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김치 한 박스를 담갔다. 최근 손이 아픈 관계로 몇 포기만 담그려 했지만, 배추 15포기가 들어 있는 박스가 1불이라는 가격표에 홀려 한 박스를 샀다. 집에 와 펼쳐보니 같은 땅에서 수확한 것임에도 속의 꽉 참이 모두 달랐고 개중엔 헐거운 것도 몇 개 있다. 반으로 가른 배추의 두께 순으로 소금물에 담가 뺀 후 마른 소금을 뿌려 커다란 비닐봉지에 담는다. 배추가 절여지는 몇 시간 동안 큰 냄비에 찹쌀풀을 만들어 식힌 후 고춧가루만 넣고 30분 정도 불려준다. 그곳에 파를 제외한 야채와 과일 그리고 액젓을 믹서기로 갈아 넣는다. 이렇게 김칫소를 만들면 김치찌개 할 때나 만두 만들 때 지저분하지 않아 좋다. 절인 배추는 낯가림하던 처음과는 달리 서로를 업어주고 업혀있는 모습이 꼭 어미젖을 먹는 돼지 새끼들의 흰 등짝 같다. 쟁반에 절인 배추를 하나씩 올려놓고 김칫소를 발라준다. 덩치 큰 것은 오랫동안 있을 통에, 헐거운 것들은 먼저 먹을 통을 구분하여 보관한다. 배추의 투박한 겉면들은 냄비에 남겨진 양념을 청소하듯 묻혀 김치 맨 위에 덮는다. 이렇게 김치를 만들면 커다란 양동이도 필요 없고 설 거짓 거리도 많지 않다.
같은 환경에서 자랐어도 모양이나 크기가 각각이다. 배추의 두께에 따라 절여지는 시간도 소금의 양도 김치통에서의 위치도 다 다르다 보니 익는 순서 또한 다르다. 헐거웠던 배추가 모든 조건이 열세임에도 누군가의 손길로 인해 새로운 향을 먼저 뿜어 흰 접시에 올려진 모습은 마치 다리 꼬고 앉은 당찬 여성처럼 보였다. 신기하듯 그것을 물끄러미 보고 있으니 나도 누군가의 표 나지 않는 배려를 받으며 여기까지 온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골골하게 자란 내가 지금도 씩씩하게 사는 모습이 가족들은 신기해하면서도 고마워한다. 허약해서 더 대우받고 자란 나에게 형제들은 부모에게 투정을 부리면서도 나를 많이 아껴줬다. 어디 형제들뿐이겠는가 나의 행복을 위해 배려를 해준 나도 모르는 손길이 아주 많을 것이다. 몸은 골골해도 정신이 골골하지 않았던 건 많은 이들의 배려 덕일 것이다.
김치 담글 때면 유독 친정엄마가 보고 싶다. 어릴 적 식구가 많다 보니 값싸고 양이 많은 김치를 자주 담그셨다. 김장철엔 수육과 굴을 배추에 싸서 입에 넣어 주면서 오물거리는 우리들의 입을 보고 행복해하시던 모습이 지금도 선하다. 친정엄마가 살아생전 이곳에 다녀가신 적이 두 번 있다. 그때마다 배추김치와 총각김치를 몇 겹의 비닐봉지로 포장해서 갖고 오신 분이다. 밥도 없이 김치를 잘 먹는 나를 위해 식구들의 만류에도 고집을 피워 갖고 오셨다. 주름진 손으로 포장을 뜯어 나에게 내민 플라스틱 속 김치는 이미 조금 익어 쉰내가 났다. 그 냄새는 모정의 향을 가득 품은 붉은 장미 꽃다발 같았다. 나는 기쁘면서도 가시에 찔린 것처럼 눈물이 났었다. 손이 자주 아픈 관계로 음식 만들 때마다 아이들은 조금만 하라 잔소리한다. 그럴 때면 예전 엄마에게 했던 잔소리와 다르지 않아 웃음이 나면서도 조금은 서글프다. 그런 소리 안 들으려 아이들이 없는 시간에 김치를 담그는데 아마 엄마도 그러셨을 것이다.
예전만 한 체력도 아니고 아이들이 직접 만들어 먹는 일이 종종 있어 가사노동이 줄었다. 나이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 넉넉한 시간이 낯설고 기대도 된다. 혼자서도 잘 지내는 방법이 무엇인가? 앞으로 더 많아질 혼자 있음에 대응하려면 외로움이 아닌 자발적 고독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 하고도 비교하지 않고 또 견주 하지도 않게 살다 보면 주관적 행복을 맛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늙고 싶다. 헐겁던 배추가 누군가의 손길을 받아 결국엔 유산균이라는 유익한 향을 내듯, 나 또한 유익한 사람 향을 낼 수 있다면 더없이 좋겠다. 배추든 사람이든 맛있게 잘 익는다는 건 쉬운 건 아니지만 꿈이라도 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