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의 이별
오늘 11시경 항암 치료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들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병원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오늘부터 출입증이 있어도 보호자는 한 명만 들어갈 수 있도록 병원 입구에서 통제를 하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의 여파였다. 민준이 아빠를 집으로 보내고 내가 들어갔다.
“아빠, 저 왔어요. 좀 어때요?”
“오늘 아침에 관장해주더라.”
“관장 안 해 준다고 했는데… 그런데 관장하고 나니까 좀 편해요?”
“조금 시원해진 거 같아.”
“다행이네요.”
나는 간호사에게 간다.
“오늘 11시에 항암 치료 시작하는 거 맞죠?”
“아뇨. 오더 받은 거 없는데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오늘부터 치료할 거라고 들었는데요.”
“저는 오더 받은 게 없어요. 주치의 선생님이랑 체크해 보셔야 할 것 같아요.”
주치의 선생님한테 가서 묻는다.
“저 선생님, 오늘부터 항암 치료 시작할 거라고 들었는데 간호사 선생님은 모르고 계시네요?”
“오늘 못해요. 염증 수치가 좋아져야 치료를 시작하는데 아직 수치가 안정적이지 않아요. 좀 더 지켜봐야 할 거 같아요.”
“담당 교수님이 오늘부터 시작할 수 있을 거라고 하셨다던데…”
“남자 보호자분께 이미 말씀드렸어요. 수치가 좋아져야 시작할 수 있다고. 가족분들끼리 대화를 안 하시나 봐요.”
약간의 짜증이 섞인 목소리다. 나는 더 이상 시간을 뺏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겸연쩍은 웃음을 지으며 이야기한다.
“저희가 선생님처럼 의학 지식이 있는 게 아니라 한번 들어서 잘 이해도 안 되고, 그래서 자꾸 같은 질문을 드리게 되는 거 같아요. 바쁘신데 죄송합니다.”
사실은 자주 이야기를 하면 의료진들이 우리 아빠한테 신경을 좀 더 써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 이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았기 때문에 남편이나 엄마가 아닌 전문가들로부터 직접 다시 듣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나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항암 치료라도 시작하면 조금이라도 상황이 개선될 거라 생각하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치료 시작 조차 못한다니, 아빠한테 이 사실을 어떻게 이야기한단 말인가?
“아빠, 오늘 항암 치료 안 하나 봐요.”
“안 한데? 왜?”
“염증 수치가 좀 더 좋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한대요.”
아빠가 말씀은 안 하셨지만 내 쪽으로 등을 보이고 돌아 눕는 걸 보니 속이 많이 상하신 듯했다.
“아빠, 야채 스프라도 드세요. 그리고 XX 도라지가 면역력을 높여 준다고 해서 그거 주문했어요. 배송되면 그것도 먹어봐요.”
“야채수프는 못 먹겠어. 맛이 이상하더라.”
“약으로 먹는 거니까 조금만 드셔 보세요. 이거 먹고 좋아진 사람들이 많대요.”
억지로 조금 드시게 한다.
“팔다리라도 좀 주 물어 드릴까요?”
어딘가에서 계속 누워 있는 환자들의 팔다리를 주물러 주는 것이 환자들의 기분 전환에 도움이 된다고 읽은 것 같다.
“하지 마. 의사가 팔다리 주무르면 안 된다고 하더라.”
정말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없구나 싶었다. 나는 따뜻한 물수건으로 아빠 얼굴, 손을 닦아 드리고, 물티슈로 발을 닦은 후 로션을 듬뿍 발라 드린다. 발만 아주 약하게 주무르고 있는데, 아빠는 그것도 됐다고, 그만하라고 하신다. 몸이 아파서 만사가 다 귀찮았던 걸까?
엄마와 오후에 교대를 했고, 우리는 다시 6시경 병원으로 갔다. 엄마가 아빠가 복수 때문에 너무 답답해해서 큰일이라고 했다. 민준이 아빠가 먼저 올라갔다. 병원에서 처방한 변비약을 먹고 아빠가 설사를 몇 번 하셨다고 들었단다. 그 후로 속은 약간 편해졌다고 했다는데 다행인 건지 불행인 건지 잘 모르겠다.
내가 병실로 올라갔을 때에는 아빠는 눈을 감고 누워 계셨다. 점심 간식으로 나온 죽과 저녁 식사는 손도 대지 않은 채 싱크대에 치워져 있었다. 냉장고에 있던 야채수프를 조금만 따라서 억지로 드시게 하고, 빨대컵에 물을 새로 따라 아빠 머리맡에 놓고는, 아빠가 안쓰러운 마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잠시 앉아 있다가 병원을 나왔다.
하필 지금이 설 연휴 기간인 것도 화가 났다. 아빠와 같은 중증 환자들에게는 하루가 또는 한 시간이 아쉬울 수밖에 없다. 연휴로 인해 필요한 처치가 늦어져 아빠는 지금 당장 많이 힘들어하고 계시는데, 아빠의 병실 바로 앞 병동 스테이션에서는 간호사들이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병원 밖에서는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평화로운 일상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아빠와 우리 가족만 모두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것 같았다. 깊은 고독감이 느껴져 자꾸만 눈물이 났다.