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yakonohime Apr 29. 2020

16. 아빠, 사랑해요.

아빠와의 이별

2020년 1월 26일 (일)


7시 30분경 집을 나서서 엄마네로 간다. 엄마가 만들어 놓았다는 야채수프를 가지고 병원에 가기 위해서다. 야채수프는 무, 무청, 당근, 우엉, 표고버섯을 분량에 맞게 푹 끓여 만드는데, 이 수프가 암을 치료하는 효능이 있다고 하고, 실제로 효과를 봤다고 하는 글을 인터넷에서 많이 보았다. 

“뭐하러 이렇게 일찍 가?”

“아빠 아침에 야채수프 드릴라고.”

병원에 도착하니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난 상태였다. 아빠는 우유만 하나 드셨다고 한다.

“아빠, 원래 우유 잘 안 드셨잖아요.”

“집에서는 안 먹었는데, 병원에 와서 우유만 먹게 되네. 우유가 그나마 몸에 받는 것 같아.”

“아빠, 엄마가 만든 야채수프 가져왔어요. 몸에 좋다니까 조금만 드셔 보세요.”

“지금 배가 더부룩해서 못 먹을 것 같은데.”

“이건 약이니까 드셔야 해요.”

나는 종어 컵에 반을 따라 억지로 드시게 한다.

아빠의 발을 보니 각질이 많이 생겨 있다. 나는 물티슈로 아빠의 발을 꼼꼼히 닦아 주고 로션을 듬뿍 발라 준다. 

“집에 있을 때는 내가 매일 따뜻한 물에 발 담갔다가 비누로 닦고 크림 바르고 했는데 여기 와서 그걸 못하네. 집에서는 매일 아침 좌욕도 했었는데…”

“아빠, 치료받고 좀 나아지면 집으로 가요.”

잠시 후 아빠 전화벨이 울린다. 큰 외삼촌 전화다. 내가 복도로 들고나가 받는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삼촌, 나 지혜야. 아빠 전화 내가 받았어. 아빠가 지금 아프셔서…”

“아빠가 아프셔?”

“모르고 전화한 거야? 아빠 지금 병원에 입원해 계셔.”

“어디가 아파서 입원을 하셨어? 나는 설이라 인사드리려고 전화한 건데…”

눈물이 왈칵 치솟았다. 

“아빠가 말기암이래. 나도 그 말 듣고 놀라서 어제 한국에 왔어.”

“지난달에도 이모부들이랑 만나서 같이 점심 먹었는데 갑자기 무슨 말 하는 거야? 엄마한테 전화해 보게 일단 끊어.”

나는 화장실에 가서 눈물로 얼룩진 얼굴을 닦고 병실로 돌아온다. 

“삼촌이 설이라 인사하려고 전화했대요.”

잠시 후에는 아빠와 친하게 지내시는 친척 아저씨 전화가 왔다. 

“아빠, 일선이 아저씨 전화인데요, 받아 보실래요?”

“그래, 이리 줘 봐.”

아빠한테 전화를 건네준다.

“나 지금 병원에 있어… 간암 2기에서 3기래… 치료받아 봐야지 뭐.”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다. 그래도 말기암이라고 절망하고 계시는 것보다 나으려는 의지를 가지셔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나저나 이렇게 식사를 안 하시면 어떡해요?”

“엄마 올 때 곰탕 한 그릇 사 오라고 했어. 곰탕 국물은 좀 먹을 수 있을까 해서. 이 근처에 내가 몇 번 갔던 집이 있어.”

“그래요? 그럼 지금 저희가 사 올게요.”

그 사이 민준 아빠가 병원에 와 있었던 것이다.

“엄마가 오는 길에 사 온다고 했어. 엄마가 사 오게 둬.”

“아니에요. 우리가 얼른 가서 사 올게요. 잠깐만 혼자 계세요.”

우리는 당장 나갔지만 아빠가 말한 곰탕집은 설 연휴라 영업을 하고 있지 않았다. 여기저기 근처의 문 연 식당을 돌아다녔으나 결국 곰탕은 살 수 없었고, 대신 갈비탕을 포장해 갔다.

“아빠, 아빠가 말한 곰탕집이 문을 안 열어서 갈비탕을 사 왔어요. 곰탕은 다음에 사다 드릴게요. 지금 따뜻할 때 조금 드릴까요?”

“그래, 국물만 조금 줘 봐. 거기 종이컵에 따라서.”

아빠는 종이컵에 반쯤 담긴 갈비탕 국물을 여러 번에 걸쳐 천천히 드신다.

“입맛은 하나도 없는데, 뭐라도 먹어야 할 거 같아서 억지로 먹는 거야.”

“그럼요. 뭐라도 드셔야죠. 다른 거 또 생각나는 거 있으면 언제든 말씀하세요.”

“국물 조금만 더 먹어 볼까?”

반가운 마음으로 얼른 국물을 조금 더 덜어서 드린다.


“지금 속이 너무 답답한데 복수 좀 빼줄 수 없냐고 물어봐.”

“알았어요.”

안타까운 마음으로 오늘 마침 당직을 서고 있던 주치의한테 간다.

“복수는 연휴 끝나는 화요일에나 뺄 수 있다고 듣긴 했는데요, 지금 아빠가 너무 답답해하셔서요. 혹시 오늘 좀 빼주실 수는 없나요?”

“복수 빼는 게 간단한 게 아니에요. 영상의학과에서 영상 보면서 주사 바늘을 꽂아야 해요. 지금 연휴 기간이라 담당자가 없고요, 제가 리스크를 질 수도 없어요.”

“그럼 아빠가 변을 잘 못 보신다고 하던데, 혹시 변을 못 봐서 더 답답할 수도 있을 테니, 관장이라도 해주시면 안 될까요?”

“관장도 안돼요. 변비약은 처방해 드릴 수 있어요. 변비약을 처방해 드릴게요.”

아빠한테 실망스러운 소식을 전한다.

“아빠, 어떡해요. 지금 설 연휴라 복수 뺄 수 있는 사람이 없대요. 화요일에나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화요일까지 어떻게 기다리냐? 관장은 해준대?”

“관장도 안된데요. 대신 변비약 주겠대요.”

“어휴…”

아빠가 힘들어하시는데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어서 속이 무척 상했다.

“내일부터 항암 치료한다고 했으니 치료받으면 좀 나아지겠죠. 아빠 조금만 더 참아봐요.”

이때만 해도 우리 모두 항암 치료가 시작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항암 치료를 받으면 어떤 식으로든 증상이 완화될 거라고 잔뜩 기대하면서…

엄마와 오후에 교대를 했고 엄마가 있는 동안 외삼촌을 통해 소식을 들은 이모, 이모부 등이 면회를 왔었으나 병원 측 통제로 오래는 못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5시 30분경 병원에 도착했는데 엄마가 그전에 집에 가서 엄마를 만나지 못했다. 문제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유행으로 오후부터 병원 출입 통제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출입증이 있어야 어느 때고 출입이 가능한데, 엄마가 하나밖에 없는 출입증을 집에 가지고 가서, 우리가 병원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행히 6시부터 안내 데스크에 접수를 하면 면회가 가능하다고 했다. 우리는 6시까지 밖에서 기다렸다가 병원으로 들어갔고, 8시경까지 병실에 있었다. 

“아빠, 야채수프 좀 또 드셔 보세요.”

“지금 배가 빵빵해서 아무것도 못 먹겠어.”

아빠는 많이 답답해하고 계셨고 나는 더 이상 권할 수가 없었다. 금요일 밤에 주문한 펜벤다졸의 배송 상태를 체크해 보았지만 아직 미국에서 출발도 안 한 상태로 조회되었다. 하루하루가 초조했다.

이전 01화 15. 아빠, 사랑해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