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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akonohime Apr 28. 2020

15. 아빠, 사랑해요.

아빠와의 이별

2020년 1월 25일 (토)


“근데 아빠, 이렇게 병원에 계속 누워 있으면 심심하지 않아요? 제가 성민이 아이패드에 영화라도 몇 개 담아 올까요?”

“그런 거 지금 못 봐.”

“그럼 신선한 바람이라도 좀 쏘이는 게 좋지 않아요? 제가 부축해 드릴 테니 천천히 걸어 다녀 보실래요?”

“지금 어지러워서 못 돌아다녀.”

“그럼 휠체어라고 타고 가요. 제가 밀어 드릴게요.”

“나중에…”

이때만 해도 나는 아빠가 얼마나 심각한 상태인지 깨닫지를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활기차고 건강했던 아빠의 모습만을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빠, 근데 지금까지 아픈 거 말도 안 하고 참고 있었던 거예요?”

“얼마 전부터 소화가 잘 안돼서 동네 병원에 다녔는데 소용이 없더라.”

“그 전에는 아픈데 없었어요?”

“작년 여름에 혈변을 본 적이 있어. 그때 무서워서 이 병원에 와서 MRI를 찍었는데 별 이상 없다고 1년 뒤에 다시 찍어 보자고 해서 예약해 놨지.”

상황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반년 전만 해도 아무 이상이 없었는데 갑자기 말기암이라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아빠 지금은 어디가 제일 아파요?”

“배가 아프고 복수가 자꾸 차서 답답해.”


나는 복수에 대해 인터넷에서 검색을 해본다. 희망적인 내용은 거의 찾을 수 없었지만 야채수프를 먹고 도움을 받았다는 암환자 보호자들의 글을 보았고, XX 도라지를 먹고 복수가 치료되었다는 글도 보았다. 야채수프 만드는 법을 검색해서 엄마와 공유한다. 재료를 구해 오늘 밤에 만들기로 한다. XX 도라지는 민준이 아빠한테 주문을 부탁한다. 하지만 설 연휴라 배송이 빠르진 않을 거라는 사실이 걱정된다.


나는 아빠한테 희망적으로 들리는 메시지를 전한다.

“아빠, 야채수프라는 거 먹으면 복수 차는 증상이 좀 나아질 수 있대요. 엄마가 오늘 만들어 준다니까 맛이 어떨지 모르겠는데 내일부터 열심히 먹어 봐요.”

아빠가 잠시 천장을 보다가 다시 우리를 보고 말한다.

“내가 지금까지 아무렇게나 살진 않았는데… 열심히 산 거 같은데… 나 좋다는 사람들도 많아.”

“어휴, 장인어른, 그럼요. 장인어른 열심히 사셨죠.”

“그런데 성민이가 걱정이야. 엄마도 집에서 살림만 해서 세상 물정 잘 모르고…”

성민이는 20대에 다니던 회사를 그만둔 이후 스스로 밥벌이를 못하고 여태 엄마 아빠와 한 집에서 살고 있는 우리 집의 아픈 손가락이다.

“성민이는 나중에 제가 데리고 살아야죠 뭐.”

“장인어른, 걱정하지 마세요. 성민이 처남이랑 장모님 저희가 잘 챙길게요.”

우리가 나을 수 있다고 했는데도, 아빠는 이미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고 있던 것이었을까?


잠시 후에 호주에 사는 막내 동생 성훈이가 연락을 했다. 복도에 나가 전화를 받는다.

“좀 전에 집에 전화했더니 아빠 병원에 입원했다고 하시던데 이게 무슨 소리야?”

“아빠가 췌장암 말기래. 오래 못 사실 거래.”

다시 눈물이 쏟아진다.

“우리 10월에 한국 갔을 때 아빠 괜찮아 보였는데…”

“여기 있는 사람들도 다 놀라고 있어. 나도 그래서 온 거고. 내가 와 있으니까 너는 일단 걱정 많이 하지 말고, 거기서 네 일이나 잘하고 있어.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할 테니까.”


오후에 엄마가 병원에 왔고 나는 집에 가서 좀 쉬다가 6시쯤 다시 민준이 아빠와 병원에 갔다. 많은 양을 드시지는 못했지만, 아직까지는 이온 음료를 드리면 냉면 육수 맛이 난다고 미소 지으셨고, 딸기도 4-5알씩 드시기도 해서 당시 상황을 아주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던 것 같다. 

“아빠, 이 통에 딸기 씻어서 담아 놓았어요. 그리고 빨대컵에는 이온 음료 따라 놓았고요. 이따 목마를 때 드세요.”

딸기와 물과 이온 음료를 아빠 손이 닫는 위치에 놓는다.

“그래, 딸기는 냉장고에 넣어. 시원한 게 먹고 싶으니까. 그리고 피곤한데 얼른 가서 쉬어라.”

우리는 병원이 허락하는 시간이었던 8시까지 아빠 옆에 있다가 아빠한테 내일 다시 오겠다고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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