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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상순 Sep 26.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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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말도 안 돼요.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의 표정은 단호하고 간결했다. 오해라고 하지 않고 모함이라고 하는 그를 빤히 쳐다보았을 때도 흔들리지 않았다. 나는 진실을 전해 들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내가 믿는 것은 나 자신이지 그 사실을 전달해 준 사람은 아니었다. 다만 꼭 해 주고 싶은 말은 있었다.

  

“난 WK가 그 말 하려고 날 만나자는 줄 알았어요.”

 

 “암튼 그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건 틀림없어요.”

 

나는 알겠다며 물러났다. 미소가 오염되지 않도록 일회용 커피 잔을 입에 댄 채 한참 들고 있었다. 내가 착각하고 오해했을 가능성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가끔 지난 일을 소설로 재구성해 놓고 그것을 실제의 기억처럼 믿는 일이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 학교 동기에게 전화를 걸어 과거 건국대학교 집회에 우리 학교가 참여하지 않았다는 것이 사실인지 여부부터 확인해야 할 문제일는지 몰랐다.

  

“이제 가 봐야겠어요. 벌써 시간이 이렇게나 되었네.”

  

나는 진상이 아니라 무법자가 된 느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몸을 일으키면서 일회용 컵들을 모으고 얼룩진 탁자를 휴지로 닦았다. 이만하면 나의 흔적이 대충은 지워진 것 같다며 옷을 꿰고 있을 때였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학생들을 모아 반독재투쟁에 나서야 할 상황에서 학교 하나를 통으로 빼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죠.”

  

그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 있었다. 사실 학교 하나는 아니었다. 내가 소속된 조직은 대부분의 대학에서 소수이고 비주류였는데 어느 한 군데 예외 없이 배제당했다고 들었다. 당시 대학은 계파 간의 갈등으로 서로를 향해 몽둥이찜질을 일삼는 사태까지 심심치 않게 벌어졌다. 내가 건국대학교 문제로 후배들에게는 욕을 먹었지만 선배들에게 문책당하지 않았던 이유와도 연관이 있었다. 물론 이 또한 사실 확인이 필요할 수도 있었다. 요즘은 지구가 둥글다는 것조차 사실 확인이 필요할 때가 있다는 농담은 비단 정치권에만 해당되는 우스갯소리는 아니었다. 서로가 편을 가르고 사람들을 호도해 세력을 모으는 일은 어린 시절 실개천에 의해 마을이 웃뜸 아랫뜸으로 갈라져 있을 때부터 보아 왔던 일이었다.  

  

“만일 그런 일이 어디서라도 있었다면 보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사실 건대 때도 경찰에서 이미 훤하게 상황을 간파하고 있었잖아요.”

  

‘어디서라도’라는 어법이 무척이나 거슬렸지만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가장 많이 애를 쓴 사람은 나 자신이었다. 당시의 주류 입장에서 보면 강동여대는 안이 들여다보이지 않는 구석진 산동네였다. 그러니 더 많이 표현하고 더 많이 드러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꾸준히 해 왔다. 어쨌거나 사람을 두들겨 패서라도 자백을 받아 낼 일은 아니었다. 당사자가 아니라면 하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때 미유가 불쑥 나섰다. 

  

“우리 아빠 또 엄청 쏘아대겠네. 오늘 밤 엔터키에 불나겠어. 진짜, 못 말려.”

  

한 템포 호흡을 건너뛰었지만 나는 무슨 소리냐고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의 대화를 SNS 같은 곳에 올린다는 뜻이라면 주소라도 알려 달라고 말하고 싶었다. 아무것도 못 들은 양 현관문을 나서기에는 그 집에 머무른 시간이 짧지는 않았다.

  

“돈이죠. 정치기부금이나 이웃돕기 헌금 같은 거.”

 

미유가 혀를 찼다. 

  

“우리 아빠 이런 일이 있고 나면 막 쏘거든요.”

  

“이런 일이라면?”

  

“뭐라고 지적당하는 거요. 아빠는 못 참아요.”

  

“인정하는 대신 돈으로 막는다는 건가요?”  

  

마지막 질문은 그가 듣지 못하게끔 미유 가까이 다가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 아이는 “뭐, 대충.”하면서 고개를 까딱거렸으나 그것이 적과의 내통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는지 이내 모은 그릇을 들고 부엌으로 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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