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발효의 시간 – 세계관과 자기만의 리듬
안녕하십니까, 브런치 작가님들!
지난 한 주 동안 제가 중국에 머무르며 일정이 다소 바쁘기도 했고, 현지 인터넷 환경에도 문제가 있어 이번 주 강의를 길게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이 점 너그럽게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러나 오늘의 강의는 분량은 짧지만,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도 핵심적이고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10월11일 글빵연구소 서울 정모(졸업작품 발표회)에 오시는 분들과 부득이 참석 못하시는 분들이라도 졸업 작품을 링크로 제출해 주시는 분들께 다음의 선물을 랜덤으로 하나씩 드릴예정입니다!
고급 책갈피입니다! 한 번이라도 글빵연구소를 수강, 청강, 도강했던 모든 분 다 가능합니다. 글빵연구소 졸업작품으로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글의 링크를 걸어주시면 선물을 보내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졸업작품 중에 세 분의 우수작품을 뽑겠습니다.
브런치에 글을 10편만 올려도, 독자는 ‘이 사람의 글은 ○○ 같다’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그것이 곧 당신의 세계관입니다. 세계관은 독자가 만들어주는 이름이기도 합니다. 내가 의도하지 않았는데도 독자는 글에서 일관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세계관’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너무 의식적으로 거대한 세계를 설계하려고 애쓸 필요가 없습니다. 오히려 내 안에서 자연스레 흘러나오는 취향, 반복되는 주제, 자주 사용하는 비유가 쌓이면 그게 바로 ‘나만의 리듬’이 됩니다.
예시:
어떤 작가는 늘 ‘엄마’, '가족'이 삶에 주는 가치라는 주제로 돌아갑니다.
어떤 작가는 늘 ‘길 위의 풍경’을 기록합니다.
또 다른 이는 ‘색채’를 반복적으로 다룹니다.
그 결과 독자들은 “이 작가는 늘 ○○를 말하는구나”라는 인상을 갖게 됩니다. 이것이 세계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관은 거창한 철학이나 이론에서 시작되는 게 아닙니다. 오히려 가장 작은 ‘나의 시선’ 하나에서 시작됩니다. 이를테면 어떤 이는 매일 출근길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는 순간을 특별히 기억합니다. 누군가는 하얀 커피잔에 담긴 커피의 빛깔을 매일 다르게 본다고 말합니다. 이런 사소한 시선이 쌓이면 그것이 바로 글 속의 ‘세계관’이 됩니다. 세계를 다르게 보는 눈이 글을 다르게 만드는 것이지요. 한 줄기 빛을 바라보는 방식, 한 장면을 기억하는 방식이 곧 세계관의 씨앗이 됩니다. 저는 그것이 바로 작가만의 철학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시:
“모든 시작은 검은색이었다”라는 한 문장으로 출발해 흑색의 문화적 상징을 탐구한다면, 그것이 곧 세계관이 됩니다.
“나는 늘 작은 자동차를 사랑한다”로 시작한다면, 실용성과 소박함을 중시하는 세계관이 만들어집니다.
“저녁의 노을은 늘 하루의 끝을 알린다”는 보편적 서술을 “저녁노을은 어머니가 밥을 짓던 부엌 불빛 같다”라고 쓰는 순간, 개인적 경험과 감각이 하나의 세계관을 빚어냅니다.
작가의 세계는 크고 거창한 데 있지 않고, ‘내가 본 세상은 이런 모양이다’라는 작은 고백에서 시작됩니다. 결국 "작가의 세계관이란 작가의 고유한 창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철학"입니다.
세계관은 사건보다 ‘사람’에서 빛을 발합니다. 특히 그 사람이 바로 ‘나’ 일 때, 글은 살아납니다.
사소한 에피소드를 쓸 때, 독자는 단순한 정보보다 ‘당신이 그 순간을 어떻게 느꼈는가’를 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문장마다 ‘나’의 흔적이 배어 있어야 해요. 글을 쓸 때 ‘나의 그림자가 이 문장 속에 드러나는가?’를 체크해 보세요. 그 작은 흔적이 글의 리듬을 만들고, 결국 세계관을 단단하게 합니다.
작은 장면을 쓰더라도 반드시 그 안에는 ‘나의 흔적’이 남아야 합니다. 사실만 나열된 글은 누구의 글인지 알 수 없지만, 그 장면을 바라보는 나의 감정과 기억이 스며드는 순간, 글은 작가의 것이 됩니다.
예시:
“봄비가 내렸다”는 문장은 풍경 묘사에 그치지만, “봄비가 내리는 날이면 나는 늘 우산을 접고 빗속에 서 있었다”라고 쓰면, 독자는 그 순간 ‘당신’을 만납니다.
사실의 기록: “길가에 국화가 피었다.”
세계관을 담은 글: “길가에 국화가 피었다. 그 하얀빛을 보는 순간, 오래전 가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던 날이 떠올랐다. 꽃향기는 곧 이별의 냄새였다.”
=> 같은 장면이라도 ‘나’의 경험과 해석이 들어가면 개인의 리듬과 세계가 생깁니다.
세계관은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습니다. 발효처럼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쓴 글과 내일 쓴 글이 서로 다른 리듬을 가지다가, 어느 순간 일정한 흐름을 가지게 됩니다. 꾸준히 쓸 때만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예시:
카프카의 일기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에세이를 읽다 보면, 한 편만으로는 잘 보이지 않던 세계관이 반복과 변주 속에서 드러납니다.
마지막으로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세계관은 ‘설계’라기보다 ‘발효’라는 점입니다. 조급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자기만의 속도로, 자기만의 언어로 써 내려가면, 시간이 당신의 글을 익혀줍니다. 처음에는 뒤죽박죽 같아 보이더라도, 시간이 지나면 글의 결이 일정한 패턴을 띠게 됩니다. 발효된 술이 처음보다 깊고 진해지듯, 글의 세계도 시간이 키워줍니다.
예시:
초반에는 여러 소재를 뒤섞어 썼는데, 1년 후 돌아보니 대부분이 ‘삶의 균형’에 관한 이야기였음을 깨닫게 됩니다.
매번 다르게 쓴 것 같은데, 결국 독자가 말합니다. “당신 글은 언제나 잔잔한 파동 같아요.”
그 순간, 당신은 이미 세계관을 갖춘 작가가 된 것입니다.
세계는 한 편의 글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세계관은 발효처럼 시간이 필요합니다. 오늘 쓴 한 문장, 내일 쓴 또 다른 문장이 겹겹이 쌓이면서 비로소 작가만의 우주가 탄생할 것입니다.
예시:
하루는 ‘창문 틈의 바람’을 기록하고,
다음 날은 ‘이른 새벽의 물소리’를 기록하며,
그다음 날은 ‘늦은 밤 책상 위의 그림자’를 기록한다면…
이 파편들이 모여 결국 ‘나의 세계는 작은 소리와 빛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세계’라는 고유한 리듬을 만들어냅니다. 쓰지 않는다면 세계는 멈추지만, 쓰는 이를 통해 세계는 확장됩니다. 멈추지 않고 쓰는 사람만이 글 속에 우주를 만들 수 있습니다.
많은 글이 사건의 나열에서 끝납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가”만 기록하면 그건 일기나 보고서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문학은 사건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보는 작가의 각도에서 탄생합니다.
예시:
사건의 나열: “나는 친구와 다퉜다. 화가 났다. 집에 왔다.”
시선이 들어간 문학적 글: “친구와 다툰 날, 집에 오는 길의 가을바람은 유난히 차가웠다. 사실, 바람이 차가운 게 아니라 내 마음이 닫혀 있었던 것이다.”
=> 독자가 궁금해하는 것은 사건이 아니라, 그 사건을 바라본 나의 시선입니다.
그 시선이 곧 나의 세계관을 보여주고, 독자와 공명하게 만듭니다.
어쩌면 오늘 다룰 이 부분이, 글빵연구소 강의 중 가장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흔히 클라이맥스 기법은 소설이나 시나리오 대본에서만 쓰이는 장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저는 짧은 에세이나 수필에도 이 기법을 적용해, 저만의 글쓰기 방식을 세워왔습니다. 실제로 저는 클라이맥스 기법을 활용하여 여러 공모전에 수상을 할 수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습니다. 그 과정에서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결코 사소한 기법이 아닙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글의 심장을 뛰게 하는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입니다.
그러니 오늘의 강의는 비록 짧지만, 반드시 자기 것으로 익히시길 바랍니다. 글을 쓰는 내내, 한순간의 파동과 정점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를 늘 의식해 보시길 바랍니다. 사실 이것 하나만 제대로 깨우치셔도, 그동안 글빵연구소에서 수개월간 쌓아온 배움의 값은 충분히 한다고 생각합니다.
에세이라도 평평하게 이어지면 독자는 쉽게 흩어집니다. 짧은 글 속에도 반드시 "고조–정점–여운"의 파동이 있어야 합니다. 한순간의 정서적 클라이맥스가 글의 심장을 뛰게 합니다.
예시:
초고: 오늘도 남편과 싸웠다. 아이도 옆에 있었다. 말싸움이 거칠어지며 무심코 나는 손을 휘둘렀다. 내 손에 아이의 어깨가 맞았다.
파동 있는 글:
오늘도 남편과 다투었다. 사소한 말이 불씨가 되어 서로 목소리가 커졌다. 아이가 언제부터 있었는지 옆에서 조심스레 “그만해”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듣지 못했다. 손짓하며 서로를 몰아붙이던 순간, 내 손이 허공을 가르다 아이의 어깨에 세게 치고 말았다. 아이가 움찔하며 놀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 순간, 싸움은 멈췄다. => 클라이맥스
아이를 위해 더 열심히 살아야 한다고, 서로 더 많이 희생했다고 소리치던 우리였다. 그러나 정작 아이를 보지 못한 채 아이에게 상처를 남겼다. 그날의 통증은 내 마음에 더 깊은 흔적을 남겼다.
고조: 부부의 다툼이 격해지며 긴장감 상승.
정점: 아이의 어깨에 손이 닿는 순간 – 의도치 않은 상처와 충격.
여운: 싸움의 이유를 되짚으며, 진짜 중요한 것은 아이였음을 깨닫는 성찰
이런 구조와 클라이맥스의 리듬이 독자를 멈춰 서게 만듭니다. 제가 처음 공모전에 도전했을 때, 수필과 산문이라고 해도 이런 클라이맥스가 있으면 감동과 여운이 있지 않을까 고민을 많이 했고 클라이맥스를 살리는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이 원리 하나만 자기 것으로 만든다면, 여러분이 그동안 글빵연구소에서 흘린 시간과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윗부분과 이 부분에서 총 두 번 강조,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숙제는 지난주와 같습니다. 지금까지 미야의 글빵연구소에서는 글의 구조를 세우는 법, 상징을 활용하는 법, 도입부를 낯설게 쓰는 법, 비문 고치기, 문장의 복문구조와 병렬구조의 오류 검토, 생경한 글쓰기, 징검다리 문장 놓기, 글맥 잇기, 퇴고의 기술, 문법적 포인트 등 다양한 주제를 함께 배워왔습니다. 자! 이제는 배운 내용을 복기하시어 미야의 글빵연구소 1기 졸업작품을 준비해 주시기 바랍니다. 에세이도 좋고, 수필도 좋고, 단편소설, 평론도 다 좋습니다. 형식의 제약은 없습니다.
마지막 강의가 몇 강에서 끝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졸업작품을 먼저 준비해 두시는 것이 순서일 듯합니다.
그렇게 해야 9월 30일 화요일에 열릴 18강에서 졸업작품 숙제 검토 시간을 가질 수 있습니다. 덧붙여 말씀드리자면, 18강이 곧 종강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종강일은 저도 아직 미정으로 추후에 확정되면 알려드릴 예정입니다.
안국역 3번 출구에서 436m
너무 예쁜 창덕궁 뷰의 공간을 대여하였습니다. 저녁 5시까지 대여를 했지만 혹시나 이 공간의 뒷타임 예약이 안 되어 있다면...^^ 저녁까지 대관할 지도요. ㅎㅎ
이 날 참석하시는 분들은 자신의 에세이, 단편소설, 수필, 평론 아무거나 다 좋습니다. 가지고 15부 정도 프린트해서 가지고 오십시오. 혹시 미리 참가신청 못하신 분들 중에 추가로 참가하시고 싶으신 분은 알려주세요. 글빵연구소 수강생, 청강생, 도강생 모두 상관없습니다. 오시고자 하는 열의가 있다면 댓글을 남겨주세요.
. 10월 3일(금) 개천절부터 9일 한글날까지는 추석이 이어지는 긴 연휴입니다. 이어서 10일 금요일 하루 근무 뒤 곧바로 11일 주말이 닿아, 아마 많은 분들이 이미 가족과 함께할 소중한 계획을 세우셨을 텐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빵 졸업식 작품 발표회에 함께해 주시겠다고 마음을 모아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졸업작품을 벌써 제출해 주신 분이 몇 분 계십니다. 10월 11일 서울에서 열리는 졸업작품발표회에서 시상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호주아재작가님 졸업작품 - 지금까지의 글빵연구소 강의를 총망라하여 글을 쓰고, 그에 대한 이론 정리를 하셔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이일일작가님 졸업작품- 오랜만에 숙제 제출해 주셨네요! 결코 쉽지 않았을 텐데 긴 호흡으로 본인을 담아낸 글이네요.
블라썸도윤작가님 졸업작품 - 훌륭히 글빵수업의 마무리를 짓는 감동의 작품이었습니다.
조선여인작가님 졸업작품- 늦게 제출해 주셔서 제가 제대로 분석을 못했네요. 낮에 읽어볼게요.
조종인 작가님 15강 숙제 - 평론가다운 작가의 고유한 시선을 담은 글입니다.
고요한동산 작가님 졸업작품 - 삶 속에서 의미를 잘 건져 올린 좋은 수필입니다.
이디뜨 작가님 졸업작품 - 늦게 제출해 주셔서 제가 제대로 분석을 못했네요. 낮에 읽어볼게요.
https://m.cafe.naver.com/app/CafeInviteBridge.nhn?ticket=a5360176320c17d8e2325f1abab445cb
오늘도 글빵 맛있게 드셨습니까? 출석호명은 오늘도 생략합니다. 수업이 끝난 뒤 자발적으로 댓글에 출석체크와 오늘 수업의 감상평을 남겨주세요. 라이킷도 꼭 부탁드립니다. 여러분의 작은 응원이 저에겐 큰 힘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