와 어울리는 천직 같습니다. 그래서 고맙고 감사하고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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