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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빵굽는 건축가 Jan 09. 2021

겨울날 목요일 저녁 카레맛

아빠의 카레 레시피

(2019년 12월 7일에)


오늘은 아빠들을 위한 카레 레시피를 써보려고 합니다. 직업이 주방장인 아빠들이나 엄마들은 읽지 않으셔도 되니, 건축가의 카레 레시피를 눈요기 삼아 보세요. 

카레 재료의 준비는 3인분을 기준으로 감자 3개, 당근 한 개, 양파 1개, 새송이버섯은 국그릇으로 한 그릇, 100% 강황가루 1 티스푼, 옥수수가루 30그램 (반 컵), 올리브 오일, 국간장은 간에 맞게 준비, 육수용 멸치 10마리


감자 씨눈을 제거하고, 껍질을 벗기고 2센티 전후 크기로 조각을 내어 약한 불에 15분 이상 볶아주면 동글동글하게 바뀌면서 먹기 좋아집니다.  

카레 재료를 조릴 때 주의 사항 몇 가지를 공유하자면 기름은 뜨거운 열에 산화되어 건강에 좋지 않으니 단단한 재료를 볶기 전에 냄비 바닥에 물을 살짝 깔아주고 센불, 중불 순으로 조절하면서 50% 정도 익으면 감자와 당근에서 나오는 물로 타지 않고 식감이 생깁니다. 그때 올리브 오일이나 현미유, 콩기름도 좋고, 국내산으로 싱싱한 기름을 사용할 수 있으면 그게 좋겠어요. 가능하면 유전자 처리가 되지 않은 제품을 구입하는데, 유채 씨에서 나온 기름이나 콩에서 나온 기름들은 원재료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름은 뜨거운 불에 타지 않도록 하고, 유통기간이 오래되어 산패되지 않은 제품을 사용하세요. 기호에 따라 코코넛 오일을 넣는 경우도 있으니 자기의 취향이 어떤지 알아두면 도움이 되겠지요. 그럼 기름을 적당량 넣어 살짝 볶아주고 국간장은 재료에 배이도록 해줍니다. 볶는 도구는 나무 수저가 좋습니다. 오래 쓸수록 손에 들어오기도 하고, 차갑거나 뜨겁지 않고 수저 끝이 뭉툭해지면 닳는 모습도 보기 좋습니다. 저도 볶는 수저가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밥 수저 크기이고 하나는 티스푼용인데 손잡이가 길어서 사용하기 편리해요. 주걱으로 할 수도 있지만 간장을 넣거나 소금을 넣을 때 같이 사용할 수 있어서 수저나 티스푼이 요긴합니다.


재료를 넣는 순서는 단단한 재료를 넣고 다음은 부드러운 버섯 같은 재료를 넣어주는 순으로 하면 식감을 유지할 수 있어요. 또 한 가지는 카레 재료들의 크기를 일정하게 잘라주세요. 먹을 때 튀지 않고 한입에 여러 재료가 쏙 들어옵니다. 중국에서는 재료의  균등한 크기가 요리사의 기본이라고 하더군요. 조리는 감자와 당근이 50% 이상 익었을 때 새송이버섯을 넣고 기름을 살짝 둘러주고 간장도 넣어서 간을 베개 하고, 냄비 뚜껑을 덮어 약불에 졸입니다. 졸이는 시간에 따라 식감과 재료에서 나오는 육수의 차이가 있어요. 얼마나 익었는지 몇 그램을 넣어야 하는지는 자주 하면서 감을 익히는 것이 중요하니, 이 부분은 책이나 남들의 소리에 의지 하지 마세요. 요리를 하다 보면 창작의욕이 생기고 순서들이 그려지거든요. 무엇보다도 재료들의 특징을 이해하게 되면서, 회사일로 음식점에 손님들을 모시고 갈 때 괜찮은 곳을 찾아갈 수 있는 예리한 맵시도 생기니 일석이조입니다. 제법 괜찮다는 식당에 가서 주문한 음식을 먹을 때 들어간 재료들이 어떤 것인지 궁금해질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는 호기심과 함께 나도 만들어 봐야겠다는 의지가 올라옵니다. 제가 이야기하는 방식은 어디까지나 아빠들도 요리에 참여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레시피이니 음식을 늘 하는 엄마들은 개의치 않아도 된다고 다시 이야기해두도록 할게요.  


가족을 위해 음식을 만드는 일은 살펴보면 순전히 나를 위한 일이니, 앞치마를 두르고 머리 두건을 매고(나이가 들어가니 머리카락이 빠지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모양도 나고요), 도마와 칼을 챙기고, 괜찮은 레시피들과 요리사들의 만화책을 참고하면 재미도 있습니다. 

재료의 특징, 새로운 레시피의 세계를 다룬 요리만화로는 <알랭파사르의 주방, 푸른지식>을 추천합니다. 일류 요리사가 될 것은 아니지만 제대로 만든 가정식 요리를 대접하는 정신이라고 할까요?. 임금님께 드리는 수라상처럼 12첩 반상은 아니지만 한 가지 일품요리라 하더라도 ‘마음’ 같은 그런 것을 배울 수도 있고, 의식주의 기본이니 취미 삼아 해볼 만한 일이라고 주변에 추천을 할 때도 있습니다. 문화를 나누는 일이니 거부감이 있을 리 없어요. 


우리 집 주방 환기팬은 소리가 커서 가능하면 사용하지 않습니다. 많아야 3,4인분이고, 기름을 많이 쓰지 않아 필요가 없습니다. 최근에 딸아이가 요리를 하면서 환기팬을 켜지 않을 수 없을 때가 있기는 합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주방용 팬은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의 새로 나온 제품을 쓰라고 권하고 싶네요. 도마를 놓을 만한 싱크대의 깊이와 넓이도 요리를 하는데 불편함이 없어야 해요. 요리하는 과정이 복잡하고 힘들면 관심이 떨어지는 일이니, 싱크대가 작으면 식탁이나 보조 준비대를 이용하는 것도 괜찮습니다. 도마를 놓고 재료를 펼치고 그릇을 놓자면 최소 60센티 이상의 너비가 필요하고, 옆에서 가족이 거들어 준다면 1미터 정도의 너비가 있어야 합니다. 제대로 된 주방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낸다는 것을 실감하는데요, 주방장이 즐거워야 요리도 맛이 듭니다. 


주방에서 일을 할 때 온도의 감각을 익히는 과정도 재미납니다. 커피도 제맛이 나려면 물의 온도와 내리는 속도가 중요한 것처럼 모든 재료에는 저마다의 적정한 온도와 일정하게 배어드는 흐름 같은 것이 있습니다. 정말 이렇게 말하니 전문가 같지만 절대 그렇지 않고 가족을 위한 음식을 할 때의 기준이니, 괜하게  흉을 보는 일은 없으면 좋겠습니다.


콘센트의 위치와 가전의 배치는 주방일을 하지 않으면 알지 못하는 규칙이 숨어 있습니다. 싱크대와 준비대에 커버가 달린 콘센트를 설치 할 때는 위치가 중요합니다. 특별한 공식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물 사용하는 곳과 떨어져 있어야 하고, 걸리적거리지 않아야 합니다. 아파트 광고에 나오는 주방에 살 것을 상상하면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아파트 광고와 같은 주방에 있더라도 여러 사람의 음식을 준비하면 깔끔한 것과는 멀어질 수 있습니다. 특히 설거지 거리는 다음 순서로 넘어가는 사이마다 쌓이지 않도록 설거지를 미리하는 민첩함도 있어야 하더군요. 그렇지 않으면 아빠의 일품요리가 아무리 맛있어도 아내에게 핀잔을 받을 수밖에 없고, 이럴 거면 다음에는 안 해도 되니 그만 하라는 화살이 돌아올 수 있습니다. 부디 설거지까지 마무리하는 책임감을 가지라고 하고 싶네요. 우리가 음식점에 가는 큰 이유 중에 하나도 설거지 때문이 아닐까요?

오늘은 정말 말이 많아 지기는 하네요. 건축가들이 놓치는 것 중에 하나가 주방의 조명입니다. 메뉴얼처럼 놓는 위치가 정해져 있지만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조명은 눈부심이 적어야 하고 특히 조리되어 가는 과정의 색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위치에 놓이고, 적당한 밝기가 있어야 합니다. 무조건 환해야 한다는 표현은 아니고 요리를 즐길만한 조명이어야 한다는 표현으로 이해하면 좋겠네요. 우리 집 조명은 그런 면에서 적당하지 않아 아내에게 몇 번의 경고를 받았습니다. 역시 집은 모양이 아니라 ‘생활이 우선’입니다. 주방을 개선할 때 조명도 바꾸려고 합니다. 


카레에서 중요한 재료인 양파는 잘게 썰고 다른 팬에 기름을 두르고 중불에서 단맛이 우러나올 때까지 볶아줍니다. 양파를 같이 넣지 않는 이유는 익는 온도가 다르고 다른 재료가 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시간이 부족하거나 장소가 좁으면 양파를 같이 넣을 수 밖에 없습니다. 양파의 역할은 설탕과 감미료를 대신해서 단맛을 냅니다. 역시 기름이 타지 않도록 관리하는 집중력이 필요합니다.  

육수는 국물용 멸치를 사용하는데, 멸치의 색이 노란색을 띠고 있으면 산패되었거나 신선도가 떨어지는 것일 수 있으니 은빛으로 반짝이는 멸치를 구입하여 똥을 빼고, 10마리 정도를 육수물(지름 18센티 냄비에서 2~3센티 물높이)에 넣고 중불에 끓여줍니다. 육수가 우려 지면 뽀글거리면서 색이 멀겋게 변하는데 그때 멸치를 빼고 조린 양파와 함께 각종 재료의 냄비에 넣어줍니다. 이 모든 것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것이니 쿡탑이나 가스레인지의 화구가 3개 이상은 되어야 가능합니다.  


카레의 백미인 강황가루(100% 강황)는 1 티스푼을 옥수수가루(옥수수 가루가 없으면 통밀가루)와 물을 걸쭉하게 넣어서 섞어줍니다. 유념해야 할 것은 뜨거운 물을 넣으면 익어버려서 풀이될 수 있으니 찬물로 개어주면서 농도를 보는데 노란색이 매력입니다. 호박색 같기도 하고 치자 꽃물 같기도 해서 참 좋습니다.  

노란색이 곱게 나오고 덩어리가 없어질 때까지 개어주고, 간장을 넣어 간을 한 후에  육수물, 양파 조림, 강황 옥수수갠 물을 차례로 넣으면서 저어줍니다. 

약한 불에서 3분간 저어주면 색깔이 아주 곱고 간이 잘 배인 카레가 완성됩니다. 맛을 보아야 하겠지요? 맛보는 것은 주방장의 권리이니 충분히 맛을 보고 간을 맞추어 주세요. 

시중에서 구입할 수 있는 봉지 카레는 간단하기는 하지만 맛을 내기 위해 들어가 있는 첨가물이 다양합니다. 첨가물이 없는 아빠의 카레는 보존기간은 짧지만 바로 먹는 것이니 양파를 충분히 활용하는 것이 비법입니다. 전에 ’ 델리 마마’ 사장님이 비법을 살짝 귀띔해 주셨거든요.


“아빠 맛있다.” 

“그럼 누가 만들었는데”

“아빠가 만든 카레를 비벼서 두 그릇을 먹기는 처음이야”

“딸이 맛있다고 하니 뿌듯하다”


아내도 거들어 줍니다. 

“맛있다. 색도 좋고”


아빠의 냄비 카레는 싹 비워졌습니다. 

“아빠 내일 아침에도 해줘”

“옥수수가루를 다 먹었는데 어쩌지?”

“그럼 밀가루 넣어서 하자”

“그래 내일은 ‘금요일 아침의 카레’를 만들어 보자” 


집에서 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연암대학교’에 다녀왔습니다. 축산과 원예 계열의 대학이라서 학생들이 기른 샐러드, 계란, 화훼류들의 품질이 좋은 곳입니다. 

버섯과 채소를 사서 돌아오는 길에 “오늘 춥고 화창한데 달달한 카레 어떨까?”

“와 좋아”

집 근처에 있던 ‘델리 마마’(인도 카레 전문점) 사장님이 허리가 아파서 영업을 종료한 지 1년이 넘어가면서 저는 델리 마마의 맛을 재현하기 위해 틈틈이 카레 만들기를 해왔습니다. 어제는 델리 마마와 맛은 다르지만 아빠만의 레시피가 인정받는 시간이었어요.

물론 그전에도 아빠의 카레를 좋아했지만, 김치찌개의 맛을 내기 위해 라면 수프를 슬쩍 넣는 것처럼, 그때는 봉지 카레가 조금 들어가고, 설탕도 넣고 공장에서 만든 재료들이 가미가 되어서 맛있었는데, 이번 카레는 봉지 카레의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에 큰 의미가 있습니다. 


아빠의 카레 레시피입니다. 여기서 양파가 중요해요 그래야 봉지 카레에서 독립이 가능합니다.



재료도 좋고 맛도 좋고, 모양도 좋아야 3박자가 맞습니다. 여백의 미도 보이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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