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만약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덕후 미우 Sep 12. 2018

부심

만약 나에게 작은 부심을 가질 수 있다면

나는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는 부심을 가지고 싶다.

나는 하루를 계획대로 실천하는 부지런한 사람이라는 부심을 가지고 싶다.

부심은 지나치면 자만심이 되지만, 정도만 지키면 나를 위한 가장 큰 자신감 혹은 자존감이 된다.


오늘날에는 나에게 부심을 가지는 일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초등학생들이 즐겨 부른다고 하는 노래에는 자기비하와 자살을 말하는 가사가 섞여 있다.

어른들은 요즘 아이들 문화가 이상해졌다고 말하지만, 알고 보면 이런 문화를 만들게 한 건 다름 아닌 지금의 어른임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어른들이 지나치게 '결과' 하나로 아이들을 평가하며 줄을 세웠기 때문이다.


그 결과는 아이들에 따라 나타나는 시험 성적이라는 결과이기도 하고,

사회에서 만들어진 넘을 수 없는 벽을 넘지 못해 만들어진 사회적 격차이기도 하다.

사회적 격차를 임대 아파트와 분양 아파트 혹은 갑과 을의 관계로 느낀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다름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게 아니라 '무조건 갑이 되어야 한다. 너는 을을 무시해도 된다.'라는 식으로 가르쳤다. 차별이 어릴 때부터 너무나 당연해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니 아이들이 안 이상해지는 게 오히려 이상한 거다. 아이들은 이미 어릴 때부터 그러한 가치 판단의 기준을 어른으로부터 배워서 알고 있다. 아이들은 유치원 때부터 부모의 영향을 받아 그룹을 만들어 차별하고, 초등학교를 넘어가기 시작하면 자신보다 조금 못 살거나 모자란 아이들을 괴롭히기도 한다. 여기에 저항하기 위해서 가출, 폭력, 흡연, 음주 등을 하는 학생들은 그야말로 사회의 문제아로 찍혀버리는 거다.


물론, 이 모든 일이 어른이 잘못된 가치관을 아이에게 세습한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른에게 막중한 책임이 있다는 건 절대 부정할 수 없다. 무엇보다 아이들은 어른의 평가 기준에 희생되며 자신을 잃어버려야 했고, 낮아진 자존감은 어른들과 마찬가지로 나보다 조금 못한 사람을 괴롭히며 오는 충족감으로 채울 수밖에 없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렇게 우리 사회는 점점 병들고 있다.


자신을 가지지 못해 자존감이 낮아진 오늘날 현대인은 우울증을 앓는 비율도 높아졌다.

그저 우리가 '나는 그렇지 않아.'라며 부정하고 있을 뿐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문제를 부정하는 게 아니라 문제를 마주할 수 있어야 한다. 마주하지 않는다면, 언제까지고 우리는 나에게 작은 부심조차 갖지 못한 상태에서 '나는 불행해', '아, 죽고 싶다.' 같은 말을 나도 모르게 해버리는 삶을 살게 된다.


지난 화요일(9월 11일)에 방송된 <김제동의 톡투유 2>에서는 '부심'을 주제로 다루었다.

우리가 나에 대해 자랑스럽게 대할 수 있는 작은 부심을 갖는다면, 우리는 조금 더 잘 해낼 수 있을 것이다.

크게 특별하지 않아도 된다. 경차를 몬다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고, 시골에 산다고 기가 죽을 필요도 없다.

오히려 경차이기에 가능한 부심, 시골에 살기에 가능한 부심을 가진다면 분명히 행복해질 수 있다.


그러니 나와 남을 비교하며 평가하는 일을 멈추고, 이제는 나에 대해 작은 부심을 가져보자,

김제동은 말한다. 우리가 남에게 말하지 않고 자신을 조금 공주, 왕자로 대우하는 건 나를 위한 길이라고.

요즘처럼 남에게 상처를 주기 쉽고, 나에게 더 상처를 주기 쉬운 세상에서 적어도 나는 나를 자랑스러워해도 되지 않을까? 그렇게 해야 우리가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리라고 믿는다.


나는 그런 부심을 갖기 위해 오늘도 노력하고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일 축제 한마당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