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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 Won Aug 16. 2020

효도신발 SAS

  코로나 19가 장기화되자 폐점을 준비하는 대형 백화점에서 폭탄 같은 세일을 하고 있다.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을 미리 사두려고 자주 온라인 쇼핑을 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크리스마스는 학교 선생님, 우체부 그리고 스쿨버스 운전자에까지 선물을 주고받는다. 물론 가족과 이웃 그리고 동료와도 선물교환을 많이 한다. 이렇게 많은 양의 선물을 12월에 다 구입하는 건 재정적으로도 힘이 들지만 마땅한 선물을 고르는 게 어려워 보통 6개월 전부터 준비한다. 하루가 멀다 하고 폐업하는 업체가 많아지다보니 물건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보니 선물 외에도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온라인 쇼핑을 하는 날이 많아졌다. 얼마 전 인터넷으로 구두를 쇼핑하고 있는데 눈에 익은 구두가 내 눈을 사로잡았고 그 사진을 보자 나는 그만 눈물이 쏟아졌다.


  20년도 더 되었을 것이다. 그때 한국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제일 갖고 싶은 신발 중에 수입품인 SAS 신발이 있다. 회사 이름 대신 효도신발로 더 알려졌을 만큼 가볍고 편한 신발로 인기가 많았다. 이 구두는 내가 25년 전쯤 엄마에게 사드린 것 중 하나다. 나는 엄마의 유품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구입하면서, 그 당시 원하던 모델이 없어 아빠에게 못 사드린 흰색 구두도 찾아봤지만 없다. 내가 이 신발을 쉽게 기억한 이유는, 부모님은 내가 보내드린 사스 신발을 동네분들에게 자랑할 때만 신으시고 평소에는 아끼느라 잘 신지 않으셨다. 그런 모습이 속상해 한국에 갈 때면 그 제품을 한벌씩 사갔다. 발이 편한 신발을 신은 것보다 막내딸이 사드린 효도신발을 자랑하고 싶으셨던 것 같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아버지가 애지중지 하던 사스 신발은 보이지 않았고, 2년 전 돌아가신 엄마의 유품 속에서도 그 신발은 보이지 않았다. 신발을 볼 때마다 막내딸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셨다는 그 신발이 보이자 나는 엄마를 만난 듯 반가웠다.


  2주 후 주문한 신발이 도착했다. 상자 속 자주색 신발 속에 있는 종이를 꺼낸 후 두 손을 넣었다. 엄마의 속살처럼 보드랍다. 다시 두발을 넣자 내 발임에도 엄마의 발이 기억났다. 다른 모델보다 이것을 아껴 신으셨던 엄마는 이 신발을 현관에서 제일 잘 보이는 곳에 두고는 집에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보면서 빙그레 웃었을 것이다. 검은색은 자주 신으셨는데 왜 이 신발은 아꼈는지 잘 모르겠다. 엄마는 아빠가 떠난 후 한동안 혼자 살았다. 그 후 딸네에서 또 아들 집에서 마지막엔 양로원으로 옮기면서 엄마의 물건은 많이 사라졌다. 아픈 분이니 신발도 옷도 잘 사용하지 않은 탓도 있지만, 사용 못한 이유가 더 많다. 언니는 가끔 언니가 사준 유품이 된 엄마의 옷을 보면서 그리워한다는데 난 아무것도 없다. 내가 엄마의 사망 소식을 듣고 한국에 갔을 때 엄마의 유품이 오빠의 집 베란다 한쪽에 다른 물건들과 함께 있었다. 작은 보따리인 그것을 봤을 때의 슬픔은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 돌아가신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매정하게도 엄마의 유품은 다 처분되고 사십구재에 태어질 옷 몇 가지뿐이었다. 엄마의 유품이 태어질 옷가지가 전부인 것이 마음 아펐고 또한 방이 아니고 베란다에 있는 것이 슬펐다. 그래도 나는 아무런 서운함을 내 비칠 수가 없었다. 외국에 사는 자식은 곁에 있는 자식보다 물질적으로 마음적으로 아무리 잘했어도 부모님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한 불효 때문에 부모님 일엔 간섭 안 하는 게 도리라 생각하며 살았기 때문이다.


  효도신발 SAS 가 비록 엄마의 유품은 아니더라도 똑같은 신발이 아직도 백화점에서 거래가 된다는 것이 신기하고 감사하다. 아침저녁으로 신발을 신어 보기도 하고 바라보기만 하느라 효도신발 SAS는 아직도 안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다음 달이면 엄마의 기일이 다가오는데 그때까지만이라도 안방에서 엄마가 이 신발을 아꼈듯 나도 아껴주고 싶다. 아빠에게 사드리지 못한 백구두(아빠는 이렇게 표현하셨다)가 늘 마음에 걸렸고, 엄마의 유품이 없어 속상했는데 이 신발을 사고 보니 조금은 마음의 짐이 벗은 것처럼 편안하다. 좋은 신발을 신으면 좋은 곳으로 데려간다는 말이 있다. 나는 이 신발을 신고 좋은 곳으로 다닐 것 같다. 내가 사드린 효도신발이 결국은 나에게 돌아와 내가 효도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부모님이 더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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